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됨에 따라 영국성공회의 동성애자 성직자가 교단의 규범을 무시하고 오랜 시간 사귀어 온 동성연인과 결혼해 보수주의자들의 질타를 받고 있다.
올해 58세로 여성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상태였던 제레미 팸버튼 신부는 지난 13일(현지 시간) 동성연인이 51세의 로렌스 커닝튼과 결혼식을 올렸다. 현재 영국성공회는 성직자의 동성결혼을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성직자가 동성결혼을 공식적으로 축복하거나 식을 집례하는 것 또한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규범을 모두 무시하고 결혼식을 강행한 팸버튼 신부는 현지 일간 데일리메일에 "나는 이 남자를 사랑하고 그와 결혼하기 원한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다. 모두가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와 결혼하고 싶어하고 나도 그렇다"고 밝혔다.
이에 영국성공회 내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는 교단이 그를 반드시 징계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그렇지 않을 시 교회에 위기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교단 내 개혁주의 복음주의 그룹의 의장인 로드 토마스 신부는 현지 일간 텔레그래프지에 "교회 내에서 성 정체성에 대한 시각과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압력이 존재하고 있다"며, "우리가 이번 일에 분명한 징계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우리는 말로만 (동성결혼을) 금지하고 있지 실제로 금지할 마음은 없다'라는 메시지를 그들에게 주게 되는 셈이고 결국 교회 내에 위기를 불러오게 될 것이다"고 경계를 요청했다.
지난 2월 영국성공회 주교회의는 성직자들을 대상으로 동성결혼과 관련한 지침서를 발표했다. 이를 통해서 주교회의는 "동성결혼을 한 자가 성직자로 임명될 수 없으며, 이미 성직에 있는 자도 동성결혼을 해서는 안된다"는 점과, "성직자는 어떤 유형이든 동성 간의 결합에 대한 축복을 제공해서는 안된다"는 점 두 가지를 분명히 확인했다. 다만, 성직자 개인이 커플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비공식적인 기도를 베푸는 것은 각자의 재량에 맡긴다는 예외를 두었다.
영국에서는 2005년부터 동성커플의 권리를 보장하는 시민결합 제도가 시행되어 왔으며,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작년 말, 스코틀랜드에서는 2월부터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이 통과되어 3월부터 동성결혼이 시행되고 있다. 이 같은 사회적 변화는 결혼을 남성과 여성 간의 신실한 결합으로 규정하고 있는 영국성공회에 큰 딜레마를 안겨줄 것으로 예상되어 왔다.
또한 교단 내 진보주의자들 가운데서는 성직자들이 법안을 따라 동성결혼을 할 수 있게 해야 하고, 다른 동성연인의 시민결합이나 결혼을 위해 집례하고 축복할 수 있도록 교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를 위시한 교단 지도부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계속해서 고수하고 있다. 특히 웰비 대주교는 최근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교회를 둘러싼 현실이 변화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교회가 이 문제에 대해서 쉽사리 입장을 바꾸는 것은 큰 대가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특히 서구교회가 동성애를 포용하면서 아프리카나 아시아 같은 보수적 사회의 교인들이 더 큰 박해에 노출되고 있다는 점 또한 지적했다.
한편, 팸버튼 신부의 친구이자 교단 내 성적소수자 옹호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콜린 코워드 신부는 이 같은 교단의 입장에 반발하며 "주교회의가 팸버튼 신부나 다른 게이나 레즈비언 성직자들이 동성결혼을 한다고 해서 처벌할 것이라면 교단 내에서 동성결혼을 지지하며, 성적소수자들을 위한 사역을 하고 있는 지도자들과 교인들과의 관계가 멀어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고 자신의 블로그에 의견을 밝혔다.
코워드 신부는 또한 "영국성공회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앞으로 수개월 내에 수많은 성직자들이 팸버튼 신부의 선례를 따라 동성결혼식을 올리게 될 것이다"며, 교단이 변화하는 동성애에 대한 인식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성령은 교회의와 인간을 더욱 깊은 사랑과 믿음으로 이끌어 가시며 하나님의 피조물들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에 있어서 주교들보다 더 높은 권능을 지니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