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은 예로부터 축산업을 해왔지만 여기에 의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겨울에는 영하 40도로 내려가는 혹한으로 야외에서 활동하는 산업이 발전하기 어려워요. 공장을 운영해도 연료비가 많이 듭니다. 그래서 전 몽골을 소프트웨어 소강국(小强國)으로 만드는 꿈을 꿉니다. 집 안에서 컴퓨터 한 대로도 일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 10만 명을 양성하고 싶습니다."
몽골 후레정보통신대학교(후레대, HUREE University of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정순훈 총장은 최근 연세대에서 가진 기독일보/선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영혼이 살아있는 1만 명의 박사급 과학자를 키우고, 10만 명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를 양성하는 것이 우리 대학의 사명"이라고 밝혔다.
아펜젤러 선교사가 세운 배재고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세운 연세대를 졸업한 정 총장은 배재대에서 교수로 재직 중 기획실장, 교무처장을 거쳐 배재대 총장(2003년~2011년)을 역임했다. 배재대 역시 1885년 아펜젤러 선교사가 세운 기독대학이다. 그는 이 외에도 사랑의 공동모금회 대전지회 회장, 세계어린이교육후원회 총재, 한국어세계화재단 이사장을 지내며 대외 활동도 활발히 하여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목련장(2002년)을 받았다.
그의 '인생 2막'은 배재대 총장 시절 김영권 전 건국대 교수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선교를 목적으로 사비를 들여 2002년 후레대를 설립한 김 전 교수는 후레대에서 3년간 봉사한 유학생이 배재대 테솔(TESOL) 교수가 되자 이를 축하하기 배재대를 방문했다. 김 전 교수와의 만남은 우연 같지만 하나님 안에서 필연이고 운명이었다. 80대 노교수로부터 몽골 사역에 대해 전해들은 그가 가벼운 마음으로 "고생이 많으십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시네요"라는 말 한마디를 건낸 것이 인생의 전환을 가져왔다.
가족과 자신의 건강 때문에 사역을 계속하기 어려웠던 김 전 교수는 곧 기독교 신자이자 교육경험도 풍부한 정 총장을 적극 영입했다. 몇 개월 실랑이 끝에 정 총장은 몽골에 가기로 결단을 내렸다. 교수 정년을 6년이나 남기고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다. 사모도 그의 계획을 적극 지지하고 후원자 발굴에 나섰다.
"평생을 외국인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와 직장을 다니다 보니 오래 전부터 은퇴하면 세계에서 가장 오지에 가서 선교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수가 직업이었으니 오지에서 작은 대학을 운영하면 돈도 적게 들고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평소 많은 나라를 방문하면서 러시아 캄차카 지방이 가장 오지라고 생각하고 있던 그는 은퇴 후 몽골에 가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막상 몽골에 도착해 보니 정말 선교가 필요한 나라라 너무 감사하다"며 "이곳에서의 사역이 즐겁다"고 정 총장은 말했다.
"오대산 정상 높이의 1500m 고지에다 겨울이 길고 추운 대륙성 기후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의식구조, 가치관, 문화 차이가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습니다. 좋고 나쁜 것을 떠나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겪는 어려움이겠죠."
그는 배재대 총장 시절 출판된 아펜젤러 선교사의 설교집에서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가 단 한 줄도 없는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사역지에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몽골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며 몽골에서 겪은 어려움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그는 "몽골은 전 세계에서 러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공산정권이 된 나라여서인지 감사, 성실, 근면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것 같다"며 "예를 들어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일을 나눠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몽골의 기독교 인구는 20년 전 4명에서 오늘날 20만 명으로 놀라운 성장을 이뤘다. 3백만 몽골인구 중 대부분은 라마불교를 믿지만, 사회주의 배경으로 인해 종교에 비친화적이고 제도화된 종교가 없어 '종교의 무주공산(無主空山)' 같다고 그는 말했다. 또 도덕성, 윤리성이 약화돼 기독교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몽골 사회를 위해 기독교가 많이 기여해 왔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며 "작년에는 정부종합청사 앞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들어서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몽골에는 한국 기독교인이 세운 기독대학이 3곳이나 있다. 이공대인 후레대를 비롯해 경영학과 영어강의로 유명한 몽골국제대학교(MIU), 인문사회학이 강한 울란바토르대학교가 바로 그곳이다.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진 세 대학들은 충돌하지 않고 교수 교류, 연합집회 등도 활발하게 추진해 왔다. 몽골 정부는 종교활동에 대해 우호적이지는 않지만 합법적으로 종교비자를 받으면 교회 설립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의 정치, 종교 행위만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그는 "이 때문에 공식적인 선교활동은 못하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우회적 선교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 현실이 열악한 몽골에서 인재를 육성하는 대학교육은 가장 절실한 문제다. 초중고등학교 과정을 10년 만에 마치기 때문에 한국보다 2살 정도 어린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지만 교육의 질은 그리 높지 않다. 학교 시설, 교수 인원도 부족하고 각 분야에서 연구를 많이 한 실력 있는 교수도 부족하다. 특히 이공대는 드물다.
한국에서 우수 교수진을 영입하고, 시설 확충, 연구비, 장학금 지원 등에 힘써서 후레대는 재작년 전국 110여 개 대학 중 순위 10위 안에 들었다. 정 총장은 "역사가 짧은데도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47명의 후레대 교수 중 몽골인 20여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한국인이며, 이들 모두 선교사다. "강한 선교 의식이 없으면 이 곳에서 일하기 어렵습니다. 환경도 열악하고 몽골 교수 수준의 월급을 받으
면서 헌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학에서 정년이 될 때까지 교수하겠다는 분들이 많이 오면 좋겠어요."
정 총장은 "대학에서 오랫동안 일하는 교수가 필요하다"며 "의외로 젊은 교수들이 가족들까지 데려와 열심히 사역한다. 선교에 열정이 강한 사람들이 우리 대학에 모여있다"고 자랑했다.
그는 향후 비전으로 1만 명의 박사급 과학자를 길러내되, '영혼 있는' 기독 과학자를 키우고 싶다고 밝혔다. "졸업 후 이들을 교회로 보낸다면 몽골교회 자립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그는 예상했다. 또 "인재 중에 기독교인이 많아지면 기독교 이미지도 좋아진다"고 덧붙였다. 가난한 몽골의 경제 발전을 위해 10만 명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를 양성하는 계획도 세웠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는 집 안에서 컴퓨터 한 대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프로그래머에 대한 인기가 시들해져서 일감을 인도, 베트남, 중국 등에 맡기고 있는데, 그 중 일부를 몽골에 맡긴다면 한국의 하드웨어와 몽골의 소프트웨어가 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겁니다."
그는 후레대에 대한 한국교회의 기도와 지원도 요청했다. "가난 때문에 학생의 절반 이상이 점심 식사를 거르고, 3분의 1 이상은 학업을 그만둔다"며 "우수한 학생 유치를 위한 장학기금 모금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후레대는 지방의 우수 학생 및 국제학생 유치를 위한 기숙사 건립, 소외 빈민촌 어린이들을 위한 무료병원 운영기금,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센터 건립기금 등을 모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