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선교유적 훼손, 역사의식의 부족 때문”

교육·학술·종교
신태진 기자
tjshin@chtoday.co.kr
문화재 지정 위해 배타성 지양하고 범교단적 기구 조직해야


1920년대 선교사들이 풍토병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지리산 선교사 시설의 유적. 그곳을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하고자 (사)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이사장 안금남 목사)이 12일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홀에서 ‘지리산 선교유적지 심포지움’을 개최했다.

안금남 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개회선언, 영상시청, 마크 토콜라 주한미국부대사의 축사, 박성민 목사(한국CCC 대표)의 격려사, 인요한 박사(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장)의 인사, 심포지움의 순으로 진행됐다.

박성민 목사는 격려사에서 “초기 선교사들은 교회 뿐 아니라 한국 민족의 계몽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며 “과거 선교사들의 휴양시설이었던 지리산 선교사 유적은 민족사적인 부분에서도 의미를 가지고 문화재로 지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심포지움에서 이만열 교수(숙명여대)는 ‘지리산 수양관 유적지와 기독교 문화재 보존 문제’라는 주제의 발표를 통해 “지리산 유적들이 문화재로 보존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한국 기독교인들의 역사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선교사들이 남긴 유적을 지키고자 열성을 다하지 않고 노력을 게을리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또한 이 교수는 지리산 유적이 문화재로 보존되어야 할 이유로 “지리산 유적은 한국 기독교 수난과 성장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한 운동의 현장이었고 한국의 근대 문화 전파의 흔적을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과거 지리산 유적지에서 선교사들은 사경회를 하며 한국 민족과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초교파적으로 구성된 성경 번역위원들은 예레미야서를 제외한 구약 38권의 개역작업을 실시했었다.

이어 이 교수는 지리산 수양관을 문화재로 등록하기 위한 문제점으로 땅의 소유주인 서울대학교의 동의가 필요한 것, 불교계와 환경 단체들를 설득하는 것 등을 언급했다. 이 교수는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독교의 기존의 배타적인 태도를 지양하고, 범교단적인 기구를 조직하여 접근할 것”을 전했다.

천득염 교수(전남대학교)는 ‘지리산 선교사수양관의 근대 문화 유산적 가치’라는 주제의 발표를 통해 “지리산 선교사 유적지에는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구조가 보이고 또한 영국·독일·일본·미국의 건축 양식과 기술을 도입했다”며 “지리산 선교 유적지는 건축사적으로도 문화재로 지정될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또한 “만약 이곳이 문화재로 지정될 경우 수양관, 교육관, 체험관, 생활관, 전시관, 박물관 등 효용가치가 매우 높다”고 덧붙였다.

이어 남호현 교수는 ‘지리산 선교사 유적의 문화재적 가치’라는 주제의 발표를 통해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재조명과 정당한 가치를 부여하여 후세에 전승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지켜나가는 일이며 정체성을 확보하는 일”이라고 전했다.

한편 지리산 선교사 유적의 역사를 살펴보면 1941년 남장로회 선교사 27명이 소유했던 건물은 모두 41동으로, 1925년 이래 15년 동안 지리산 노고단에 많은 건축비를 투자했지만,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할 후 다른 선교부 재산과 함께 지리산 수양관도 ‘적산(敵産)’으로 분류되어 국가 소유가 됐다. 이후 ‘여순사건’과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지리산은 빨치산의 저항의 근거지가 됐고, 휴전 후에도 10년 가까이 빨치산 소탕작전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며 유적들이 큰 손상을 입게 됐다.

#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 #이만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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