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지금 충전 중이다. 멀티 탭에 무슨 열매마냥 주렁주렁 달려 있는 충전기들은 그 모양도 크기도 가지 각색이다. 휴대전화에서부터 노트북과 태블릿, 그리고 앞으로는 안경과 자동차까지 충전해야 할 판이다.
카페나 공항에 가보면 전기 콘센트가 무슨 한 줄기 햇살인양 주변을 둘러싸고 모르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충전'이라는 단어는 디지털 시대에 매우 익숙한 단어이지만, 일상생활에서 쓰기게 된 것은 놀랍게도 얼마 되지 않는다. 이전에는 충전 개념이라기 보다는 건전지를 갈아 끼우는 정도였다. 배터리 효율도 그리 좋지 않았을 뿐더러 굳이 충전해야 하는 것도 별로 없었고 대부분 전원이 필요하면 코드를 꼽고 사용하면 그만이었다.
'디지털 노마드'니 '유비 쿼터스'니 하는 말은 몰라도, 전원 코드의 연결 없이 버스에서, 전철에서, 걸어 다니며 전자기기를 마음껏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수백 수천 페이지의 논문에서 말해왔던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 모를 그런 세상을 이미 살고 있는 것이다.
충전의 핵심은 역시 전기 에너지이다. 어떻게 에너지를 얻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효율적으로 담아 놓을 것인가는 디지털 시대의 핵심과제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전기 에너지를 화석 연료를 통해서 그리고 원자력 발전을 통해서 얻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를 욕망하는 사람의 마음을 채우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석유와 석탄으로 대표되는 화석 연료는 에너지뿐만 아니라 인류 발전의 전 분야에서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냉난방과 교통수단의 발전 등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별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전방위적인 모든 부분은 화석 연료의 도움을 받는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현대문명이 화석 연료의 기초 위에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화석 연료는 언젠가는 고갈된다는 것과 그것으로 인한 환경 오염이 생긴다는 점이다. 우리는 늘 석유가 언제 고갈 될 것인가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있다. 세계의 경제 환경은 즉각적으로 석유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유가는 곧 세계 경제의 눈에 보이는 지표가 된다. 그리고 환경파괴, 지구 온난화, 탄소 배출 제한 같은 모든 것들이 다 화석 연료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화석 연료의 구원 투수로 화려하게 등장한 원자력에 대해 세계는 끊임없는 찬사와 박수 갈채를 보냈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나서서 원자력의 안전성을 장담하고 나섰고, 인간의 탐욕스러운 무한 에너지에 대한 욕망을 실현시켜 줄 것만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그러나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겪으면서 원자력 발전은 이제 전지구적인 재앙을 가져오는 흉물로 낙인 찍히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후쿠시마의 작은 원자력 발전기의 고장 하나가 거의 태평양 전체를 거대한 방사능 수조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고 하니 기우(杞憂)는 아닐 것이다.
이 세대는 충전을 욕망하는데 그 충전을 채워줄 에너지는 이처럼 인류의 편의에 기여하기도 하고 반대로 인류를 끊임없이 위기의 길로 내 몰고 있다. 에너지는 인간의 욕망의 디지털화 된 파편이다. 인간의 욕망이 멈추지 않는 한 에너지에 대한 갈증은 도를 넘을 것이며, 이로 인해서 인류와 자연은 방전돼 배터리처럼 고갈되어 갈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더 많은 전기 에너지의 생산하고 절약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절제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오직 인류를 위해서만 지구의 모든 생명과 환경에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제는 전기 에너지의 생산과 충전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마음의 에너지, 생명의 에너지를 충전하는데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욕망의 방전은 생명의 충전이다. 매일 아침 전화기를 충전하여 상쾌하게 집을 나서듯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도 날마다 새로운 인문학적인 교양으로 충전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