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규 칼럼]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기적

박석규 은퇴목사   ©기독일보

성탄 찬송으로 세계 사람이 애창하는 찬송이 109장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다. 오스트라리아 한 작은 성당 신부 죠셉 모어(J. Mohr)가 작사하고 반주자이며 음악 교사인 그리버(F.X. Gruber)가 작곡했다.

배후에 이런 스토리가 있다. 1818년 12월의 밤, 성탄절을 일주일 앞두고 26세 주임 신부 죠셉 모어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가오는 성탄절 축하예배를 드려야 하고 준비해 온 연극 발표를 해야 하는데 하나뿐인 오르간이 고장 났기 때문이다. 고쳐 보려고 여기 저기 뜯어 보았으나 고칠 수 없었고 시골이라 수리공도 없었다.

그렇다고 새 오르간을 구입할 형편도 못되어 걱정하다 성당에 나가 기도 드리고 창밖을 내다 보았다. 그 밤은 유난히 고요하고 거룩한 밤 이었다. 밤 하늘을 물그러미 바라보는데 누가복음 2장 말씀이 생각났다. 베들레헴에 탄생하신 예수님이 떠올랐다. 그러자 시 한편이 쓰여졌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 기도 드릴 때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영광이 둘린 밤 천군 천사 나타나 기뻐 노래 불렀네 왕이 나셨도다 왕이 나셨도다'

4절 까지 쉽게 써내려 갈 수 있었다.

다음 날 그리버를 만나 사연을 말하며 작곡을 부탁했다. 그래서 오르간도 없이 기타 연주로 성탄예배 때 오스트리아의 시골 성당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처음 불리워졌다.

그후 오르간을 수리하러 왔던 제작자 칼 마우라허(Carl Mauracher)가 베껴가서 스트라서(Strasser) 어린이 합창단에게 주었다. 합창단은 가는 곳마다 특히 성탄절에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불렀는데 환호와 극찬이 대단했다. 삽시간에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유럽 전역에 퍼졌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적인 성탄절 찬송이 되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에 이런 실화가 있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독일군과 영국군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참호속에서 추위에 떨며 고향을 그리워들 하고 있었다. 언제 다시 총격전이 시작될지 모르는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그 살벌하고 정막하던 밤에 독일군 참호에서 한 병사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여기 저기서 따라 부른다. 어느새 고요한 합창으로 변했다. 그러자 영국군 참호속에서도 한 두 명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듯 모든 병사들이 '고요한 밤 거룩함 밤'을 부르고 있었다. 낮까지 총격전과 포격이 오가던 전쟁터에 양국 젊은이들은 밤새도록 自國語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불렀다.

동이트자 이런 일이 벌어졌다. 한 독일 병사가 참호 밖으로 나오더니 영국군 쪽으로 조심스럽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순간 긴장한 영국군들은 총을 겨누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넣었다. 그런데 순간 놀란 것은 독일군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보는 순간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독일병사의 손에는 총이 아닌 작은 나무에 초를 단 크리스마스 츄리가 들려있었다. 영국군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참호 밖으로 나와 크리스마스 츄리를 들고 오는 독일군 병사쪽으로 걸어가기를 시작했다. 양국 지휘관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모든 병사들이 참호에서 나와 중간 지대에서 만나 악수를 하며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누었다.

그랬다. 1941년 12월 24일 성탄절에는 세계 전쟁사에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다. 유래가 없는 비공식적 휴전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박석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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