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요셉의 시편 묵상 나눔의 아침] '시편 109편 25-26절'

워싱턴신학교 정요셉

안녕하세요! 시편 묵상 나눔의 아침입니다. 오늘도 새 힘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이렇게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함께 나눌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또 저희의 훼방거리라 저희가 나를 본즉 머리를 흔드나이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좇아 나를 구원하소서" (시109:25-26)

시인은 "나는 또 저희의 훼방거리라"고 하나님께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용되는 '훼방'이란 말은 '경멸' 혹은 '수치'라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이 아무리 허망했고 죄악으로 가득찬 삶이었어도, 이 삶이 '놀림감'이 된다는 것은 정말로 곤욕스러운 처지임이 틀림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시인의 경우 자신의 허물로 인함이 아님이 분명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야 얼마나 그 마음의 상심이 더 크겠습니까?

또한 시인은 "저희가 나를 본즉 머리를 흔드나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시인은 가까운 친구로 사귀던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고, 마치 전혀 모르는 사람과 같은 대우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머리를 흔들며 시인이 당한 고난을 보며 노골적으로 무시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처지의 시인에게 있어 내적으로 느끼는 '죄의식'보다 더 깊은 영혼의 상처가 되는 것은 어쩌면 '수치심'이었을 것입니다. 이 '수치심'을 최대한 자극하여 시인을 깊은 어둠으로 몰아 넣으려는 대적들의 의도가 그 근저에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세대에 있어 '수치심'을 주는 행위를 세상의 표현으로 말하면 '왕따'라고도 합니다. 이 세대가 한 가련한 영혼을 '왕따' 당하게 하는 것은 '수치심'을 자극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세대에게는 '죄의식'보다 '수치심'이 더 깊은 영혼의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수치심'을 주어 한 어린 영혼을 자살로 몰아 갔던 마음아픈 이야기들을 우리는 간혹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슬픔 속에서도 시인이 "주의 인자하심을 좇아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호소할 수 있었다는 것은 주님이 주시는 특별한 은혜였음이 분명합니다. 성도들의 삶에 있어 이 슬픔이 변하여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이 될 수 있음을 한 신학자는 자신의 글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기쁨을 선도하는 슬픔은 슬픔을 뒤따르는 기쁨보다 더 바람직하다. 가벼운 슬픔은 수다스럽지만, 큰 슬픔은 벙어리가 된다. 우리의 슬픔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자. 우리의 비극을 통해 하나님을 보자. 우리의 슬픔마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투자하자."(손바닥만한 신앙수필/김호식). 오늘도 대적들의 수치심을 자극하는 여러가지 훼방으로 고통 중에 있는 성도님들의 마음에 예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위로의 말씀이 임하기를 바라며 기도드립니다.

(존 칼빈 주석/ 시편 109편)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자들에게 선포했던 저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견뎌낸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프고 쓰라린 일이다. 율법은 율법을 멸시하는 자들을 가리켜 말하는 "네가 놀램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될 것이라"(신 28:37)고 한다. 다윗은 이러한 종류의 시험을 받은 것이다. 다윗은 또 자기가 정죄를 받은 사람으로 여김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잔인한 조롱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담당해 주시기 위해서 찾아오셨다."

#워싱턴신학교정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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