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내용은 지난 2월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세 모녀의 마지막 유언이다. 세 모녀는 감당할 수 없었던 생활고로 인해, '죄송합니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살하고 말았다.
세 모녀 뿐만 아니라 빈곤층이라 불리는 사회적 약자들이 연이어 자살을 택했다. 복지 문제가 심각해지자, 박근혜 대통령도 "정말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며 복지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정부가 부랴부랴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세모녀의 안타까운 죽음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인 복지 사각지대 문제를 사회적 화두로 부상시켰다.
한국교회도 빈곤층의 어려움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복지 사각지대 해법을 찾기 위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김영주 총무) 평화위원회(위원장 허원배 목사)는 20일 오후 서울 연지동 기독교회관에서 '복지 사각지대 - 사회 안전망 실현, 그 대안은'이란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고, 교회가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NCCK 기독교봉사회 총무 김일환 목사는 "정부의 복지 혜택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빈곤한 이들의 삶과 죽음을 생각하며 토론회를 갖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토론회를 통해 현 빈곤층 복지 정책의 실상과 보완점들을 찾아보려 한다. 더불어 생생한 세례를 살펴보고. 이 현실에 대한 교회의 역할과 대안을 모색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의 토론회가 일회적인 행사에 끝나지 않고 진정한 디아코니아(봉사, 나눔과 돌봄) 사역의 토대가 될 수 있도록 더 깊은 연구를 통해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힘쓰겠다"고 밝혔다.
또 김 목사는 "정부의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한 채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생활고와 병마로 인한 빈곤의 늪에서 자살을 택한 송파구 세 모녀 동반자살 사건과 그 이후 일련의 죽음의 소식들은 충격이며 큰 아픔이다. 도움도 지원도 받지 못하는 계층으로 빈곤의 낭떠러지에 있는 분들은 바로 우리 이웃에 많이 있다. 410만 여명의 최저 빈곤층 중에 135만 여명의 기초수급권자 이외의 사람들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우리 사회의 복지 사각지대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디아코니아(봉사, 돌봄과 나눔) 사역은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다. 그동안 교회의 디아코니아 사역을 구역회 같은 교회의 소그룹에서 감당해왔다. 존 웨슬리 목사 시대나 한국 선교 초기의 교회는 지역 사회의 빈곤한 이들을 찾아가 돕고 돌보는 전위대 역할과 사명을 감당했다. 교회의 사회봉사부는 자치기관과 민간 복지 담당자들과 연계해 지역 빈곤층을 찾아내고 돌봐야 한다"고 한국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오늘날 교회적 대안으로 소그룹의 기능을 강화해 사각지대 빈곤가정 조사단, 찾아가는 도우미로서의 사회안전망 역할과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한국교회는 인간 존엄을 해치는 절박한 경제 현실 속에서 예수 사랑 나눔의 최일선 기지가 되는 소망을 놓지 않아야 한다"며 "교회가 삶에 지친 모든 이들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희망의 피난처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정무성 교수(숭실대), 엄의식 과장(서울시 복지정책과), 조준배 관장(강남 사회복지관)이 발제자로 나섰다.
조준배 관장은 '현장에서 본 사회복지 안정망의 한계와 대안'에 대해 발제했다. 그는 먼저 "최근 사회적 약자들이 사회복지 제도에 적용조차 되지 못하면서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오고 있다"며 "세 모녀' 자살 사건처럼 복지 사각지대에 몰린 가족의 어려움이 확대되고 있다"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이어 조 관장은 빈곤층에 대한 임시 방편적인 대응책만 난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근본적인 복지 대책은 논의가 되지 않고 있다는 것. 그는 "우리나라의 복지를 설명하면, 권위있는 정책결정자의 의지와 직접 연결된 사회복지 제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 위계적 구조에서 최일선으로 전달되는 과정에 왜곡되는 현상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권한이 위로 집중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위정자들의 복지 인식이 대단히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조 관장은 사회복지 제도에 있어 좀더 솔직할 것을 제안했다. 많은 재원이 투입되는 사회복지 제도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증세없는 복지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사회복지를 확대하겠다고 하면서 증세 논의를 하지 않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심각하게 표현하면, 마치 사회복지가 천덕꾸러기처럼 인식되는 수준"이라며 "'건강한 사회복지'로 재인식되도록 증세에 대해 솔직하게 논의하자"고 말했다.
또 조 관장은 미시적으로 볼 때 우리 사회의 복지는 부양의무자의 함정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부양의무자(직계혈족과 그 배우자) 대부분은 자신의 생활과 미래의 삶을 준비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즉 가족책임주의는 빈곤의 연대를 강조해 저소득층의 가족불화는 물론, 부양의무자까지 빈곤의 늪에 빠지게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양의무자의 부양능력(최저 생계비 130%)을 평균소득 이상으로 대폭 높이거나, 부양의무자 제도를 폐지해 실질적인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 현장에서는 부양의무자에 대한 비난과 무책임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로 인해 수급자들의 자존감이 손상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이로 인해 수급 신청을 하지 못하는 현실도 나타나고 있다며 개선해야 할 부분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이제는 컴퓨터 복지행정 같은 모습은 사라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통해 이뤄지는 '인간 복지 서비스'를 강조했다. 그는 "'행복이음전산망'의 정보를 바탕으로 수급권을 판정한다. (때문에) 수급권자의 실제적 삶을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부양의무자의 실제적인 부양능력을 확인하는 상담이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또 기초생활수급에서 탈락하게 될 경우 '수급 자격 타락예고제(6개월 전)'을 실시해 충분한 시간을 주고 최종적인 판정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우리 사회의 복지제도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전달체계의 비효율성이라고 말했다.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에 따라서 지역편차가 크고 예산도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공공과 민간의 역할이 중복돼 예산낭비의 문제점도 나타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달체계을 개편하고 사례관리체계만 잘 구축해도 사회복지 사각지대를 예방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그는 제안했다.
더불어 그는 국민적으로 합의 가능한 복지기준 마련을 위해 '사회복지 대타협 위원회' 설치를 주문했다. 조 관장은 "사회복지를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정치꾼은 많지만, 한국적 복지 환경을 생각하는 정치가, 전문가, 사회기관 등은 부족해 보인다"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회복지 전문기관, 종교단체, 시민사회 등의 요구와 참여로 한국형 사회복지 모형을 찾아가는 노력이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정무성 교수는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정책 과제 - 민관 파트너십과 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발표했다. 정 교수는 한국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다. 오늘날 더욱 사회복지에 있어, 교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공공 서비스는 지나치게 획일적이고 경직적"이라며 "공급의 다양화와 선택 범위의 확장을 위해 교회의 복지사회 참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공복지 서비스의 수행 인력이 부족하기에 민간의 헌신적이고 전문적인 인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때문에 한국교회의 종교적 헌신성은 높이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엄의식 과장은 '송파구 세 모녀 자살 비극 관련 - 저소득 위기가정에 대한 긴급대책'이란 발제에서 "단 한 분의 시민의 손도 놓치지 않겠다. 이것이 행정의 소임이자 위대한 서울로 가는 길일 것"이라고 밝혔다.
엄 과장은 비극적인 사건이 계속적으로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취약한 복지전달 체계 ▲신청주의 한계 ▲무관심 ▲가난과 생활고, 개인적 책임 등을 들었다.
그는 "선제적 지원으로 위기 가정의 탈출구를 마련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면서, 이를 위해 서울시는 ▲민관이 함께 위기가정 발굴 ▲다중 복지필터링 제도 가동 ▲신용불량자 지원 강화 ▲자살예방 서비스 밀착 지원 등을 실시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