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감독 양우석)이 19일 4만3956명을 추가, 개봉 32일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국내 개봉작 중 열 번째 1000만 영화, 한국영화 중에서는 아홉 번째다. 1330만명으로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는 '아바타'(감독 제임스 캐머런)를 정조준하기에 이르렀다.
'변호인'은 개봉 전부터 영화 외적으로 주목받았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실화를 바탕으로한 작품이라고 알려지면서 "노무현 미화 영화" "정치적 의도가 담긴 영화"로 지목되며 '평점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주인공 송강호(46)도 비난에 휩싸였다. 지난해 11월29일 언론 시사회에서는 "급전이 필요했느냐"는 수치스러운 질문을 받기도 했다.
개봉 후에는 불법 영상파일이 유출되는 사건도 겪었다.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를 캠코더로 촬영한 '직캠' 영상이었다.
'변호인'을 둘러싼 논란은 영화가 뚜껑을 열자 사그라들었다. 관람객 대부분은 '변호인'에 좋은 점수를 줬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가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을 대상으로 평점을 조사한 결과 10점 만점에 9.8점, 9.7점, 9.69점을 받았다. 평단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변호인'이 감동적인 영화라는 데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반전이었다.
'변호인'의 성공은 다양한 요소가 가장 좋은 방식으로 결합된 결과이지만, 역시 가장 큰 공신은 송강호다. 송강호의 '변호인'이고, 송강호가 '변호인' 자체였다. 송강호는 '변호인'에서 말 그대로 천의무봉의 연기를 보여줬다. 주인공 '송우석'이 세무변호사로 성공하는 과정을 다룬 전반부에서는 특유의 생활 연기로 관객을 웃겼고, 송우석이 인권변호사로 변모하는 후반부 다섯 번의 공판 장면에서는 관객을 울렸다.
뜨거움과 차가움, 희극과 비극을 자유자재로 오가고, 비워야 할때와 채워야 할 때, 드러내야 할 때와 감춰야 할 때를 한 치 오차 없이 연기하는 송강호에게 평단의 찬사가 이어진 것은 당연했다. "지난 오랜 세월 우리는 송강호라는 배우의 모습을 스크린에서 봐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그의 연기에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고 말한 봉준호 감독의 찬사는 결코 립서비스가 아니다.
평론가 허지웅은 TV프로그램에서 "'국가란 국민이다'"라는 대사로 관객을 울릴 수 있는 배우는 송강호밖에 없다"며 "다른 배우의 입에서 저 대사가 나왔다면 감동적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인'에서 송강호가 보여준 연기력은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것이다.
좋은 연기만 보여줬다면 송강호가 '변호인' 그 자체라고 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송강호라는 배우의 존재감이 이 영화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우석 감독은 "독립영화 정도로 제작하려던 영화가 송강호가 참여하기로 하면서 규모가 커졌다"고 털어놓았다.
송강호가 '변호인'에 합류한다는 말에 곽도원, 김영애, 이성민, 오달수 등 최고의 조연들이 합류하게 됐다는 것이 양우석 감독의 전언이다. 건국대 영화과 송낙원 교수는 "'변호인'은 송강호가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5억원 미만의 제작비로 만들어지려던 영화가 상업영화 규모로 제작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송강호의 힘"이라고 짚었다.
'평범한 사람이 어떤 사건을 통해 각성하고, 영웅으로 거듭난다'는 서사는 익숙하고 평범하다. 하지만 누구도 싫어 할 수 없는 이야기다. 매년 여름 국내 영화시장을 공략하는 할리우드 히어로 영화가 그렇고, 양우석 감독이 직접 밝혔듯 고전 '춘향전' 또한 "이몽룡이 과거에 급제해 변학도를 무찌르는" 이야기다.
'변호인'은 이런 서사 구조를 그대로 따라간다. '어려움을 딛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남자가 고졸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도 부산에서 제일 잘 나가는 변호사로 성공하고, 다시 인권변호사가 돼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다'는 내용은 기본적으로 상업적 성공을 담보하는 것이었다.
'변호인'을 배급한 뉴(NEW)의 양은진 팀장은 "어떤 사전 정보 없이 시나리오를 본 회사 직원들이 만장일치로 '변호인'을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로 평했다"며 "시나리오에 대한 믿음이 배급을 결정하게 했다"고 전했다.
양 감독의 매끄러운 연출은 '변호인'의 이야기에 힘을 더했다. 연출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난 부분도 없다는 게 중론이다. 영화평론가 황진미는 '변호인'을 "관객이 이야기를 따라가기 매우 쉽게 잘 만들어진 영화"로 평했다. "단순히 영화의 텍스트가 좋다고 해서 좋은 영화가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며 "좋은 서사를 매끄럽게 그려낼 수 있어야 관객에게 호소력을 갖는다"고 봤다.
영화 '26년'이 웹툰 작가 강풀의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했지만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영화의 만듦새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여기에 이 영화가 상당부분 실화라는 것, 게다가 이 실화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어떤 대통령의 이야기라는 점은 '변호인'이라는 텍스트에 파괴력을 부여했다. 노무현을 그리워 하는 사람, 그를 미워하는 사람, 그에 대한 호불호가 없는 사람도 '변호인'을 봤다. 대중이 익히 봐온 인물을 영화화했다는 점 만으로도 궁금증을 자아냈다.
단국대 영화과 이정하 교수는 "'변호인'이 실화라는 측면은 관객이 영화에 빠르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며 "실화를 바탕으로 명확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대중은 영화를 관람하는 행위가 이 영화를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것이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하게 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변호인'의 흥행 대성공은 영화의 메시지와 시대적 상황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변호인'은 메시지가 분명한 영화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대사를 통해 그대로 전달된다. 영화적으로 세련된 방식은 아니지만, 명확하다. 관객이 명장면으로 손꼽는 것들도 대부분 분명한 메시지를 담은 직설적인 대사가 배우의 입을 통해 나오는 부분이다.
관객들은 극중 네 번째 공판에서 '송우석'이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가장 감동인 부분으로 지목한다. 또 우석이 진우(임시완)의 사건을 조사하다가 선배변호사 상필(정원중)을 찾아가 "이게 말이 됩니까. 이건 아니잖아요"라고 말하는 장면, 우석이 어머니 순애(김영애)에게 "포기 안 합니다. 절대 포기 안 합니다" 같은 장면도 지지를 받았다.
헌법 제1조 2항이 대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 대중에게 큰 울림을 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대사에(사실은 대사라고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울컥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담겨 있다면 그것은 역시 우리 사회가 헌법 가치조차 제대로 구현해내고 있지 못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보는 게 옳은 판단일 것이다.
2008년 촛불시위 때부터 최근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과 철도 민영화 논란 그리고 '안녕들 하십니까' 신드롬까지 2000년대 후반 이후 우리나라는 형식적 민주주의에 대한 논란을 끊임 없이 겪어 왔다. 권력층과 기득권층에 대한 불만은 있되 해소할 방법이 없던 차에 '변호인'이 시기 좋게 개봉했다.
"영화가 사회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하지만 관객을 잠시나마 치유하는 역할은 할 수 있다"는 양 감독의 말은 정확한 것이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라고 소리치는 송우석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카타르시스는 결국 현실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다.
평론가 황진미는 "만약 '변호인'이 2000년대 초반 한국 사회에서 개봉했다면 결코 이만큼 흥행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영화의 메시지와 시대적 상황이 최상으로 결합했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