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대를 살면서 사람들은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 어려움이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 구조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는 국가다.
그러나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국가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은 또 다시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걷어서 충당한다. 그러니 경기가 어려울 때는 정부나 국민이나 어렵기는 매 한가지다.
한국사회도 이제 삶의 질, 보편적 복지의 확대에 대한 필요성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지만, 이를 위한 재원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래서 교통법규 위반 등 범칙금이나 과태료를 걷을 때 마다 '부족한 세수를 이런 방식으로 뜯어내려고 하는 것 아니냐' 하는 곱지 않은 시선이 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수 확보차원에서 정부가 다시 꺼내 든 카드 중의 하나가 '종교인 과세'이다. 이는 잊을 만하면 다시 떠오르는 문제인데, 이번에는 어떻게든 매듭을 지어야 할 문제이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는 '종교인 과세'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첫째, 종교인 과세가 '기독교 탄압'은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한국 기독교 신자들은 가뜩이나 언론에 부정적으로 비춰지는 교회의 모습에 불만이 많다. 그런 가운데 세금을 매기겠다는 것을 교회에 대한 종교탄압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인' 전체에 대한 것이지 교회만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다.
둘째, 이 문제를 확대 해석 또는 왜곡해서는 안 된다. 종교인 과세는 신자들의 헌금에 세금을 매기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교회 예배당과 같은 종교 건물에 대한 재산세를 부과하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서 '종교인 과세'이지 '종교세'를 걷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종교인 과세는 종교 자체에 대한 포괄적인 과세가 아니라 목회자 등 종교인의 소득, 즉 사회에서 말하는 월급(사례비)에 대해서 소득세를 징수하겠다는 매주 제한적이고 명시적인 과세다.
셋째, 종교인에게 소득세를 부과하는 것은 성직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다. 전에도 과세 문제가 논의될 때 교계에서는 하나님을 위한 성직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닌데 어떻게 '근로 소득세'를 내냐는 것이었다. 이 주장은 과거에 '노동'이라는 말에 대한이해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나온 말이다.
그리고 지금도 천주교나 일부 교회, 그리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종교인 과세를 하고 있지만, 그 어떤 성직자도 사례비에 과세한다고 해서 자신들의 목회활동이 성직의 영역에서 세속의 영역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성직'이라는 말도 종교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는 모든 신자들의 삶의 활동을 포함하는 것이다.
정부도 이에 대한 논란을 의식한 듯, 이번에는 종교인 과세 항목을 근로 소득이 아닌 기타소득으로 잡았다.
넷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걱정은, 최저 생계비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례비를 받는 목회자에게 과세 한다면 그 어려움이 더할 것이라는 걱정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입법과정에서 세금을 내는 만큼, 다른 부분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논의하여 점차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국가 입장에서 보면 종교인의 비과세는 '지하경제'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이는 성직에 대한모독이다. 오히려 종교인 과세는 성직자의 노동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국가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명예로운 첫 걸음이다.
한국교회는 늘 한국 사회를 위해 중보하며 기도해 왔다. 그렇다면 기도와 함께 실천적인 방법으로 종교인 과세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세금은 국민의 당연한 의무인 동시에, 교회가 다 돌아보지 못하는 우리 이웃의 짐을 국가를 통해 나누어지는 사랑이다.
글ㅣ애틀랜타성결교회 김종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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