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그의 신앙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약속의 선물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린 것이다.
이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존재는 물론 하나님이 주신 최상의 존재물까지도 그 근거가 자신의 권리주장에 있지 아니하고 자유로운 의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에게 있음을 반증한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내 것이 아니요, 그 근거가 하나님의 선하신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
주신 자도 하나님이시며 취하신 자도 하나님이시다.
인간은 거기에 항변할 수 없으며 신앙의 사람은 선하신 하나님의 의지를 신뢰한다.
하나님이 두 번째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다(15절).
아브라함이 말씀 앞에서 독자 이삭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하나님이 그에게 큰 복을 내리신다(16절).
그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이 될 것이다(17절).
그의 씨가 대적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다(17절).
또 그의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다(18절).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였기 때문이다(18절).
이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그 종들에게 가서 브엘세바에 거주한다(19절).
이후에 어떤 사람이 그의 형제 나홀의 자녀들에 대해 고한다(20-24절).
밀가가 그의 형제 나홀에게서 낳은 자녀들은 모두 8명이다.
그 중 아람의 조상 그므엘이 있고 리브가의 아버지 브두엘이 있다.
후에 리브가는 이삭의 아내가 된다.
처음 아브라함에 대한 자손의 약속은 은혜로 주어졌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하늘의 뭇별처럼 많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다(창 15:5).
아브라함은 그것을 믿어 의롭게 되었다(창 15:6).
이는 아브라함이 어떤 행위를 함으로써 주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롬 4:3).
아브라함의 행위가 조건이었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삯이 된다(롬 4:4).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순종이 약속의 조건이 된다.
그가 말씀에 순종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의 후손을 번성케 하신다는 것이다.
창 15장, 하나님의 처음 약속은 무조건적이나 오늘 본문의 약속은 조건적이다.
이는 자손에 대한 약속에 관해 서로 대립되어 보인다.
이는 이스라엘 구원사에 있어서 신학적 변천을 함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것은 16절, '하나님이 스스로 맹세하는 것'과 '그의 후손이 바다의 모래와 같다'는 표현이 BC 6세기, 바벨론 포로기에 사용되는 표현이다.
나아가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에서 이유를 나타내는 '은즉'은 열왕기서, 예레미야서, 에스겔서에서 사용된 언어이다.
그러므로 모리아산의 이야기는 이삭과 같은 유일하게 택함 받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가 되어 비극의 벼랑가에 서 있을 때를 반영한다.
곧 바벨론 포로로 끌려온 백성들에 대하여 그 자손들이 여전히 축복을 받고 번성하는 근거를 아브라함의 신실성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언약을 깨뜨렸으나 하나님은 독자라도 아끼지 않고 바친 아브라함의 신실성을 근거로 언약을 유지시킨다는 사상이다.
그의 자손들을 여전히 번창하며 나아가 모든 민족이 그를 통해 복을 받는 것이다.
독자를 아끼지 않고 내어준 아브라함의 신실성은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하나님의 신실성을 예표한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언약밖에 있는 죄인들을 위해 내어주셨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언약 백성 이스라엘이 여전히 존재하고 번성하는 근거는 독자를 바친 아브라함의 신실성에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백성된 우리 신자가 여전히 존재하고 번성하는 근거는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신실성에 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종말론적인 삶을 살아간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
그 선은 모든 상황을 통하여 아들의 형상을 닮게 하는데 있다.
모든 주권은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지며, 이 일에 누구도 대적하거나 정죄할 수 없다.
그것은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하나님의 신실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아들의 형상을 닮도록 하기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신실성!
이것은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한다.
♦묵상 기도
아버지...
허탄한 생각에 사로잡힐 때마다 내 영혼은 혼미해집니다.
육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어둠속을 걸어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생명의 길로 이끄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기 아들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당신의 신실하심입니다.
아버지...
저는 언약에 충실하지 못하나이다.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기보다 상황 앞에 반응하여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말씀을 경외하기보다 사람들의 말을 더 중시합니다.
저의 행실을 보건데 어찌 영생의 복을 전하는 자가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행하시는 것은 당신의 신실하심입니다.
아버지여...
오늘도 내게 일어난 모든 상황은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 믿나이다.
그것은 내 목적이 아닌 아들의 형상으로 빚어지는 것입니다.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고 내어주신 당신의 신실하심이 이를 이루어갑니다.
내 영혼을 잠잠히 당신께 의탁하나이다. 내 영혼을 받아주소서.
당신의 손으로 아들의 형상으로 빚어주소서. 종은 죽기까지 복종하겠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