얼마 전 인터넷으로 보내온 편지 중에 어떤 고생이나 어려움, 아픔과 고통으로 절망이 온다 하더라도 3일만 기다리라. 3일이 지나면 부활의 기쁨이 온다는 내용의 글이 있었다.
예수님은 갈보리 언덕 십자가에서 대제사장들의 고발로 사형 선고가 떨어졌을 때 로마 병정들이 포악하게 처형할 때 십자가상에 양손과 발목에 녹슨 3개의 못으로 검붉은 피가 쏟아지도록 대못을 박고 머리엔 가시면류관을 씌워 이마가 찢어져 피를 흘리고 옆구리엔 창에 찔려 창자가 터져 나오고 검붉은 피가 쏟아지고 십자가와 땅 바닥이 피로 얼룩지게 하며 결국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며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시며 절규하셨다. 숨을 멈추시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우리는 얼마나 절규하고 마음 아파하고 있는가?
우린에게도 이런 고통이 온다 하더라도 3일만 기다리라. 그러면 부활의 기쁨이 올 것이란 메시지가 오늘 우리의 메시지이다. 그러나 이런 아픔과 고통의 죽음은 우리 육체를 가진 인간에게는 가끔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죽음에 대한 기록들을 보면, 특히 시몬은 도미티안 황제 때 십자가형으로 꺼꾸러 못 박혀 죽었다고 한다. 요한은 끓는 기름 속에 던지려다 밧모섬으로 귀향 보내어 죽이고 바울은 무자비하게 구타하다가 죽였으며 아드리아 황제 때는 제논 외에 약 1만 명이나 아라랏 산에서 창으로 옆구리를 찔리며 십자가에 매달린 채 순교시켰고 사해바다 근처 산중과 암혈과 토굴 속 숨어 살던 카타콤에서는 결박과 옥에 갇혀 순교자들의 무덤이 되었다. 로마 원형 극장에서는 짐승의 밥으로 던져 찢겨 죽였고 화형으로 죽어갔다.
이런 경우는 우리 한국인에게도 있었다. 일제 36년 동안 일제의 압박 속에서 기독교의 박해는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육체적 고통을 겪는 아픔의 사건들이 있었다.
6.25 사변 후에도 북한 공산당들이 기독교인을 핍박할 때 우리는 육체적 죽음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이었나. 그래서 부활절을 맞으면서 예수님의 고통과 하나님의 고통을 육신적 아픔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부활의 아침에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한번은 개를 집에서 키운 적이 있었다. 이름은 '이쁜이'였다. 개의 역할은 교회를 지켜 주기 위해서 필요했다. 어느 날은 교회 비품이 없어지고 또 어느 때는 성가대 까운이 없어졌다. 미국인들이 동양인들이 많이 들락날락 하니 좋게 여기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개가 주인을 깍듯이 알아주며 서양 사람과 동양 사람까지 구분 할 줄 알았다. 교인들이 오면 꼬리를 흔들어 주고 서양인들이 교회 앞을 지나가면 무섭게 짖어 주었다. 그러니 개는 교인들의 사랑을 받고 먹이도 가져와서 주곤 하였다.
그런데 '이쁜이' 개가 3일 동안 나타나질 않았다. 그리고 그 후에도 영영 나타나질 않았다. 주인 입장에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러운 지 괴로웠다. 퍽이나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 키울 때 정서적으로 동물을 사랑하는 것이 좋다하여 고양이대신, 어느 분이 새 한 마리를 선물로 보내왔다. 이름은 '코카테일'이란 조그마한 앵무새과 새였다. 이놈을 집에 새장 속에 넣고 전화통 밑에 둬 키웠다. 2,3개월이 지났을 때 전화가 1통 걸려왔다.
제가 "여보세요"하며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한번은 제가 "여보세요" 하는데 새장에서 새가 "여보세요" 한다. 너무나 신기해서 새도 말을 하는구나를 알게 되었다. 또 며칠이 지났을 때 전화 벨이 울린다. 그런데 새장에서도 "벨" 소리가 난다. "따르릉, 따르릉"... 새가 말하는 것이다. 너무나 신기하다. 그런데 미국 아이들 친구들이 '영어는 못하느냐?' 하기에 전화를 받을 때 마다 "헬로, 헬로..."하며 전화를 받아 보았다. 얼마 후에 새도 전화 벨 소리를 내면서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리고 "헬로, 헬로"하는 것이 아닌가. 참 신기하였다. 그래서 이 새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고 아끼게 되었다. 14년 동안 같이 지냈다.
미국 버지니아로 이사 올 때도 이 새를 가지고 왔다. 많은 사람들에게 귀염을 받게 되었다. 그런대 14년 되던 해 교회에서 어린이 하기학교가 시작 될 때 선생님들이 저녁에 교회 와서 하기학교 수련회 준비들을 할 때다. 어느 쌍둥이 어린이가 엄마 따라 교회에 와서 놀고 있었으며 엄마는 열심히 준비물을 만들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새장 옆에 책꽂이가 있었고 가끔 사무실에 개미들이 나타나서 개미 죽이는 약을 책꽂이 옆에 두었다. 애들이 사무실에서 놀다가 그 약병을 들고 새장에 가서 뿌렸다는 것이다. 다음날 교회 갔더니 새가 죽어 있었다. 그때 그 마음, 마음의 섭섭함, 안타까워하며 괴로웠는지 짐작 할 수 있겠는가? 결국 교회 옆 마당에 묻어주고 십자가를 세워 준 사실이 기억된다. 자기가 사랑하던 동물도 죽으면 마음 아파한다.
지난 15일 오후 8시 30분 인천에서 출항한 진도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수학여행 중 당한 사고로 온 국민과 세계가 울먹이고 있다. 476명 탑승자 중, 구조된 자는 174명, 사망자는 현재 58명으로 20일 발표 하였다.
부모의 입장에서 얼마나 고통스럽고 마음이 매여지며 밤잠을 못 자고 움추린 채 '딸아 한번이라도 내 품에 품어주고 보내줘야지' 하며 절규하는 어느 엄마의 울부짖음, 우리는 가슴이 메어지는 아픔과 절규의 소리를 듣는다. 그 아픔은 당사자 외에 알 길이 없을 것이다. 주위에 친구만 잃어도 마음 아파하고 자기 사랑하던 동물의 죽음도 마음 아파하는데 하물며 자기 자식을 물속에서 엿새가 지나도록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때에 바다 물속에서 죽지 않고 6일 만에 살아 왔다면 부모들의 마음이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럽고 감사하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봐야 한다. 영원 전부터 영원 까지 같이 계시던 그 아들 독자 예수님을 갈보리 언덕에 내어 주고 영원한 이별, 죽음을 당하시어 음부에 내려가서 몇일 동안 소식이 없으신 예수님을 생각 할 때 하나님의 마음 메어지도록 고통과 아픔의 절규에 찰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도 마음을 이해 할 수 있어야 한다. 죄는 영원한 이별이다. 죄 값으로 예수님을 죽여 버리는 십자가의 고통, 하나님의 사랑이 끊어져 버린 관계, 이것이 십자가의 고통이요, 하나님의 아픔이 아니겠는가? 그로 인하여 세상은 칠흑같이 어두워졌고 아픔이 극에 달했을 때, 그때 그 아들이 3일 만에 무덤을 뚫고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을 볼 수 있었다. 그때 그 기쁨, 그 감격, 이것이 부활의 아침에 우리가 가져야 할 체험이요, 감사요, 축복일 것이다. 우리는 부활절을 크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내용이라 믿는다.
글ㅣ신동수 목사(프라미스랜드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