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은 이삭과 야곱에게 전승되었으며 이는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다(시 105:9-10).
이것이 영원한 언약인 것은 장차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될 영원한 구원의 예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고 그를 통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창 12:3).
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먼저 전한 복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갈 3:8).
하나님은 이 복을 실현하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자손의 약속과 가나안 땅의 약속을 주셨다(창 15:1-7).
이 복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생명, 곧 영생을 얻는 것이며, 동시에 영생의 본질인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 실현되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전자(영생)는 자손에 대한 약속으로, 후자(하나님의 나라)는 땅의 약속으로 예표되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약속은 요셉의 때에 성취 단계에 접어든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가나안 땅의 약속은 요셉을 통한 '입애굽'과 모세를 통한 '출애굽'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다.
여기서 입애굽의 목적은 출애굽이고(창 15:13-14), 출애굽의 목적은 시내산 언약이다(출 6:6-7).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언약백성 삼으셔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에 있다.
물론 이것은 장차 오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새 언약을 예표한다(눅 22:20).
그리고 입애굽과 출애굽의 중보자인 요셉과 모세는 새 언약의 중보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고 그의 형들이 그 앞에 엎드려 절한다.
요셉은 그들을 정탐꾼으로 몰아붙이고 그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한다.
그리고 가족사를 얘기함으로써 자기들의 진정성을 보인다.
하지만 요셉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막내아우를 데려오기까지 그들 중 한 사람을 인질로 삼도록 명한다.
요셉의 형들은 결국 요셉의 안을 그대로 받아들인다(20절).
요셉의 형들은 이전에 형제중 하나인 요셉을 버려두고 아버지 앞으로 갔다(창 37:32).
이제 다시 형제중 하나를 버려두고 아버지 앞에 서야 했다.
바로 이 때 오래전에 저질렀던 악행이 나타나 그들을 사로잡는다.
곧 13년 전 요셉에게 한 일을 기억하고 참회의 고백을 한다.
21절을 히브리어 원문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아, 그랬구나! 아우의 일로 벌을 받는 것이 분명하다! 아우가 우리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할 때에, 그가 그렇게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가 아우의 애원을 들어주지 않은 것 때문에, 우리가 이제 이런 괴로움을 당하는구나"(21절).
'아, 그랬구나!'라는 감탄사의 히브리어 '아발'은 무엇인가 미처 몰랐던 생각이 떠올라 곤혹스럽고 당황한 느낌을 가졌을 때 터져 나오는 표현이다.
지금 괴로움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떠오른 생각은 바로 그들이 요셉에게 준 괴로움에 대한 형벌이라는 것이다.
구약의 신앙적 주제는 '죄인은 그가 범죄한 바로 그 영역에서 징벌을 받는다'이다.
지금 괴로움을 받는 요셉의 형들은 분명 억울하다.
그들은 결코 정탐꾼이 아니며 분명히 곡물을 사러 왔고 아버지 집에 막내아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무고한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괴로움'(히, 차라)을 통해 요셉이 당한 '그 괴로움'(히, 핫차라)을 기억한다.
요셉이 처했던 그 자리와 자신들이 처하여 있는 이 자리 사이에 연결이 있음을 의식하게 된 것이다.
'아, 그랬구나'(아발), 이것은 분명 영적 각성이며 동시에 자발적인 각성이다.
형들의 고백을 듣던 요셉은 그들을 떠나서 울고 다시 돌아온다.
그들의 눈앞에서 시므온을 결박하여 인질로 잡아둔다(24절)
하지만 곡물을 자루에 채워주고 돈뭉치는 그대로 주고 길에서 먹을 것도 챙겨준다(25절).
형제중 한 명이 여관에서 자루를 풀어보고 돈이 그대로 있음을 보고 놀란다(26-27절).
이를 알고 형제들은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라고 두려워한다.
형들에게 대한 요셉의 행동은 보복이 아니다.
물론 시므온을 남겨두게 하였으나 곡물을 주고 돈을 돌려주고 길에서 먹을 것도 따로 챙겨준다.
형들의 고백을 들으며 울었고 겉으로는 완고했으나 속으로는 긍휼 가득한 배려를 하고 있다.
◊묵상 기도
아버지여...
나의 인생이 무엇입니까!
어찌 그 많은 이들에게 무고한 괴로움을 주었나이까!
이는 이기심과 탐심, 야망과 명예욕으로 점철된 패역한 나의 인생 탓이나이다.
내게 괴로움이 임하니 그들의 무고한 괴로움이 기억납니다.
아, 그랬구나... 나의 인생, 다른 이들에게 짐을 지우는 인생이었나이다.
어찌 그 빚을 갚으리요! 어찌 나로 인해 무고한 괴로움을 당한 이들을 위하리요!
아버지...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나이다.
이 새벽, 슬픔고통 가득 차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겠나이다.
저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놀라운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슬픔고통, 근심염려, 상한심령, 그치지 않는 눈물, 십자가에 달린 아들이 담당하셨나이다.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벌거벗은 자 되어 십자가로 나아갑니다.
나를 못박아 주소서. 나로 인해 무고한 괴로움을 당한 이들을 거기 못박아주소서.
아들이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아들이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입었나이다.
아버지여...
이제 아들의 자취를 따라 살게 하소서.
무고한 고난, 부당한 괴로움을 달게 받게 하소서.
주와 복음을 위하여 부당한 고난을 기쁘게 받게 하소서.
이는 내 안의 주님이 받으시는 고난이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를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고난이옵니다.
오늘도 아들의 죽음과 무덤 안에서 생명으로 살기 원합니다.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위해 살게 하소서.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