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들에게 겨우 배급된 포필(布匹.배급되는 천)로 우리 가족의 옷을 지어다가 몰래 와서 담 밖에서 던지고 가신다. 먹을 것도 직접 면대할 수 없으니 던져다 준다. 내가 회국하였을 때 부산 경찰이 내 짐을 조사하는데 성경책 사이에 인민폐 20원을 가져온 이유가 무엇인지 내게 물어왔다. 그런 돈은 한 가족의 한 달 생활비인데 내게 그런 돈이 어디 있으며 내가 어떻게 가져올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니, 그 돈이 성경책 사이에 끼어 있다는 것이다. 깜짝 놀랐다. 어떤 분이 내 전송 예배 때 몰래 내 중국 성경에 넣었을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눈물이 났다." – 중국 선교를 회고하며 머리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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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지일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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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세로 한국 교회 최고령 목사인 방지일(方之日) 영등포교회 원로목사가 중국 선교 사진집 '중국 선교를 회고하며 : 방지일 목사 산동 선교 사진집'(홍성사)을 출간하고 21 출판 감사예배를 가졌다.
이번 사진집은 ㈔방지일목사기념사업회(이사장 김삼환 목사)는 방지일(101•서울 영등포교회 원로) 목사가 개인소장하던 사진 150여장을 모아 출간한 것으로, 1913년 중국으로 파송된 최초의 선교사 3인(박태로 김영훈 사병순 목사)과 방 목사의 선친 방효원 선교사의 모습도 담겨 있다.
평북 선천에서 태어난 방 목사는 지금도 주일이면 강단에 서는 '현역'이자 한국 교회의 '산증인'이다.
올해로 목회 활동이 75년째인 방 목사는 평양숭실대 영문과를 졸업한 후 평양 대부흥 운동의 중심지였던 장대현 교회에서 길선주 목사 등과 함께 전도사로 활동했다.
1937년 평양장로회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후에는 중국 산둥(山東)성 선교사로 파송돼 21년을 중국에서 선교했다. 중국이 공산화돼 종교적 탄압을 가하자 49년에 모든 외국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철수했지만 방 목사는 중국 교인들과 고락을 함께했다. 중국 공산당은 방 목사를 북한으로 추방하려 했으나 그가 중국에 남은 마지막 기독교 선교사라는 사실이 서방 언론에 알려지면서 유엔의 중재로 한국에 돌아왔다.
방 목사는 머리말에서 "나는 내가 이렇게 오래 살게 될 줄은 전연 몰랐다"면서 "벌써 없어졌을 사람인데 1957년 이후 오늘까지 덤으로 살면서 이렇게 중국에서의 21년간의 그 험악했던 삶을 회상하게 되니 그 감격함이 너무 격하다"며 감격해했다.
방 목사는 특히 "나는 중국인들로부터 자기의 목숨을 내어주는 사랑을 받고 왔다"고 고백하면서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았기에 오래 사는가 싶다"며 중국 교인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