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도착한다(1절).
동방사람은 이스라엘과 인접한 동북지역의 아람인들과 마찬가지로 동남지역의 아랍인들을 의미한다.
하지만 야곱은 그곳이 정확이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
목자들에게 물어봄으로써 비로소 그곳이 '하란'근처임을 알게 된다(4절).
야곱은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워있는 우물에 이른다(2절).
목자들은 '큰 돌'로 우물뚜껑을 덮어 두었다가 모든 떼가 다 오면 우물뚜껑의 돌을 옮기고 양떼에게 물을 먹인다. 그리고 다시 돌 뚜껑을 덮는다(3절).
여러 사람들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우물은 목자들이 다 함께 있을 때만 그 뚜껑을 여는 것이 당시의 관습이다.
야곱이 목자들에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자 그들은 하란이라고 말한다(4절).
외삼촌 라반을 아느냐고 묻자 그들이 안다고 하자 그의 안부를 묻는다(5절).
목자들은 그가 평안하다고 답하고 마침 라반의 딸 라헬이 양을 몰고 우물가로 오고 있다고 말한다(6절).
야곱은 라헬과 독대할 심산으로 목자들에게 속히 양떼의 물을 먹이고 떠나라고 말한다(7절).
그런데 그럴 수는 없다(8절).
전술한대로 우물의 돌 뚜껑은 목자들이 다 모였을 때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물에 대한 개인적인 횡포를 막기 위해서이고, 또한 돌 뚜껑이 너무 무거워 모두 힘을 합해야 열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양을 치는 일은 여자의 몫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다.
그 사이에 라헬이 도착하자 야곱은 혼자 힘으로 우물뚜껑에서 돌을 옮기고 라헬이 몰고 온 양떼에게 물을 먹인다(9-10절).
이어서 야곱은 라헬에게 입 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11절).
자기는 그녀의 아버지 라반의 조카이며 리브가의 아들이라고 알린다(12절).
이에 라헬이 달려가 아버지 라반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12절).
라반은 그의 조카 야곱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 맞춘다(13절).
야곱의 저간의 일을 다 고하자, 야곱을 혈육으로 받아들인다.
"너는 나와 한 피붙이이다"(14절).
야곱은 라헬과 라반을 처음으로 만났다.
이것은 하나님이 야곱을 지키시며 인도하신 섭리의 결과이다.
이들의 처음 만남은 매우 호의적이며 각자의 가장 좋은 면을 보여주고 있다.
야곱은 자기희생적 헌신으로 라헬을 대했으며, 라헬은 의심 없이 달려가 야곱의 신분을 고한다.
라반 또한 즉시 달려와서 영접하고 안고 입 맞추며 맞아들인다.
이들 사이에 일어날 간계와 갈등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며 오직 하나님의 섭리 속에 감추어져 있다.
인간의 일생을 좌우하는 내적인 상처는 대부분 가까운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육신의 피붙이로 인해 파멸까지 치닫는 상처가 야기되는 것이다.
이는 육신의 피붙이인 가정의 속성이 본성적 이기심과 충동이 야기되며 표출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오셨다(마 10:34).
그로 인해 아버지와 아들이, 어머니와 딸이,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한다(마 10:35).
집안 식구 간에 서로 원수가 된다(마 10:36).
그것은 주님보다 가족을 더 먼저 사랑하는 본성적 이기심을 심판하시는 것이다(마 10:37).
이는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가 세워지고 그 공의로 가정을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므로 가정에 환난이 오면 구성원 각자가 하나님께 나아가 자기 죄를 직고해야 한다.
특히 말씀과 무관하게 본성적 이기심을 따라 살았던 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주신 징계를 합당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을 공의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은 그 가정을 의로 세우신다.
이 때 가정은 영생의 공동체로 승화된다.
육신의 피붙이는 간계와 갈등이 야기되나 영생의 공동체는 천국의 모형이다.
예수께서 육신의 피붙이들이 와서 자기를 데려가려고 하자 참된 가족을 천명하신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 3:33-35).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믿어 영생을 얻는 것이다(요 6:40).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이다.
복음을 통해 영생을 얻고 그 결과 하나님과 사귐 안에 살아가는 이들이 진정한 가족이다.
이들의 만남은 영속적이며 영원까지 이르는 바, 이들은 서로에게 '영원의 벗'이다(눅 16:9).
♦묵상 기도
아버지여...
내가 만난 이들은 다 어디에 있습니까!
서로 환영하며 서로 좋은 것을 주며 만났습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평생을 같이할 것을 맹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숨어있는 본성적 이기심과 자기주장 의지는 간계와 갈등을 야기했습니다.
사랑을 주고받던 사이가 상처를 주고받던 자로 전락했습니다.
그 사이에서 역사하는 죄의 세력은 간과되었습니다.
오, 아버지...
육신의 피붙이는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주의 심판을 받아 마땅합니다.
스스로 평화를 얻을 수 없으며 검을 받아 마땅합니다.
이는 당신의 공의로 다시 세우고자 하심입니다.
아버지...
제게 검이 임했습니다. 대부분의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벌거벗은 자 되어 심판의 칼을 받았습니다.
하오나 그것을 통해 새로운 만남을 주셨습니다.
이는 영생의 사귐을 갖는 영원의 벗들과의 만남입니다.
이 만남은 오직 그리스도만 자랑하며 영원까지 이어집니다.
오늘 세미나, 영생의 복된 공동체를 소망합니다.
참석하는 목회자들이 복음과 생명의 진리를 알고 영생의 복된 공동체를 세워가게하소서.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오니 성령님이시여, 역사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