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를 위한 신학강좌] 기독교 미술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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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기자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김병호 교수(현대기독교미술학회 부회장)

기독교 미술의 출발은 카타콤(Catacomb·로마의 박해를 피해 초기 기독교인들의 지하묘지 겸 예배장소) 미술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3세기~5세기 경 만들어졌던 카타콤의 최고 깊이는 지하 8층이었으며 보통은 지하 2~3층이었다. 로마시 외곽의 카타콤은 800km를 넘는 것도 있었다. 그 거리는 부산을 왕복하는 거리다.

그 안에서 길을 잃으면 되돌아 나오기 힘든 것들도 있어 로마 병정들은 카타콤에 들어갈 수 없었다. 또 지하세계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로마의 문화이기도 했기 때문에 '카타콤'이 유지될 수 있었다.

또한 카타콤이 만들어진 지역들은 대부분 응회질(암)로 이루어져 파기도 수월했고, 시간이 지나 공기와 만나면 더 단단해져 무너질 염려도 없었다. 또한 응고 과정에서 악취와 부패물을 흡수해 시신(屍身)을 보관하기에 좋은 조건이었다.

카타콤은 크기에 따라 로쿨로(Loculo), 포르마(Forma),아르코솔리아(Arcosolia), 쿠비쿨라(Cubicula), 크립타(Crypta)가 있다. 로쿨로는 직사각형 모양의 구멍 묘소이며 쿠비쿨라는 예배처소이자 가족묘이다. 크립타는 예배처소로, 그 안에서 성경을 읽거나 찬양을 부르면 울려 다 듣게 된다. 그러면 그곳에 살던 기독교인들이 같이 나와서 예배드리며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됐다.

또한 카타콤에 보관된 묘와 벽면에는 그들의 신앙고백적인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 그림들은 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Story)'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성경을 가지지 않았던 시대였기 때문에 그 그림들이 '성경적 텍스트'가 되었다.

카타콤 안에 그림들의 대표적인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요나의 스토리', '나사로', '사자굴 속의 다니엘','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 등이었다.

이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그곳의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박해받던 크리스천들에게 로마는 니느웨 같은 곳이었고, 그들을 박해하는 로마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숙명이자 사명은 그들에게 위로가 되었다.

한국의 장묘 문화같이 그 안에도 문화가 있었는데, 그 문화는 원시적인 헬레니즘의 핵심인 고전주의 그 바로 전단계인 아르카이크 문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카타콤 안에 그림들은 아르카이크 문화 그림들의 형식(Form)을 빌려 성경의 스토리를 담아냈다.

아르카이크 문화에서 '기도하는 사람'이란 뜻의 오란스(Orans, 서양의 고대·중세미술에서 빈번히 볼 수 있는 두 손을 든 남녀의 입상이나 반신상)의 모습을 가져와서 마리아가 기도하는 모습으로 활용했다. 그 형식이 지금까지 마리아의 모습이 됐다.

마리아와 오란스의 판단 기준은 인물 옆에 포도나 비둘기, 양 등 기독교적인 상징물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또한 '송아지 맨 남자상'을 활용해서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그려냈고 이것이 기독교의 전통적인 그림이 됐다.

'예수님의 열두제자' 그림은 '이교도들의 망자들을 위한 식사' 그림에서 가져왔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좌우에 제자들이 각각 6명씩 있는 이 형식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차용했으며 오늘날까지 교회 미술에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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