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법'을 두고 찬반 논란이 뜨겁다. 우리나라의 진보진영에서도 북한인권법 문제는 난해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교회 진보 측을 대표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총무 김영주 목사)는 7일 서울시 종로구 연지동 한국 기독교회관에서 각계 인사들을 초청, 북한인권법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북한인권법,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토론회는 서보혁 교수(서울대)의 사회로, 황재옥 교수(원광대)·윤소정 박사(이화여대)·김성곤 의원(민주당)의 발제 및 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먼저 김영주 NCCK 총무는 인사말에서 "최근 장성택 처형,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보고서 등 북한 인권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많은 사람이 북한 인권이 개선되기를 바라지만, 북한 인권 개선에 대한 접근 방법은 상반된 견해를 보인다. 이에 대한 많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김 총무는 북한 인권에 대한 문제가 어떤 특정 집단의 정치적 수단과 논리로 활용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인권법 제정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며, 실질적인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고려해야 할 점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북한에 대한 무리한 압력과 실효성 없는 정책보다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함으로써 북한의 인권 환경이 개선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북한인권법 제정의 배경과 문제점'이란 주제로 발표한 황재옥 교수는 원칙적으로 "북한인권법 제정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북한인권법 제정의 당위성으로 ▲인권은 인류 보편적 가치라는 측면 ▲헌법 상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간주해 북한 주민들을 보호할 책무가 있기 때문에 ▲분단 체제를 극복하고 '통일'의 성취를 위해 등의 이유를 들었다.
황 교수는 "인권의 개념과 북한 주민의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수단에 대한 견해 차이가 존재한다"며 북한 문제에 있어 인도적 지원과 경제적 지원 확대가 우선한다는 주장과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생명권과 자유권의 침해가 우선이라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황 교수는 북한인권법 반대 측이 주장하는 보편적 인권의 범위에 대한 규정의 부재 및 내정간섭이라는 비판을 피하려면, 북한인권법의 목적을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 증진 내지는 생존권 확보라는 포괄적으로 규정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북한 주민의 자유권 개선을 위해서는 공개처형 및 정치범 수용소 수감과 같은 반인도적 행태에 대한 문제를 북한 당국에 제기하고, 북한 주민들의 사회권 신장 즉 식량권과 건강권의 개선을 위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황 교수는 "북한인권법 제정에는 법적인 측면과 정치적인 측면, 국제적인 측면과 남북관계 측면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라고 지적하며, "인권의 보편성에 입각하면서도 남북 관계의 특수성도 고려해야 하고, 자유권과 사회권을 함께 아울러야 한다"고 말했다. 또 북한 당국에 대한 정책과 일반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 역시 함께 추진해야 하는 복합적인 요소들이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북한인권법 제정이 법적인 정당성을 충족하면서 실질적인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 북한의 변화와 통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윤소정 박사는 '예수의 관점에서 본 북한인권법'에 대해 발제했다. 윤 박사는 북한인권법 제정을 반대하며, "북한인권법의 목적이 평화 통일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북한을 공격하고 파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윤 박사는 "북한인권법 제정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에 뭔가 허공을 잡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단순히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공개된 정보가 너무 없기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면서 "'북한의 인권을 걱정하기 이전에 남한의 인권은 문제가 없던 건가'라는 의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 박사는 얼마 전에 생활고로 자살한 세 모녀의 이야기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준 이후에도 생활고로 인한 자살 뉴스가 끊이지를 않는다고 국내 인권 상황을 살폈다. 그 밖에도 쌍용 파업에 참여했던 노조원들과 그 가족들의 잇따른 자살, 한진 중공업 사태, 그리고 전교조 교사들의 불법 해고 등 국내에 산적한 인권 문제들은 언제 해결을 하려고 하느냐는 생각들이 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 모든 문제 해결에 주춧돌이 돼 주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 전혀 제 구실을 못 하고 있는 판국이라고 질책했다.
윤 박사는 남한의 인권 상황 역시 열악한 상황임을 강조했다. 그는 예수가 온다면 남한 사람들 보고 '남의 눈에 티 꺼낸다고 설레발이 치지 말고, 네 눈의 들보부터 빼내라'고 할 것 같다'면서 남한의 인권 침해가 북한보다 더 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그는 양극화 현상 속에서 상대적 박탈감으로 고통받는 남한 사람들보다 북한 사람들이 더 불행하다고 단언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윤 박사는 북한의 인권에 관심을 가진다면 남한의 인권에 관련해서도 그 정도의 관심 정도는 쏟아 주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윤 박사는 부정부패를 일으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기독교인들도 있지만, 이상을 가지고 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기독교인들도 많다고 했다. 그리고 중동 지역에서 인질로 잡힌다든지 그 밖에 여러 가지 부정적 사건을 일으킴으로써 욕을 많이 먹고 있는 현실이지만, 실제로는 한국교회가 우리나라의 정치적·문화적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그는 한국교회가 북한과의 관계 개선 및 남북통일에 있어서도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더불어 "북한이 아무리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이고 악을 행하는 듯이 보여도 남한의 기독교인들은 인내와 이해로 그들을 대하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대로 행하는 것"이라며 "북한인권법 제정도 그런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이라크전과 같은 비극적인 사태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힘줘 말했다.
김성곤 민주당 의원은 "(남북과의 관계에 있어) '예수의 가르침대로 행해야 한다'는 윤 박사의 발언에 '아멘'이라고 말했다"면서 "하지만 현실 정치에 있어 북한인권법는 단순하지 않고 난해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북한의 인권과 민생이 열악한 이유에 대해 외재적 원인과 내재적 원인이 있다고 했다. 외재적 원인으로는 국제 사회의 각종 대북 제재라고 했다. 이것은 주로 북한의 핵 개발 때문에 생긴 것으로, 북한 스스로 대북 제재의 원인 제공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자신들의 핵개발이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했다.
내재적 원인으로는 북한의 체제에 큰 원인이 있다고 김 의원은 강조했다. 김 의원은 "평양 사람들은 잘사는데 시골에 사는 사람은 배고프고, 일부 노동당 간부들은 잘사는데 당원이 아닌 인민들은 헐벗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북한 사회가 일찍이 민주화되고 인권이 성장했다면, 식량 문제는 벌써 해결됐을 것이며 이 논리가 상당 부분 설득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덧붙여서 김 의원은 "한 사회의 자유와 빵의 문제, 즉 인권과 생존권은 분리되지 않고 상호 보완적인 것"이라며 "인간은 생명인 이상 일단은 빵이 먼저이겠으나 빵의 효율적 배분을 위해서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이러한 면에서 보수도 북한의 자유권만 주장해서는 안 되고, 진보도 북한의 생존권만 주장해서는 안 된다"면서 "여기에 북한인권법(주로 새누리당 법안)과 인도적 지원법(주로 민주당 법안)의 타협 가능성과 당위성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