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주해 묵상] 하나님의 약속, 약자의 희생제물을 통해 실현된다

본문: 창 37:1-11

♦오늘의 말씀

창세기는 크게 셋으로 나눈다.
1-11장은 원시역사이며, 12-36장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족장 역사이다.
끝으로 36-50장은 요셉의 역사이다. 다만 38장은 유다가 야곱의 역사에서 독립되는 장이 들어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통해 구체적으로 예표되었다(창 12:3).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를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 복은 장차 오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받는 복이다.
복의 내용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 3:9)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갈 3:26).

아브라함에게 하신 복은 자손의 약속과 땅의 약속을 통해서 성취된다.
자손의 약속은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을 것이다.
땅의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가나안에서 이방 땅으로 이주했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구속사적으로 볼 때 자손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며(갈 3:16), 땅의 약속은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리는 하늘 본향, 곧 하나님의 나라이다(히 11:16).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 야곱에게 하신 율례이다(시 105:9).
이는 이스라엘 전체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다(시 105:10).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 이르는 족장역사는 약속의 선포와 갱신이 이어진다.
이제 요셉의 역사를 통해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입애굽과 출애굽의 약속이 실현된다.
하나님은 이 같은 약속의 성취를 이루는 데 있어서 인간적인 본능과 성정을 배제하지 않으신다.
곧 의인들을 통하여 순탄하게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과 성정으로 인한 증오와 분쟁, 분리됨을 통하여 진행되는 것이다.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가나안 땅으로 귀환하여 거주하였다(1절).
야곱의 족보는 요셉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가 17세 되어 형들과 함께 양을 친다.
그가 아버지의 여종 빌하와 실바가 낳은 아들들(단, 납달리, 갓, 아셀)과 함께 있을 때 그들의 허물을 아버지께 고하였다(2절).

야곱은 노년에 얻은 아들, 요셉을 여러 아들들보다 편애하고, 채색 옷을 입혔다(3절).
이 옷은 길거리에 다니거나 일을 할 때 입는 옷이 아니라 일종의 사치스런 예복이었다.
그로 인해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사게 된다(4절).

하루는 요셉이 꿈을 꾸고 형들에게 말한다(5-6절).
한 꿈을 꾸었는데 자기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단은 자기 단을 둘러서 절했다는 것이다(7절).
이 말로 인해 요셉은 형들로부터 더욱 미움을 사게 된다(8절).

요셉에 다시 꿈을 꾸고 형들에게 말한다.
꿈에 해와 달과 열한별이 자기에게 절한다는 것이다(9절).
그 꿈을 아버지에게도 말하니 아버지가 그를 꾸짖는다(10절).
부모와 형들이 그에게 땅에 엎드려 절하겠느냐고 질책한다.
이로 인해 형들의 시기가 더해졌으나 야곱은 그의 말을 간직하였다(11절).

요셉의 꿈은 장차 그가 애굽에 들어감으로써 성취되었다(42:6; 50:18).
하지만 꿈에 대한 형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으며 아버지의 반응도 그러하였다.
요셉이 꾼 꿈은 하나님의 예언적 성취를 반영하지만, 아버지와 형들은 어린 그의 입에서 나온 불쾌하고 신빙성 없는 미래상에 대해 본능적 거부를 하고 있다.

하나님이 진행하시는 약속의 성취에 인간적인 감정이 충돌하는 양상이 드러난다.
아버지와 형들과의 불편한 감정이 표출되며, 무엇보다 '증오'라는 말이 4차례나 언급되면서 본문을 지배하고 있다.
이것은 약속을 성취하는 요셉의 어두운 미래를 직시하고 있다.

요셉이 꾼 꿈은 확실히 하나님의 말씀을 반영한다.
그리고 그 말씀은 그대로 성취되었다.
하지만 성취의 발단은 인간적 본능과 성정에서 비롯된다.

성경에서 말씀과 상황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말씀묵상이란 무엇인가, 175~179p).
말씀은 영원한 진리이나 상황은 언제나 과거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만일 상황까지 영원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도리어 말씀으로 인한 참담한 결말을 가져온다.
유한하고 예표적인 상황까지도 무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말씀을 대하는 경외심과 정직성을 파괴하고 지성적인 신자들의 양심을 분열시키고 이들이 희미하게 의식하고 있는 진리의 요소마저 억압하여 광신적 신자를 양산하는 경향을 가지게 된다.

예컨대 요셉은 10대에 꿈을 꾸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대로 성취되었다.
그것을 영원한 상황으로 받아들이면 지금도 10대에 꿈을 꾸면 그 꿈이 그대로 성취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상황을 영속화시키는 위험한 일인 것이다.

