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佛, 그리스 `쌍끌이 구제' 나섰다

유럽
양국 정상, 적극적 구제 의지 표명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14일 저녁 게오르기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와 3자 화상회의를 갖고 그리스 지지를 천명한 것은 그동안 소극적인 자세와 달리 본격적인 그리스 구제에 나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혀진다.

유로존(유로화 사용국) 위기 해결의 관건은 유럽 최대 경제권인 독일과 제2 경제권으로 독일의 파트너인 프랑스의 `결단'에 달렸다는 것이 시장 전문가들의 견해다.

당장 두 국가로부터 유로존 위기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이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유로존 위기가 심화하면서 모호했던 두 국가의 입장이 그리스 구제 쪽으로 좀 더 선명해지고 있다는데 이번 회의가 갖는 의미가 크다.

서로 처한 상황이 다르고, 이해가 엇갈리는 내부 정치권 등의 변수를 고려할 때 `적극적인 해결사' 역할을 자임하기는 어렵지만, 지난 주말 그리스의 추가 긴축안 발표 이후 나타난 양국의 공동 보조는 일단 그리스 구제를 위한 우호적 여건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독일 여론 눈치 보며 입장 저울질 = 독일의 경우, 프랑스와는 달리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그리스 지원에 대한 국민의 여론이 좋지 못한 것이 그동안의 걸림돌이었다.

최근 독일 리서치 기관인 엠니트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독일인의 53%가 그리스가 구제금융 제공 조건을 이행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지원에 반대하며 디폴트(부도)가 나도록 내버려두겠다고 답했다.

독일 보수 정치권에서는 연일 `그리스 때리기'에 나선 것도 이런 여론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교민주당(CDP)의 연정 소수파인 자유민주당(FDP)을 중심으로 "가 그리스 부도에 대비해 은행 등 회사들에 대한 지원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는 말들도 흘러나왔다.

12일에는 필립 뢰슬러 경제부장관이 신문 칼럼을 통해 '질서 있는 디폴트'를 언급했고,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같은날 "그리스가 디폴트를 피할 수 있을지 의심이 간다"는 말을 보탰다.
당일 유럽 금융시장에서는 "독일이 그리스에 대한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며 그리스 디폴트 가능성 쪽에 베팅하는 분위기가 급속히 번져갔다. 다급해진 뢰슬러 장관이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기를 바란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증시 폭락을 막지 못했다.

독일 조야에서 이처럼 그리스 압박 발언을 쏟아낸 것은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내쫓겠다기 보다는 과감한 긴축을 촉구하려는 의도였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오는 29일로 예정된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분담액 증액안에 대한 연방의회의 표결을 앞두고 자국내 여론을 우호적으로 돌리기 위해서 확실한 다짐을 얻어내려는 속셈이었다는 것. 그리스는 결국 독일의 압박에 밀려 부동산 특별세 신설 등을 통해서 20억 유로를 마련하겠다며 추가적인 긴축안을 발표했다.

이후 독일 정부도 재빨리 `강경 모드'에서 `신중 모드'로 선회하는 모습이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13일 발언은 독일 정부의 입장에 대한 의심을 충분히 진정시킬 수 있었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통제되지 않은 지급불능 사태는 그리스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까지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현 상황에서의 최우선 순위는 이를 방지하는 것"이라며 그리스 디폴트를 고려하고 있지 않음을 분명히했다.

그동안 모호했던 독일 정부의 그리스 구제 의지는 오는 29일 2차 구제금융안의 의회 통과를 기점으로 좀더 분명한 노선을 보일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독일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유로존 재정난이 단기적으로는 유로화 전체를 뒤흔드는 위기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독일의 위상을 더욱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돼야 한다는 이중적인 여론이 정책 결정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격탄 맞은 프랑스, 그리스 구조에 잰걸음 = 독일에 비해 프랑스는 그리스 구조에 위기 발생 초기부터 적극적이다. 산 넘어 작은 불이 어느덧 앞산을 태우고 문앞까지 당도했기 때문이다.

그리스에 자금이 많이 물려 있는 소시에테 제네랄과 크레디 아그리콜 등 프랑스 2,3대 은행의 신용등급이 14일 한 단계씩 강등된 데 이어 최대 은행인 BNP 파리바도 신용등급 하향조정 가능성을 경고받았다.

현재 프랑스는 국가 신용등급이 최고등급인 '트리플 A(AAA)'이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재정적자 규모와 순부채 비율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

그리스의 우환이 남의 일이 아닌 프랑스는 이미 지난 8일 열린 의회에서 지난 7월 합의한 그리스 추가 지원분 가운데 프랑스의 분담금 증액안과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가 제시한 긴축정책안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추경예산안을 가결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가진 정상회담에서 유로본드 발행은 필요하지 않다는 공식 입장을 정리했지만, 이는 독일의 입장을 수용한 측면이 강했다.

그러나 불과 한달만에 이같은 사정은 달라졌다. 이미 자국의 은행들이 유로존 위기의 충격파에 뒤흔들리고 있는 상황으로 돌변했기 때문.

사르코지 대통령은 그리스에 대한 긴축 이행 요구 목소리를 높였고 소극적인 독일을 종전보다 강하게 밀어부쳐 보다 적극적인 대응에 나설 것을 재촉해왔다.

14일 저녁 구제금융 조건인 재정 적자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는 그리스의 의지 표명에 사르코지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가 "그리스는 유로존에 남을 것"이라고 화답함에 따라 그리스는 흉흉한 부도 위기설에서 한동안은 벗어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경제위기 #그리스구제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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