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종 목사 칼럼] 내안에 사라가 있다

이은종 목사ㅣ한인선교교회 담임

창세기 18;9-15절에서 아브라함을 찾아온 세사람은 식사를 마친후에야 아브라함에게 말을 시작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일보다, 응답보다 관계가 더 중요하며 예배가 봉사보다 먼저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주의 일하기에 앞서..응답을 위해 기도하기에 앞서 먼저 예배를 회복해야 하며 주님과 충분하고도 친밀한 교제에 들어 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을 찾아 오신 하나님은 사라를 찾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사라는 아직 불신앙가운데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다고 했을때 아멘하지 못했을뿐 아니라 속으로 웃었습니다. 이유는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믿을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12절에 보면 사라의 말속에는 부정적인 불신의 단어들이 충만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웃고" 노쇠하였고" 늙었으니"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라에게는 불가능에 대한 확신으로 충만해있습니다. 사라의 불변한 신앙고백은 나의 사전에는 가능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이 사실에 대하여 의심에 여지가 없습니다. 사라는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며 불가능한 자신만 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내게 예수 믿은들 무슨 낙이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제한하는 사라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묶어 버리는 사라입니다. "아이를 낳는다면 벌써 낳았겠지..이제 무슨 아이냐!" 내 나이가 몇살인데.."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적으로는 낙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면 새로운 낙이 생깁니다. 그런데 사라는 하나님은 믿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습니다. 교회는 나오지만 예배는 드리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믿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나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드리지만, 기도는 하지만, 생각이 많고 늘 불안합니다. 주여! 하면서도 외롭고, 주여! 하면서도 번뇌로 충만합니다. 불신 가운데 있는 사라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속이 타십니다. 왜냐하면, 이제 응답과 약속의 성취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음 없는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속은 타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침묵하심에 속이 탄다고 거꾸로 말합니다. 14절입니다.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때에 아들이 있으리라" 그렇습니다. 응답과 성취를 위하여는 세가지가 필요합니다. 1. 하나님의 능치 못하심을 의심없이 믿는 믿음의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2.믿음의 그릇을 준비해도 때가 되어야 합니다. (기한이 이를때에) 그런데 그때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시며, 내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입니다.

3."사라야 아들을 낳으라"가 아닙니다."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입니다. 아마도 아브라함과 사라, 스스로가 아들을 낳으려고 한다면 아브라함과 손을 잡고 유명한 한약방을 찾아 전국을 다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진장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불가능하지만... 그런데 사라야"아들을 낳아라"가 아니라, 사라가 아들을"낳으리라" 입니다. 하나님이 낳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아이를 낳는 주체가 아브라함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할일은, 그냥 믿기만 하고 기다리면 됩니다. "아들을 낳으리라"는 말씀이 낳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중요합니다. 경수가 끊어지는 절대절망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만 끊어지지 않았다면 역사는 일어 납니다. 아이는 우리가 낳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고 낳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흥있으라" 하시면 부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돈이 있으라" 하시면 돈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배우자가 생겨라" 그러시면 사막에서도 애인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들에게 "살아 빠져라" 하시면 살들이 빠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말씀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전능자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막에서 꽃피게 하며,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시며 광야에서도 메추라기를 날아오게 하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그냥, 서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문제 속에 오셔서 말씀하시며 함께 고통을 나누시는 분입니다.

사라는 하나님의 능치 못하심 앞에서 웃었습니다. 겉으로는 안 웃어지만 속으로는 웃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니다. 우리는 겉으로는 아멘입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노멘입니다. 겉으로는 "믿습니다"입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고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우리 속에는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이 아니라, 능치 못함 투성이인 사라가 살아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시퍼렇게 말이죠. 하나님은 응답 받기전에 그 불신에서 믿음으로 전환하여 응답 받을 그릇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불안하고 많은 생각으로 번뇌케하는 인간적인 믿음에서 하나님의 믿음으로 승화시키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믿음을 가지고는 어떤 노력으로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24년동안 꿈쩍 하지 않으시던 하나님이 움직이기 시작하십니다. 그때를 주목해야 합니다. 그때가 아브라함이 변하기 시작한 때입니다. 할례를 받고 거룩을 회복한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작정 기도만 하면 기복신앙입니다. 거룩함을 회복하고 기도하면 복음신앙입니다. 우리는 응답이 시급하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거룩함의 회복이 먼저입니다. 우리는 응답이 시급하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그릇 준비가 먼저입니다. 우리가 변하면 하나님도 변하십니다. 우리가 거룩해지면 하나님도 움직여 주십니다. 거룩을 회복하고 주님과 충분한 교제를 가지십시요. 그리고 일년을 기다리십시요. 아들을 낳게 될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수증기가 올라가야 비가 내리는것 아닙니까?

우리도 겉으로는 사라처럼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적어도 남들이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날마다 속으로는 하나님을 향하여 웃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향하여 웃습니다. 그래서 기도보다 생각이 앞서고 기도보다 자기노력이 우세합니다. 그래서 기도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당신 안에는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하나님이 살아 계십니까? 아니면 불신앙으로 충만한 사라가 살아 있습니까? 대답하셔야 합니다.

#이은종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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