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중 네 번째 사과를 했다. 정부조직 개편안과 관련한 대국민담화 이후 윤창중 성추문 사태, 기초연금 공약후퇴에 이은 것이다. 국가정보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사건에 대해 직접 사과를 하고 남재준 국정원장에 대한 해임은 수용하지 않아 향후 흐름이 주목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국무회의를 통해 국정원의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 "유감스럽게도 국정원의 잘못된 관행과 철저하지 못한 관리체계의 허점이 드러나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돼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공개적인 자리는 아니지만 이번 사안에 대해 정식으로 대국민사과를 한 셈이다.
박 대통령의 이번 사건 언급은 지난달 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검찰 수사 결과 문제가 드러나면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힌 이후 한 달만이다. 전날 검찰의 최종 수사결과 발표 이후 사의를 표명한 서천호 국정원 제2차장의 사표를 박 대통령이 즉각 수리하면서 이번 사안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는 듯했지만, 추가로 대국민사과를 함으로써 국정수반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게다가 국정원이 과거 댓글을 통한 대선개입 논란은 이명박 정권 당시 일어나 박 대통령이 거리를 두어도 되었지만, 현 정권에서 벌어진 증거조작 사건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을 만큼 상황이 중대하다고 본 것이다. 이 때문에 서둘러 정식으로 사과하고 적절한 선에서 책임을 묻는 것이 논란을 서둘러 종식시킬 수 있는 방안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맞춰 남재준 국가정보원장도 이날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다. 남 원장은 "증거서류조작 혐의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된 것을 머리 숙여 사과한다"며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국정원장으로서 참담하고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남 원장 퇴진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않은 채 그를 신임하는 입장을 내놓았다. 야당은 남 원장의 사퇴를 거듭 주장하며 공세를 지속하고 있어 단기간내에 사건 수습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남 원장이 사퇴를 거부하고 사과로만 끝낸 것은 과거 군인 시절과는 상반된 행보라며 이율배반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남 원장은 2004년 육군참모총장 당시 군검찰의 장성 진급 비리 관여 의혹 수사와 관련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만류에도 돌연 사표를 냈다. 전역 사유는 "내 부하들이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군인답지 못하게 투서질을 했으니 잘못된 교육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전역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남 원장은 소신 있는 '타고난 군인'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