통일교를 창시한 문선명은 본래 열성적인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신비적 영성가인 이용도목사를 추종하다가 16세 부활절 새벽에 환상을 보았다.
예수께서 영적 구원을 이루었으나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육적 구원에 실패했으니 그로 하여금 육적구원을 이루라는 환상을 본 것이다.
그는 참된 이상을 기반으로 평화세력을 구축하고 육적 구원을 위해 피가름의 역사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몰몬교의 교주 조셉 스미스 역시 15세 때 환상을 보았다.
1805년 가난하고 비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820년 햇빛보다 더 밝은 기둥을 보았다.
환상 중에 모르나이 천사가 나타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였다.
그는 꿈에서 본 환상을 토대로 몰몬경을 만들고 몰몬교를 창시하였다.

안식교 역시 10대 때 환상을 본 엘렌 화이트라는 여자로부터 시작되었다.
1782년 태어난 침례교인 윌리엄 밀러는 22년간 개인적으로 성경을 연구하였다.
다니엘서 8:14절에 예언한 2,300일을 2,300년으로 환산하여 1843년 종말이 온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하였다.
그래서 1841년(49세)부터 재림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그러나 주의 재림은 성사되지 않았고 그를 따르던 많은 이들이 절망을 한다.
그런데 재림이 실패한 이듬해(1842년) 당시 15세의 엘렌 화이트가 밀러를 추종한다.
그녀는 9세에 얼굴에 돌을 맞아 일그러진 상태에서 3주간 무의식에 들어간다.
그 후로도 수차례에 걸쳐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그러다가 밀러를 추종하였고 17세에 최초의 환상을 보게 된다.

재림실패로 인해 크게 절망하고 있던 상황에서 친구 집에서 환상을 본 것이다.
그녀가 본 환상은 재림교도들이 빛나는 하나님의 도성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동시에 자기가 본 환상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예언자의 소리를 듣는다.
그 후로도 거듭해서 환상을 보는데, 1845년 2월 예수님이 하늘성소로 들어가는 환상을 보고
1847년 4월 7일, 하늘성소가 보이고 언약궤가 보이고 그 속에 십계명이 보이는 환상을 본다.
거기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있는데 사람들이 안식일을 어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식일과 및 예수님이 천상의 지성소로 들어간 날을 중시하게 된다.
1860년부터 밀러파가 여기에 가담하여 안식일교파가 정착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떠받드는 안상홍은 본래 안식교인이었다.
그 또한 계시를 받아 하나님의 교회 예수 증인회를 설립했는데, 자기가 죽는 날을 예언하고 그대로 죽었다(1885. 2.25).
하나님의 교회 역시 안식교의 그림자로써 안식일을 지키고 유월절을 지킨다.

한국교계를 들썩이고 있는 신천지 역시 안식교 계통의 장막성전에서 기원한다.
장막성전은 호생기도원 김종규의 환상적 신앙에 빠진 유재열이 17세 때부터 기존교회를 공격하고 종말론을 설파하면서 시작되었다.
장막성전에 몸담았던 이만희가 계시를 받으면서 유재열과 결별하였다.
1970년 장막성전에서 분립하여 신천지를 세우고 성경의 비유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다.

성경해석의 유일한 권위자는 성령님이신데, 비유를 해석하는 이만희가 성령이 된 것이다.
비유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이다.
사람들은 기가 막힌(?) 비유 해석을 듣고 미혹 당한다.
'어디서도 이런 말씀을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단의 세력은 공통적으로 건전한 신학이 부재한 결과이다.
참으로 공통된 것은 그 뿌리가 어린나이에 환상을 통해 받은 계시에 있다는 점이다.
모든 성경은 꿈이나 환상이 아닌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되며 구원사적 관점에서 조명된다.
이단은 바로 이 점을 부정하는 것이다.

요셉의 꿈은 구약시대 하나님이 계시하시는 유한한 방식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기까지 계시하시는 방편이다.
이제는 꿈이나 환상이 아닌 아들의 말씀, 복음이 말씀의 본질이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 1:1-2).

♦묵상 기도

아버지여...
심히 연약한 상황 앞에 강자를 망상하는 종을 징계하소서.
나를 약하고 약하게 만들어 주소서. 그것만이 당신의 능력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약함 안에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인간적 본능과 성정의 희생 앞에 요셉의 삶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그러하였습니다.
유다의 배반, 제사장들의 시기, 빌라도의 야망이 그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제물처럼 잠잠하였습니다.
마침내 당신의 뜻, 구원을 이루었습니다.

오, 아버지...
저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약하기 원합니다.
기꺼이 사람들의 성정에 의해 희생제물되기 원합니다.
이것만이 당신의 뜻을 이루는 길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을 때 많은 열매가 맺는 당신의 뜻이옵니다.
주여, 내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기를 원하나이다.
나를 받아주소서. 나를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묵상선교회 #서형섭목사

지금 인기 많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