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인 신학자 한 사람이 기독교의 가장 핵심 교리 중 하나인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에 대해 "바울의 창안이나, 그 후대 신학자들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교정되어야 할 것"으로 주장했다. 그러자 보수적인 신학자들이 당황해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5일(토) 열린 한국개혁신학회(회장 김영선)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한 대속적 이해가 가지는 신인식의 문제-믿음에 대한 인식과 경험의 한계성 패러다임(Paradigm)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논문을 발표한 조현철 교수(연세대)는 한국교회가 현대인들에게 신뢰성을 상실한 이유에 대해서 "문제의 근원에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오해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현철 교수는 "마가복음8:31에 기록되어진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고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당연히 일어나야만 하는 필수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죽임 당함은 그리스도에 대한 인간들의 거부로 인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의미로 이해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초대 기독교에서 발전되어온 예수의 죽음에 대한 신학적인 다양한 의미들 속에서 예수의 죽음은 점차 화해를 위한 죽음으로 이해하게 됐는데, 처음에는 화목제물이라는 의미로 생각된 것은 아니었지만 의심할 여지없이 점차 그러한 중요성을 가지게 됐다"면서 "이러한 중요성을 강화시켰던 대표적 존재가 바로 바울"이라 했다.
그러나 조 교수가 제기하는 문제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었다는 내용의 모든 말들에서 예수의 죽음이 속죄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만 여기면서 그 이상의 다른 것을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우리를 위하여'라고 설명하는 것을 자명하게 속죄로만 이해하려는 경향성에 대하여 사람들은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고 했다.
더 나아가 그는 "바울이 자신만의 해석과 사상적 접근을 통해 논리를 전개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하고, "바울이 주님을 경험하고 인식했던 내용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제한적"이라며 "그 결과 바울의 글 속에 그리스도의 선포와 마찰되는 현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했다. 특히 "그리스도의 죽음 및 화해와 관련된 바울의 글들은 그리스도의 선포와 삶을 기준으로 다시 엄격히 재평가되어져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교회 문제는 잘못된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이해 때문
조 교수는 "삶 속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아니 오히려 사회에서 범죄자로 판결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삶의 변화 없이 교회에 출석하면서 마치 천국을 소유한 것처럼 당당히 말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비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는 그것을 용인하는 집단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이는 자신의 범죄와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대속'이라고 입으로 '시인'하기만 하면 모든 범죄가 소멸되고 그리스도가 자신을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여기는 그릇된 '구원의 확신'은 기독교의 근본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라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기독교의 기초로 여겨지고 있으며, 조 교수는 "기독교가 이러한 잘못된 인식 구조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현실에서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삶을 어떻게 신의 뜻에 일치시키며 살아가는지보다 '가시적 교회 성장'을 더 우선시 하고 있으며, 그러한 '가시적 교회 성장'이 당연히 '신과의 관계성'을 가진 것이라고 여기는 순환 고리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이런 식으로 신이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경험'되어졌으며, 그 내용은 전통을 이루고 교육의 형태로 전수되며 강화됐다"며 "그러나 그러한 '인식'과 '경험'의 근거에 대한 원초적 질문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그는 그래서 기독교의 이러한 불편한 진실에 대해 암묵적으로 허용하는 것을 그만두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는 용감하게 "그리스도의 죽음 때문에 당연히 '천국'가는 것으로 여기는 비상식적 오해로부터 인간은 피조물의 자리로 되돌아와서 그 동안 자신과 타인과 집단에 거침없이 행했던 '그리스도의 죽음'과 관련한 '인식적', '경험적' 판단에 대하여 '판단중지'해야만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인간의 (잘못된) 판단이 '심판대'에서 행하실 그 분의 '고유 권한'인 심판을 결코 폐기시켜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초기 기독교의 전승 속에서 광범위하게 마주치는 예수의 죽음이 가지는 화해의 능력에 대한 표현들은 '신과 신의 나라를 위한 인간의 움직임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이지 그러한 인간의 움직임과 상관없는 것, 오히려 그러한 움직임을 '중지'시키기 위한 것이 아닌 것으로 이해되어질 때 그러한 설명들은 유용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했다.
보수신학자들, "조 교수의 주장 너무 급진적이고 당황스럽다"
조현철 교수가 신약을 쓴 바울을 비판하고 평가하자 보수적인 신학자들이 당황스러워 했다. 논평자로 나선 장호광 교수(안양대신대원 조직신학)는 "상당히 급진적이며 도전적인 주장"이라며 "심지어 바울의 성경적 내용까지도 이의를 제기하는 것에 심히 당황스러웠다"고 평하기도 했다.
장 교수는 "조 교수의 주장이 공관복음만 참된 복음으로 받아들이고 바울서신 전체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헬라 철학으로 희석시킨 바울 개인의 신학적 사상으로 치부해 버리는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자인 아돌프 폰 하르낙의 사상과 유사한 주장인 것처럼 보여진다"며 "성경의 정경성과 권위성에 손을 대면서까지, 그리고 오래 동안 유지되어온 대속 교리를 몇몇 성경구절과 현대신학자의 사상을 근거로 의문을 제기하려는 시도에 강한 이의와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논평자로 나선 유창형 교수(칼빈대 조직신학)도 "매우 용감한 주장이고, 더구나 이런 해석의 의도 중 하나가 대속적 죽음에 관한 교리가 현재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의 대속을 입으로 시인하기만 하면 죄가 용서되고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재고되어야 한다는 것을 볼 때 매우 독창적인 요소가 있다"고 평했다.
그러나 유 교수도 "바울의 진술과 전통적인 대속적인 죽음에 관한 진술들을 옳지 않다는 발제자의 주장은 바울서신, 히브리서, 요한계시록 등 많은 신약성경들의 영감과 무오성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므로 성경을 있는 그대로 가르치고자 하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게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이런 혼동을 감당한다는 것은 일반 목회자들에게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 했다.
한편 신반포중앙교회에서 열린 이번 제108차 한국개혁신학회 정기학술발표회에서는 조 교수의 발표 외에도 김선권 박사(호남신대)가 "깔뱅이 말하는 '잘 정돈된 삶'(la vie bien ordonée)으로서의 기독교인의 삶의 방식"이란 주제로 논문을 발표하고, 김재성 교수(국제신대)와 김요섭 교수(총신대)가 논평자로 수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