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요셉이 노예로 애굽에 팔렸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셔서 그는 형통한 자가 되었다.
여기서 '형통하다'의 히브리어(짤라크)는 '앞으로 밀다'(push forward)의 뜻으로 언약을 위한 하나님의 진보를 의미한다.
즉 요셉이 당한 노예적 상황은 하나님의 '언약적 진보'를 위한 섭리였다.
하나님의 언약적 진보는 하나님께 복종하여 언약 안에 거하는 의인을 통해 진행된다.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고 요셉 또한 범사에 하나님께 복종함으로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노예로서 요셉의 삶은 주인의 속박 이상의 '하나님의 속박'에 의해 규정되었다.
그가 주인의 아내로부터 유혹을 받았을 때 주인에 대한 신의 이상, 곧 하나님께 어찌 죄를 짓겠느냐고 하면서 유혹을 뿌리친다.
과연 요셉은 주인의 눈을 두려워하는 것 이상, 하나님의 눈을 더 두려워하는 자이다.
그렇다고 주인의 아내의 요셉과 동침하려는 성욕은 중단되지 않는다. 유혹은 계속된다.
죄의 세력은 언약 안에 있는 자에게도 집요하다.
요셉이 자기 일을 하기 위해 주인의 집에 들어갔을 때 유혹자인 주인의 아내만 있었다.
그녀가 요셉의 옷을 잡아끌고 동침을 요구한다(12절).
그러나 요셉은 그 옷을 벌거벗긴 채 버려두고 밖으로 나간다(13절).
요셉의 옷은 노예의 통상복으로써 허리부분을 졸라매는 긴 옷이었다.
이 옷은 실내에서는 잘 입지 않는 외투였다.
그러므로 요셉은 아주 벌거벗은 채로 치욕스럽게 도망한 것이다.
주인의 아내는 요셉에 대한 성욕이 좌절되자 그에게 분노를 쏟아낸다.
요셉이 남겨놓은 옷을 증거로 요셉이 자기를 농락하였다고 고발한다(14-15절).
여인은 자기의 파렴치한 죄악을 벌거벗고 도망간 의인 요셉에게 전가시킨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의인이 육신의 욕망에 사로잡힌 교활한 자에 의해 치욕을 당한다.
요셉의 주인 보디발은 아내의 고발을 듣고 그를 옥에 가둔다(16-20절).
자유시민이라도 남의 결혼을 침해하면 사형인데, 신뢰받는 지위를 악용한 노예에 대한 주인의 처벌은 매우 경미하다.
이를 두고 혹자는 주인의 분노가 요셉이 아닌 자기 아내를 향한 것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이것은 적시되지 않는 것이며 상상에 불과하다.
확실한 증거는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자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허락 하에 주어지는 것이다.
요셉은 죄수가 됨으로써 노예보다 더 비참한 자리로 추락한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 거한다는 것은 '곤경의 면제'가 아니라 '곤경 속에서의 보호'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구원역사를 이루고자 자신이 택한 의인에게 가장 끔찍한 고통도 허용하시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요셉의 당한 곤경이 하나님의 계획 아래에 있음을 밝힌다.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시 105:17-19)
요셉의 곤경은 극에 달한다.
언제까지인가?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이 그의 진실을 증거하였다.
"... 여호와의 말씀이 요셉의 진실을 보여 준 것입니다"(19절, 쉬운성경)
언약을 성취해가는 요셉의 곤경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곤경을 멀리서 비추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오신 인자요, 만물 위에서 죄로 가득한 만물 안으로 오셨다.
만물 위의 하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한 아들을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셨다(고후 5:21a).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다.
육신의 정욕에 사로잡힌 자로 인해 의인이 벌거벗겨 치욕을 당하였다,
육신의 정욕에 사로잡힌 우리의 죄악이 하나님의 아들을 벌거벗겨 십자가에 못박았다.
우리의 불타는 자기 주장의지가 그를 벌거벗겨 십자가에 못박았다,
죄의 세력에 굴복하는 우리의 옛 사람이 그를 벌거벗겨 십자가에 못박았다.
하나님은 아들을 그리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다(고후 5:21b).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장사된 자는 아들을 부활시키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들과 함께 일으키심을 받는다(골 2:12).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는 위의 것을 찾아야 마땅하다(골 3:1).
그곳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하나님의 나라, 곧 영원이며 아버지 집이다.
♦묵상 기도
아버지여...
언약 안에 있는 의인 요셉이 끔찍한 곤경을 당합니다.
정욕에 불타서 그를 벌거벗긴 채 고발한 여인은 바로 저입니다.
나의 주체할 수 없는 정욕이 의로운 아들을 벌거벗겼습니다.
나의 억제할 수 없는 선한 의지의 열정이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죄의 세력에 한없이 무력한 자, 당신의 아들을 죽였습니다.
아버지여...
그런 자를 아들의 죽음과 무덤 안에서 다시 살리셨나이다.
이 은혜 어찌 감당하리요! 오직 위의 것을 찾는 자로 살게 하소서.
영원의 아버지 집, 아버지와 아들과의 사귐 안에 거하게 하소서.
이제 나의 생명은 아들과 함께 당신 안에 감추어졌나이다.
아들이 영광중에 다신 오실 때까지 그러하나이다.
아버지...
오늘도 다시 아들이 벌거벗겨 못박힌 십자가로 가옵니다.
이는 나의 정욕, 육신에 속한 열정, 자기주장 의지가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세력은 언약 안에 거하는 자라도 무참히 무너뜨리려 합니다.
하오나 이제는 떨며 범죄하지 않으렵니다.
무참히 짓밟으려는 죄의 세력 앞에서 벌거벗긴 채 십자가에 달리겠나이다.
십자가에 달리오니 무시로 위의 것을 생각하며 아버지 품에 거하게 하소서.
십자가는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오나 구원 얻은 나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옵니다.
죄의 세력을 정복하고 구경거리 만드는 당신의 능력이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