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그랄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속인다.
그러자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서 그녀를 데려간다.
아비멜렉은 가나안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으로 '나의 아버지는 왕이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나타나 사라가 남편이 있는 여자임을 알려준다(3절).
이에 아비멜렉은 사라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하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다(4절).
도리어 아브라함이 그녀를 동생이라고 속였고 그녀 역시 그를 오라비라고 하였다고 말한다(5절).
아브라함과 사라 둘 다 아비멜렉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하나님은 아비멜렉의 의로움을 인정하시고 그 때문에 그를 막아 범죄하지 않게 했다고 하신다(6절).
하나님은 아비벨렉에게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보내라고 명하신다(7절).
아브라함은 선지자요, 그가 기도하면 아비멜렉이 살 것이다.
만일 사라를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아비멜렉과 그에게 속한 자가 다 죽을 것이다(7절).
여기서 선지자(예언자)의 의미는 종말론적 말씀을 선포하는 자가 아니라 권능이 부여된 '대로'(代禱)를 하는 자이다.
아비멜렉은 이방나라의 왕이었으나 그 도덕성은 아브라함을 압도한다.
남의 아내를 취하는 것을 큰 죄로 생각하고 그로 인해 나라 전체가 죄악에 빠질 뻔 했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 아브라함은 매우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아비멜렉의 추궁에 대해 그랄 땅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없어 아내로 인해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11절).
실제 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내 이전에 이복누이라고 둘러댄다(12).
그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되자 아내와 약속을 하였다.
가는 곳마다 사라로 하여금 자신을 오라비라고 칭하라 한 것이다.
이것이 사라가 남편 아브라함에게 베푸는 은혜였다(13절).
이방사람은 그 일을 죄로 생각하나 아브라함은 거리낌 없이 핑계를 대며 변명한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환대하고 그의 아내도 그에게 돌려준다.
양과 소와 종들을 이끌어 그에게 주고 원하는 곳에 살 것을 허락한다.
사라에게는 은 천개를 그녀의 오라비(아브라함)에게 주어 그녀의 수치를 가려준다(16절).
그가 아브라함을 남편이 아니라 오라비라고 칭한 것은 아브라함의 수치를 덮기 위함이다.
아비멜렉에 말한 '사라의 수치를 가리다'의 원문의 의미는 '사람들의 눈을 네 앞에서 가리우다'이다.
이로써 사라는 모든 사람 앞에서 결백하여졌다(16절; 네 일이 다 해결되었느니라)
이제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을 위하여 예언자(선지자)의 자격으로 대도(代禱)를 드린다.
그러자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들의 병을 다 고쳐주셨다(17절).
그래서 그들은 다시 아기를 낳을 수 있게 되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의 집에 있는 모든 여자의 태를 닫으셨던 것이다.
후손에 대한 약속의 성취가 임박하였다.
1년이 지나면 하나님이 사라를 통해 아들을 주실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사라는 다시 위기에 빠져든다.
약속의 성취가 임박한 시점에서 당한 위기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강권적 개입으로 위기는 모면되고 도리어 재산이 증식되는 이해할 수 없는 헤피 엔딩으로 끝이 났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실패와 아비멜렉이 경건이 심히 대조된다.
언약 안에 있는 자는 다시 실패하나 언약 밖에 있는 자는 경건하다.
언약 안에 있는 자가 볼 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인데 그들은 매우 경건한 것이다.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역사와 사람들... 무엇으로 가늠할 수 있을까.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이 세세토록 찬양받으실 일이다(롬 9:5).
중요한 것은 언약 안에 있는 자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언약은 보존된다.
약속을 받은 자가 실패하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진다.
물론 이것이 약속받은 자는 어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는다는 비합리적 교조주의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약속받은 자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약속은 파기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시 23:3).
♦묵상 기도
아버지...
실패한 자를 쓰시는 당신의 뜻이 무엇이옵니까!
나의 자랑을 폐하기 위함입니까! 나에 대해 손으로 입을 가리기 위함입니까!
오직 주의 자비와 긍휼만을 자랑하기 위함입니다.
내 입에서 당신의 무궁한 사랑만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사나 죽으나 주의 것으로 되나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속히 당신 품에 안기는 것이옵니다.
다만 육체로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오늘도 빚진 자로 하루를 맞이합니다. 그 빚을 갚는 자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