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4일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로 지목된 채모군의 개인정보의 불법열람·유출 과정에 총무비서관실 소속 조모 행정관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사실로 확인함에 따라 '채동욱 찍어내기' 논란을 비롯한 정치적 후폭풍이 우려되고 있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날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브리핑을 통해 "시설담당 행정관 조모씨가 지난 6월11일 자신의 휴대폰으로 서초구청 조이제 행정국장에게 채모군의 인적사항 등 확인을 요청하는 문자를 발신하고 불법열람한 채군 가족관계 등의 정보를 전달받은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조 행정관은 지난 6월11일 채군의 주소지인 서초구청의 조 국장에게 문자메시지로 채군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본적을 알려주고 가족관계등록부 조회를 요청했다는 의혹을 사 왔다.
조 행정관은 서울시 공무원 출신으로 청계천복원사업 팀장 등을 맡다가 2008년 청와대로 파견됐으며 지난해 4월 부이사관(3급)으로 승진해 청와대 총무시설팀 총괄행정관을 맡아 왔다.
공무원 감찰을 담당하고 있는 곳은 총무비서관실이 아닌 민정수석실이기 때문에 조 행정관의 업무는 개인정보 열람과는 무관하다. 직책이나 업무 성격을 고려할 때 채군의 신상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도 없고 개인정보를 열람할 만한 필요성도 전혀 없다는 얘기다.
특히 조 행정관의 직속 상관이 이재만 총무비서관이라는 점에서 진실여부와는 관계없이 정치적 의혹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이 비서관은 정호성 제1비서관, 안봉근 제2비서관과 함께 15년 간 박근혜 대통령을 곁에서 지켜온 인물로 이들은 최근 '문고리 권력 3인방'이라 불릴 만큼 실세로 부상했다는 평이다.
더구나 조 행정관이 문자를 보낸 날은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을 수사 중이던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국가정보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기 3일 전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조 행정관이 채군의 개인정보 불법유출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것은 '윗선'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청와대가 채동욱 찍어내기에 나선 증거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가 이번 사건을 조 행정관의 '개인적 일탈'로 규정하고 신속히 직위해제를 결정하면서 사태 수습에 나선 것은 이처럼 찍어내기 논란이 불거지는 것을 적극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이 수석은 "그동안 청와대와 연관해 좀 지나친 억측이나 단정적으로 표현했던 부분들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는 개인적인 일탈"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조 행정관에게 개인정보 불법열람을 부탁한 인물이 안전행정부 소속 공무원 김모씨임을 밝히고 "그 외에 청와대 인사로부터 부탁을 받았거나 한 사실은 전혀 없다"며 윗선 개입설을 적극 부인했다.
하지만 찍어내기 의혹의 진위와는 별개로 채 전 총장의 혼외자녀 의혹에 관여하거나 개입한 일은 전혀 없다던 청와대 소속 직원이 이번 일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정치적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당장 민주당은 청와대가 채동욱 찍어내기를 주도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개인적인 일탈 행위라는 해명은 '꼬리자르기'라고 주장했다.
박용진 대변인은 "국정원 수사 방해를 위한 검찰총장 찍어내기 공작정치를 청와대가 주도하고 있다는 국민적 의심이 사실로 드러난 만큼 이번 일은 결코 단순하게 끝날 사안이 아니다"라며 "관련자를 직위해제 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개인적 일탈행위로 일을 몰고 가는 것은 전형적인 꼬리자리기 수법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청와대 직원들의 기강해이 문제도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청와대는 최근 경제수석실 소속 행정관이 민간 기업으로부터 상품권과 골프접대를 받은 사실을 확인하고 원소속 부처로 복귀시킨 바 있다.
"먼저 청와대 직원들의 자세가 바로 서야 하고 각 부처가 공직기강을 확립해 과거의 비정상적 관행과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던 박 대통령의 말이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올만 하다.
나아가 청와대가 이번 사건에 늑장대응했다는 지적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언론보도가 나오기 전까지 이번 사건을 인지하지 못했고 문제가 불거진 직후에는 조 행정관이 관련 보도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그러다가 조 행정관에게 개인정보를 넘겨준 조 국장의 언론인터뷰가 보도되는 등 사건이 커진 후에야 민정수석실을 통한 경위 파악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