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ENS 매출 채권을 이용한 3000억원대 대출 사기 사건의 파장이 가라앉기도 전에 삼성전자 매출채권 위조를 통한 사기극이 불거지고 있다.
중소기업이 물품 납품 대금을 더 빨리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도입된 외상 매출채권 담보대출 제도가 허술하게 운영돼왔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24일 금융당국과 검찰 등에 따르면 스마트폰 등에 쓰이는 터치스크린을 제조하는 코스닥 상장업체인 디지텍시스템스의 전직 임원 남모씨 등 3명은 삼성전자의 매출채권 등을 위조해 한국씨티은행으로부터 1700만 달러(약 180억원)를 허위로 대출받았다.
이들은 지난해 초부터 삼성전자 중국 현지법인 2곳에 모바일용 터치패널을 납품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해외 매출채권을 담보로 씨티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매출 규모를 부풀렸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들은 씨티은행 외에 산업·국민·수출입·하나·농협은행 등 국내 은행 5곳에서도 1000억원대의 대출을 더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과 국민은행이 각각 230억원 안팎으로 가장 많은 액수를 빌려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5개 국내은행에 대한 대출은 대부분 공장 등을 담보로 받은 대출로, 정상적인 담보대출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디지텍시스템즈가 사기 대출을 벌인데다 이미 연체가 시작되고 있어 부실화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금감원은 현재 씨티은행에 대한 검사를 진행 중이며, 국내 5개 은행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점검을 지시한 상태다. 은행들이 삼성전자 납품업체라는 믿음으로 심사를 소홀히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금감원 관계자는 "씨티은행이 매출담보대출에 대해 적절한 심사를 했는 지의 여부를 파악하고 있다"며 "필요할 경우 다른 은행들에 대해서도 조사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에 따라 (사고)액수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은 중소기업이 물품납입 대금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2001년 도입한 어음대체 결제 제도다.
물품을 구매한 기업이 판매기업에 어음 대신 채권을 지급하고, 판매기업은 이를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조기에 현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구매기업이 은행에 대출금을 상환한다.
이런 가운데 비난의 화살은 금융당국으로 쏠리는 모습이다.
감사원이 이미 2년 전에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이 허위 대출신청에 취약하다며 시스템 개선을 권고했음에도 손을 놓고 있다가 대형 사고를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이다.
감사원은 2012년 1월 '어음대체결제수단 이용 대출 등 운영실태' 보고서를 통해 금감원이 국내 은행의 부당·부적격 대출 취급 여부를 제대로 확인·점검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국내 은행이 세금계산서 등을 통해 실제 상거래 유무를 확인하지 않고 대출을 취급해 허위 대출신청 후 구매기업이 판매기업으로부터 대출금을 부당하게 되돌려 받는 등 부당·부적격 대출이 만연하다고 밝혔다.
당시 감사원은 금감원에 "전자방식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 등의 취급정정성 등을 철저히 확인, 점검해 국내은행이 기업구매자금대출을 부당·부적격하게 취급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통보했다.
또 "국내 은행들로 하여금 전자세금계산서 확인시스템 등을 구축해 대출의 적정성을 확인하는 방안을 마련토록 하는 등 검사, 감독 업무를 철저히하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