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배우 황정순 89세로 별세

원로배우 황정순   ©뉴시스

원로배우 황정순(89) 여사가 17일 오후 9시47분께 반포동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에서 별세했다.

요양병원에서 성모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14일부터 폐렴 증세가 악화됐다.

유족은 "최근 치매로 고생했지만, 여전히 연기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면서 "가족들에게는 인자한 어머니였다"며 슬퍼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한국영화배우협회는 "어제 오후 11시께 유족과 얘기를 나눴다. 영화인장으로 진행하려고 했지만 가족들이 조용히 치르고 싶어 했다. 가족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1925년 8월20일 경기도 시흥에서 출생했다. 총 277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1960~70년대 '한국의 대표 어머니상'으로 자리 잡았다.

1925년생인 고인은 열다섯 살인 1940년 동양극장 전속극단인 '청춘좌' '호화선' '성군' 등에 입단해 연기생활을 했다. 1941년 이용민 감독의 '그대와 나'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영화에 데뷔했다.

영화보다는 연극에 주력하면서 '순정애고' '수호선' '대지의 어머니' '역마차' '청춘송가' 등을 통해 연기력을 쌓은 고인은 1945년 극단 자유극장 창립단원이 됐다. 1947년부터는 서울방송국 전속으로 라디오 드라마 '청춘행로'의 성우도 했다. 1949년 이 작품이 장황연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자 주연으로 출연할 기회를 얻게 됐다. 이후 '파시'(1949) '여성일기'(1949) 등의 영화에 잇따라 나섰다.

1950년 4월 중앙국립극장 전속극단 신협에 입단해 '원술랑' '뇌우' 등을 공연한 고인은 1951년 1·4 후퇴 때 극단을 따라 피란을 떠나 대구, 부산 등지에서 활동했다. 같은 해 10월 의학박사 이용복과 결혼했다.

1952년 환도 후에도 신협에 전속으로 있으면서 '햄릿' '오셀로' '빌헬름 텔' 등의 번역극에 출연하며 연극에 주력했다. 1956년 김소동 감독의 '왕자호동과 낙랑공주'에 조연으로 출연했고 '숙영낭자전'(1956) '사랑'(1957) 등으로 본격적인 영화 활동을 시작했다. '사랑'으로 제1회 한국평론가협회상 최우수여우상을 받았다. 영화배우로서 받은 첫 번째 상이다.

이후 '첫사랑'(1956) '봄은 다시 오려나'(1958) '인생차압'(1959) '청춘극장'(1959) 등에서 개성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박서방'(1960) '마부'(1961) '김약국의 딸들'(1963) '굴비'(1963) '월급봉투'(1964) 등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자상한 어머니 역만을 맡은 것은 아니다. 1964년 조긍하 감독의 '육체의 고백'에서는 모든 밤의 여인들로부터 존경과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양공주 역으로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1965년 최은희 감독의 '민며느리'에서도 구박하는 악독한 시어머니 역을 천연덕스럽게 해내기도 했다.

고인을 어머니로 각인시킨 영화는 1967년 배석인 감독의 '팔도강산' 연작이다. 전국 곳곳에 흩어져 사는 아들과 딸을 만나러 유람여행을 떠나는 노부부의 이야기다. 고인은 이 영화에서 코믹하면서도 정감 어린 어머니로서 완숙한 연기를 보여줬다.

1970년대 초반부터 TV 출연을 병행, '딸' '붉은 카네이션' 등에 출연했다. 1971년 극단 동양의 창립공연에도 참가했다. 같은 해 서울예전 이사를 지냈으며 후진양성을 위해 1972년 '황정순 장학회'를 설립해 장학금을 지원했다.

2007년 7월에는 영화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신상옥 감독과 유현목 감독에 이어 세 번째로 영화인 명예의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2012년 제32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공로영화인상, 지난해 제50회 대종상 영화발전공로상을 받았다.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 발인 20일 오전 6시, 장지 경기도 남양주 모란공원. 02-2258-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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