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는 자체가 상징적으로나 기호학적으로나 표정이 제일 많다. 그래서인지 그림만 그리면 여체와 연관된 것을 그리게 된다" - 여균동 영화감독 -
지난달 21일부터 서울시 종로구 옥인길 65번지(인왕산 수성동 계곡 아래) '갤러리 서촌재'에서 열리고 있는 여균동(56) 영화감독의 여체 돌그림 '각인각색(刻人刻色)-봄나들이'展이 눈길을 끈다.
오는 5월 6일까지 전시할 '각인각색'전은 여 감독이 전각한 여체 누드 돌그림 34점이 선보이고 있다.
전시를 하고 있는 서촌재에서 여균동 영화감독을 최근 만나 작품전시와 관련한 대화를 나눴다. 그는 지난해 7월 7일부터 31일까지 이곳 서촌갤러리에서 세계 최초 인주 물감으로 '붉은누드'전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몇 년전 암투병 생활로 인고의 세월을 보낸 그는 1년에 한번 정도 전시를 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먼저 여 감독은 "그림이라고 하는 것이 그럴듯한 포즈와 전형적인 자세들이 있지만, 무심한 생각들도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며 "여체 돌그림전은 여성의 무심한 표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피력했다. 이어 그는 돌그림에 맞는 액자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돌그림에 액자를 하는 순간 뭔가 되는 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액자가 이런 역할을 하는지 몰랐다. 솔직히 작품 전시를 망설이기도 했는데 액자를 발견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액자라는 집에 갇힌 돌그림은 뭔가 그럴듯해 보였다. 한 마디로 액자가 작품을 살렸다."
이날 여 감독은 누드 돌그림에 액자를 한 임기연 액자작가를 쳐다보며 '고수 중에 숨은 고수'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그는 "영화 '이중섭' 촬영을 위해 이곳에 헌팅을 왔다가 우연히 '갤러리 서촌재' 김남진 관장을 만나 전시를 하게 됐다"며 "집과 작품이 잘 어우러진 전시라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여자는 남자의 관심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여자라는 그 자체가 상징적으로나 기호학적으로나 표정이 제일 많다. 그래서 작품을 할 때 여자의 몸을 빌어 말하기가 좋다. 이상하게도 그림만 그리면 여체와 연관된 그림을 그린 것 같다."
작품을 보니 여균동 감독은 여체의 아름다움 보다는 미적인 감각을 잘 표현하고 있는 듯했다.
특히 누드 돌그림은 현실 속에 주어진 대상이나 사실을 그대로 받아드린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고하며 나타난 그 어떤 것을 추구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돌을 가지고 전각을 할 때 글씨를 새긴 것이 아니라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 것처럼 작업했다. 선에 색칠한 몇 작품을 빼고는 전부 돌에다 스케치를 하며 파낸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조각한 것이다. 캔버스에 붓칠한 것처럼 석분에 자연스럽게 칼질을 했다. 검은색 돌을 조각하면 하얀색이 나오고, 철분이 있는 돌은 노란색을 띄기도 한다."
여균동 감독은 돌을 전각하는 것보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상상할 때가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도 했다.
"그림을 그리거나 전각을 하는 것은 금방한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생각하거나 상상할 때 시간이 걸릴 뿐이다. 이번 작품들은 이중섭에 대한 영화를 시작하면서 떠오르는 형상을 가지고 출발한 작품들이다. 그래서 돌그림은 이중섭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그에게 그림과 영화의 상관관계에 대해를 묻자 "조금 연관될 수도 있지만, 서로 다른 별개의 영역"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림을 그린 것과 영화는 별개의 영역이다. 그림은 그린대로 상상력이 생기고, 영화는 영화대로 상상력이 생긴다. 나에게는 영화와 그림은 전혀 다른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 감독은 자연스레 화제를 돌려 촬영 예정인 영화 '이중섭'에 대한 얘기를 이어갔다.
"이중섭의 일대기를 그리게 될지, 연관된 에피소드를 주제로 그리게 될지 고민 중이다. 바로 1954년 이중섭이 이곳 서촌재 부근 골목에서 활동한 시기를 누상동 시절이라고 한다. 이중섭은 1955년 미도파전이 있기 전인 1954년 이곳에서 4~5개월 머물며 작업을 했다. 이곳 뒷골목에 가보면 약간 고치기는 했지만 이중섭이 머물며 작업을 했던 집이 그대로 있다. 이중섭이 활동한 집 중 형태가 그대로 있는 곳은 이중섭의 누상동 시절이다. 또한 서촌에는 윤동주 시인의 하숙집 '제비다방'도 있다."
그는 이중섭이 이곳 누상동시절에 작업을 하며 항상 일정한 규칙을 갖고 성실하게 활동했다고도 했다.
"이곳 누상동에서 1954년 봄과 여름까지 4~5개월 작품을 하면서 일정한 규칙에 따라 성실하게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밤샘 작업이 끝나면 오전에 자고 오후에 일어나 주변 수성계곡에서 목욕을 했다. 이중섭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고 하지 않고 그냥 그림을 그린 사람(그림쟁이) '화공'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지난 1974년 이중섭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이중섭'이 선보여 깐느영화제까지 출품하기도 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영화 '이중섭'을 다시 촬영하겠다는 여균동 감독의 속내가 궁금했다.
"지금 시기에 다시 한번 이중섭이 누구인지를 알리고 싶어서이다. 이중섭은 어느 작가보다 에피소드는 많은데 영화적 소재가 조금 부족해 고민이다."
인터뷰 중 홍상수 영화감독이 우연히 전시장을 들려 여균동 감독과 잔잔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인터뷰에는 임기연 액자작가, 김남진 서촌재 갤러리 관장도 함께 했다.
여균동 감독은 58년 서울에서 출생해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다녔다. 94년 영화 데뷔작 <세상 밖으로>로 대종영화제 신인감독상을, <너에게 나를 보낸다> 출연으로 청룡영화제 신인연기자상을 받았다. 여러 영화 연출은 물론, 연기자로서도 주가를 올린 인물이다. 저서 <별별 차별>, <아큐 어느 독재자의 고백>, <세상 밖으로>, <몸> 등이 있고, 뮤지컬 <천상시계>에 출연했다. 지난 97년 CF로도 활동했다.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영화감독 및 연기자, 배우, 화가, 조각가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