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선각자' 이상재 선생 제87주기 추모회

안창원 서울YMCA 회장 "선생처럼 그리스도의 사랑 세상에 펼쳐야"
월남 이상재 선생 제87주기 추모식이 진행되고 있다.   ©기독일보

겨레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는 월남(月南) 이상재 선생 제87기 추모회가 28일 오전 서울YMCA 대강당에서 개최됐다. 이날 추모회에는 안창원 서울YMCA 회장 및 강성만 북부보훈지청장 등 각계인사 200여 명이 참석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이 타계한 지도 87주년이 흘렀다. 이상재 선생은 한말 당시 민족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였다. 그는 서재필과 독립협회를 조직, 부회장으로 만민공동회를 개최했다. 개혁당 사건으로 복역했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밀사파견을 준비했다. 소년연합척후대 초대 총재, 조선일보사 사장 등을 지냈다.

이상재 선생은 1902년 개혁당(改革黨)사건으로 3년간 복역하는 동안 기독교 신자가 됐다. 그가 감옥에서 우연히 요한복음을 읽다가 감동받은 뒤 성경과 기독교 서적을 탐독하고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됐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이날 추모회는 이기열 서울YMCA 부이사장의 추모기도, 안창원 서울YMCA 회장의 추모사, 강성만 서울북부보훈지청장의 정부대표 추모사, 이상복 월남이상재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의 후원단체장 추모사, 헌화, 이상구 선생(월남 이상재 선생 현손)의 유족대표인사 순으로 진행됐다.

안창원 회장은 추모사에서 "월남 선생님께서 살아생전 몸소 보여주신 한마음 정신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를 반성해야 한다. 대립과 갈등의 시대에 선생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을 세상에 펼치며, 상생과 평화의 중재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복 회장은 추모사에서 "월남은 겨레의 위대한 스승이셨다.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하셨고 선구자적인 혜안으로 민족의 앞날을 밝혔다"고 전했다.

이상복 회장은 "이상재 선생은 계몽운동을 펼쳤고 국민의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교육을 통해 민족의 힘을 기르자고 역설하셨다"면서 "민족의 정신적 지주셨던 이상재 선생처럼 오늘날 우리 민족은 새로운 정신적 지도자가 배출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강성만 지청장은 "우리 민족은 어둡고 부끄러운 역사를 극복하고, 민족분단의 뼈아픈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 우리 후손은 이상재 선생의 가르침을 통해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만들어 선진국가로 도약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는 모습.   ©기독일보

이상구 선생은 유족을 대표해 "월남 할아버지는 우리 민족이 나라를 잃고 암울했던 시절,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 넣으셨다"며 "오늘날 조국의 발전된 모습을 할아버지는 흐뭇하게 생각하실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하지만 해방 후 지금까지 분단국가로 남아 있으며, 좌우 이념의 대립과 사회적 갈등 등 풀어야 할 난제가 많다"면서 "화합과 갈등으로 새로운 나라를 만들며, 이상재 선생과 같은 지도자가 출현하길 고대한다"고 전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은 1905년 황성기독교청년회(YMCA의 전신)에 가입해 초대 교육부 위원장이 돼 민중계몽운동에 투신했다. 1905년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해 국권을 박탈하자, 기독교도들과 함께 애국계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1908년 기독교청년회의 종교부 총무를 맡아 성서연구반을 조직해 성경 중심의 신앙운동을 주도했다. 이상재 선생은 1910 년 8월 일제가 한국을 병탄하자, 주로 기독교청년운동에 종사하여 국권을 회복할 실력을 배양하려고 했다. 1911년 4월에는 황성기독교청년회 종교 부장에 취임했다. 그는 전국 각 지방 순회강연을 하며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독립운동의 발판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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