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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차 민중-달릿신학 학술대회’(20일~22일). 첫날 주제강연 에서 ‘달릿과 민중, 마당에서 모이다’란 제목으로 서광선 박사가 발표하고 있다. ⓒ이지수 기자 |
진보신학계 원로 서광선 박사(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세계 에큐메니칼 과제를 한국적 공간개념인 '마당'을 통해 모색했다. 서 박사는 성공회대학교에서 열리고 있는(20일~22일) '제9차 민중-달릿신학 학술대회' 주제발표 <달릿과 민중, 마당에서 모이다>에서 이같이 밝혔다.
정의, 평화, 생명과 같은 에큐메니칼 과제들이 한국의 '마당' 개념을 통해서 어떻게 풀이될 수 있을까? 이는 '마당'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옛 한국 사람들에게 안마당과 바깥마당은 가정생활과 경제생활의 중심, 즉 삶의 중심이었다. 성경에서도 마당이 의미 있게 등장한다. 구약 창세기 50장에서는 야곱의 '장례 마당'(funeral madang), 민수기 15장에서는 수확감사제를 드리는 마당(harvest thanksgiving madang), 사무엘하 24장과 역대하 3장 등에서는 하나님의 제단과 성전이 세워진 마당 등이 나타난다. 마당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주요한 삶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이어 서 박사는 '마당'을 "평화와 정의의 공간"으로 재해석했다. 마당이 '민중'과 '달릿'(Dalit, 인도의 최하층민을 일컫는 말)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평화와 정의가 구현되는 공간, 즉 그들의 삶에 생명을 불어넣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먼저 '평화'의 공간으로서의 마당을 살펴보면, 예수의 때에 '마당'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곳이자, 케리그마(말씀선포), 디아코니아(봉사), 코이노니아(교제)가 이뤄지는 공간이었다. 또한 예수는 "오이쿠메네'(oikoumene, 온세상)라는 '거대한 마당'에서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고, 민중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선포했다."
'정의'의 공간으로서의 마당의 예는 좀더 현대적이다. 최근 미국 월가에서 시위대가 '리버티 광장'을 점거하곤 경제정의 실현을 외친 사건을 언급하며, 리버티 광장이 정의 구현을 위한 '리버티 마당'이 되었다고 해석했다. 시민들의 시위가 잦은 서울 시청광장 역시 하나의 '민중 마당'이라고 밝혔다.
특히 정의 구현의 공간으로서의 마당은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추세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로 인한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고, 한국만 해도 GDP는 점점 늘어나고 있으나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의 소득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의하면, 우리나라 상대적 빈곤율은 1997년 8.9%에서 2010년 14.9%로 급증했고, 1998년부터 2010년까지 최상위층 10% 소득은 98.42% 증가한 반면, 최하위층 10%의 소득은 56.8% 오른 데 그쳤다. 이에 민중들은 마당(광장)으로 나와 정의를 외치고 있으며, 마당은 정의 실현의 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서 박사는 세계 에큐메칼 과제를 "마당의 회복"이라고 제시했다. 그는 "우리의 사명은 마당, 오이쿠메네, 하나님 창조세계의 본래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며, 또한 "민중을 마당으로 돌아오게 함으로써 경제와 정치에 있어서의 정의를 회복하고 그들이 평화와 샬롬의 선구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에큐메니칼'(ecumenical)이라는 단어가 '개방성'(openness)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음을 주목하며, "마당에서는 다양한 신앙의 많은 종교들이 모여 민중의 인간화를 위해서 함께 노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광선 박사는 특히 이번 발표에서 '마당'의 의미를 조명한 이유에 대해, 다가오는 2013년 세계교회협의회 제10차 총회 프로그램에 한국의 '마당' 컨셉을 반영하도록 총회 준비위에서 긍정적으로 논의 중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민중-달릿신학 학술대회에는 한국민중신학회와 인도 세람포대학이 함께하며, <민중과 달릿의 눈으로 본 생명, 정의, 평화의 신학>이라는 주제로 신학 담론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