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여러분의 집입니다. 저는 잠깐 빌렸을뿐입니다."
빌 드블라지오 뉴욕시장이 보통의 시민 5천명을 초대한 특별한 집들이를 했다. 12년간 주인이 없었던 뉴욕시장 관저 그레이시 맨션은 모처럼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왁자지껄했다.
5일(현지시각) 이스트리버를 굽어보는 맨해튼 이스트엔드 애버뉴 88가의 그레이시 맨션앞엔 점심 무렵부터 사람들의 긴 행렬이 이어졌다. 드블라지오 시장이 관저 입주를 앞두고 보통사람들을 먼저 초대했기 때문이다.
이날 입장한 시민들은 대부분 추첨을 통해 방문의 기회를 잡았고 드블라지오 시장의 선거운동을 도운 자원봉사자와 기부금을 낸 후원자들도 포함됐다. 드블라지오 시장은 무려 5시간을 시민들과 악수하고 포옹하며 사진 포즈를 취해주는 서비스를 했다.
그는 "그동안 대부분의 뉴요커들은 215년된 뉴욕시장 관저를 구경할 기회가 없었다.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그들의 집을 보여줄 수 있어 기쁘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그레이시 맨션은 2002년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 취임이후 빈 집으로 있었다. 억만장자인 블룸버그에게 자신의 호화콘도가 있기도 했지만 2000년에 만나 사실혼 관계인 다이아나 테일러가 법적으로 부인이 아니라서 관저 입주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대신 블룸버그는 시장 재임 12년간 사재 700만 달러를 들여 이곳을 보수해 파티 등 행사 및 의전용으로 활용했다.
당초엔 드블라지오도 관저 입주를 망설였다. 블룸버그와는 사뭇 다른 이유였다.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시장의 하나인 그는 맨해튼 중심의 엘리트주의를 반대하고 중산층과 친서민 정책을 내걸어 당선됐다.
호화로운 시장 관저대신 현재 살고 있는 브루클린의 연립아파트에서 계속 거주하는 것이 어울린다는 여론도 있었고 브루클린테크고교에 재학중인 아들 단테의 통학이 불편한 문제도 있었다.
그러나 경호상의 어려움과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장 관저를 외면하는 것이 지나친 이미지 관리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가족회의 끝에 입주를 결심한 바 있다.
이날 집들이에선 추운 날씨에 밖에서 길게는 두시간을 기다린 시민들을 위해 핫초콜렛과 애플사이다를 준비했고 기타와 탬버린 연주자들의 흥겨운 음악도 선사했다.
브루클린에서 아내와 함께 왔다는 안젤로 쿠크자는 "뉴욕에서 오래 살았지만 시장 관저를 볼 기회는 없었다. 어쩌면 평생 한번 있는 일 아니겠냐"며 기대감을 보였다.
브롱스에서 온 초등학교 상담교사 케빈 던바는 블룸버그 전시장이 이런 행사를 했더라면 어떻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블룸버그요? 이런 건 절대 할 수 없는 사람이죠"하고 웃었다.
방문객중엔 어린이들도 있었다. 맨해튼에 사는 데릭 황(11) 군은 "관저가 시민들의 것"이라고 강조한 드블라지오 시장이 "이 집이 너의 것이라는걸 알고 있니?"하고 묻자 고개를 갸우뚱한채 "아니요"라고 답했다.
또 브루클린의 초등학생 치니어 브라운(10)은 지난 2일 드블라지오 시장이 눈폭풍으로 휴교령을 내린 것에 대해 "학교 안가게 해줘 고마워요"라고 말해 주위의 웃음을 자아냈다.
드블라지오 가족이 언제 입주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드블라지오 시장은 "가족들이 바빠서 (입주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레이시 맨션이 대중에게 개방된 것은 과거 에드 카치 시장(1978~1989) 시절 한 차례 있었다. 드블라지오 시장이 가족들과 함께 정식 입주한 후에도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행사를 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