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버스 폭탄 테러 현장에서 테러범을 온몸으로 막았던 현지 가이드 고(故) 제진수(56) 씨의 영결식이 22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의료원 장례식장에 엄수됐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 기독교 예식으로 1시간가량 진행된 영결식에는 유족과 교회 신자 등 130여 명이 참석했다.
장례식을 집례한 엠마누엘교회 김국도 목사는 "15년 전 이집트에 성지순례를 갔을 때 가이드였던 고인이 친절하게 구석구석 안내했다"고 회상하면서 "테러범이 버스 복도에서 폭탄을 터트렸다면 수십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인이 이를 막아 성실하고 거룩한 목숨을 바쳤다"며 헌신의 삶을 추모했다.
유족들은 제 씨의 시신이 담긴 관이 실려 나오자 애써 눈물을 참으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켰다. 조문객들도 헌화하며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는 등 고인을 넋을 기렸다.
제 씨의 두 딸 나리(28)·레미(26) 씨는 침통한 표정으로 각각 영정사진과 위패를 들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고인과 함께했다. 고인은 서울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에 안장됐다.
현지 여행업체인 '블루스카이 트래블' 사장인 제 씨는 식품회사 중동 주재원을 지낸 경험으로 1989년부터 20여년 간 카이로에서 관광사업과 선교사를 지원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평소 성실하고 다른 사람을 헌신적으로 도와 존경 받던 인물이었다. 역시 독실한 신자인 제 씨의 부인과 두 딸 중 둘째 딸은 한 언론에서 "아버지의 희생에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우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고(故) 제진수(56) 씨의 가족 이야기도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제 씨의 두 딸이 국내 유수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사회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제씨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제 씨의 첫째 딸 나리(28) 씨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 재직 중이다. 둘째 딸 래미(26) 씨는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다.
래미씨가 태어난 지 13개월 되던 해 제 씨와 가족들은 이집트로 옮겨갔다. 제 씨는 그곳에서 '블루스카이 트래블' 여행사를 운영하고 현지 가이드로도 활동하며 아내와 함께 두 딸을 키웠다.
제 씨의 두 딸은 국내 대학에 입학하고자 고등학교를 마치고 부모님 곁을 떠났다. 딸들과 떨어져 지내는 동안 제씨는 1년에 2~3번 국내에 들어왔고, 그 때마다 선물을 꼬박꼬박 챙기는 등 딸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이번 사고는 창립 60주년을 맞은 충북 진천 중앙교회 교인 31명과 이집트인 운전사 등 총 35명의 성지순례단이 10일부터 터키와 이집트 관광을 마치고 이스라엘로 들어가기 직전 발생했다. 16일 이집트 시나이산의 그리스 정교회 성 캐서린수도원을 관광한 성지순례단은 출국 수속을 하기 위해 타바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때만 해도 성지순례단은 여행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수속을 위해 일행이 버스를 내리려는 순간 젊은 아랍계 폭탄테러범이 버스에 오르려 했고, 제 씨는 '당장 내려라'고 소리치며 손으로 가슴을 밀쳐 내쫓았다. 테러범은 손에 스위치를 들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버스에서 내리는 동시에 폭탄이 터졌고 버스는 불꽃과 연기에 휩싸였다.
이번 사고로 버스 앞문과 천장은 크게 파손돼 뼈대만 남았고, 버스 앞자리에 있던 한국에서 동행한 가이드 김진규 목사, 충북 진천 중앙교회 교인 김홍렬 씨, 이집트인 운전사 등 4명이 희생됐다. 그러나 버스 뒤쪽은 비교적 파손이 적었고 뒷자리에 있던 여행자들은 가벼운 상처만 입었다. 주 이스라엘 대사관 박흥경 공사는 "제 씨가 테러범을 막지 않았다면 희생자가 더 많았을 수도 있었다"며 제 씨의 희생을 강조했다.
카이로의 한 선교사는 "제 씨는 한국인 성지순례와 선교사를 도운 선한 사람"이었다며 살신정신과 희생에 애도를 표했다. 현지 선교사들은 이집트의 안정과 치안 확보, 향후 성지순례나 사역을 위해 한국교인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기도를 요청했다.
이번 테러를 일으킨 급진 이슬람 무장단체인 안사르 베이트 알마크디스(아랍어로 '신성한 전당'의 투사들)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이슬람화를 목표로 2011년부터 이집트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며 과격 투쟁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