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순(61·사진) 씨가 늦깍이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배우지 못한 한을 가슴에 품고 숨 가쁘게 달려온 늦깎이 학생들의 특별한 졸업식이 6일 오전 10시 부산 사하구 장림2동 은향교회에서 열렸다.
이날 졸업생들은 교회 바로 옆 부경중·보건고 병설 성인 여자중·고교의 만학도들이다.
김해순 씨는 어릴 적 가정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만 겨우 다녔다. 자녀를 대학에 보내고 생활에 여유가 생긴 김씨는 못 배운 한을 풀고자 어른들이 다닐 수 있는 중·고교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수소문 끝에 2009년 3월 부경중에 입학했다. 하지만 얼마 뒤 청천벽력 같은 일이 발생했다.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된 것이다.
"남편 병원비를 마련하려고 재산을 정리하면서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졌어요. 어느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을 남들한테 꼭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김씨는 배움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낮에는 병원에서 남편 간호를 하고 밤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2011년 2월 2년 만에 중학교 졸업장을 받은 데 이어, 같은해 3월 부경보건고교에 입학했다.
김씨의 꿈은 사회복지사가 돼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것이다. 김씨는 "밤에 남편 병간호를 해준 아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중이라서 당장은 나까지 대학에 진학하는 게 당장은 힘들겠지만 꼭 사회복지사 꿈을 이루겠다. 희망을 되찾게 도와준 여러 선생님들한테 감사하다"며 웃었다.
이 학교는 '1950, 60년대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배움의 한을 가슴에 묻을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들을 위한 배움터를 만들자'는 권성태 설립자의 교육이념에 따라 2001년 교육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얻었다.
학교에 강당이 없어 옆 교회에서 열린 이날 졸업식에서는 50∼80대 중학교 졸업생 118명과 고등학교 졸업생 174명 등 모두 292명이 졸업장을 받았다.
고교 과정은 정정엽(87)씨가, 중학 과정은 박영희(69)씨의 나이가 가장 많다. 중학교 졸업생 85%는 고등학교로, 고등학교 졸업생 30%는 대학으로 진학한다.
고교 졸업생 대표인 김철순(66)씨가 이날 답사에서 "부경에서의 시간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 오늘 우리는 2년 전 한없이 작은 모습으로 교문을 들어서던 학생이 아니라 당당하고 자신감있는 사람이 됐다"고 읽어내려가자 식장 곳곳에서는 졸업생들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날 졸업생들의 평균연령은 57세로, 뒤늦은 학구열이 '부질없는 일'로 여겨질까봐 주위에 알리지도 못하고 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은 어려운 가정형편 등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고 1인 3역, 4역의 역할을 해 낸 끝에 졸업장을 받았다.
자궁암 등으로 5번의 대수술을 받은 양은정(66)씨는 아들의 사업에 실패로 며느리가 떠나고 난 뒤 남겨진 지적장애 2·3급의 손자 2명을 돌보면서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고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결혼이주여성인 알레파라티마쿠마리(한국명 김은주·29·네팔)씨는 올해 경상대학교 사회복지행정학과에 합격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그는 "2년간 정이 든 학생들과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기쁨과 슬픔이 교차한다"며 "대학 졸업 후 공무원이 돼 문화 차이 등으로 힘들어하는 이주여성들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환한 웃음을 지엇다.
차숙녀(52)씨는 졸업식에서 "중·고교 4년 과정을 끝마치고 나니 섭섭한 마음에 목이 메인다"며 "앞으로 풍물패 활동을 통해 소외계층을 위해 봉사하면서 사회 어딘가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감회를 밝혔다.
졸업하는 어머니를 축하해 주기 위해 참석한 민은정(33·여)씨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배움의 길로 가지 못했던 어머니가 뒤늦게 졸업을 해서 너무나 기쁘고 자랑스럽다"며 "이젠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머니 자신을 위해서 즐기면서 살아가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경중·보건고는 지난 2001년부터 1년에 3학기씩 2년간 중·고교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성인 여중·고 교육과정을 개설한 이후 올해까지 늦깍이 중학생 1700명과 고등학생 1572명 등 3272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