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 고전 2:1-9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께로부터 '만들어진 존재'(being made of God)이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야 할 존재'(being born of God), 곧 영생의 존재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영생의 존재가 되기 전 죄인이 되었고 하나님과 분리되었다. 이제 영생을 주시는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하신다.
그래서 바울은 이 지혜를 선포할 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행하였다. 고린도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전할 때 웅변술이나 탁월한 지혜로 하지 않았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만을 단순하게 전하였을 뿐 그것을 전하는 방식인 설득력 있는 지혜와 말을 경계한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힘은 궁극적으로 믿는 자를 하나님과 연합시키는 수단으로서의 진리이다(1:30 주해 참고).
그래서 그가 그들 가운데 거할 때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다(3절). 이렇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할 때 그들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는다.
한편 당시 헬라적 지혜를 전하는 유랑설교자들은 내용보다 전달하는 기술을 더 중시하였다. 웅변술이라는 수사학적 기술로 청중들을 감동시키고 굴복시켜 자기를 따르게 하였다. 그래서 수사학적 테크닉이 뛰어난 자는 자기주장과 자기과시를 통해 많은 무리들을 추종자로 두었다.
이에 바울이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떤 것은 듣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닌 말의 기교에 설득 당함으로 인함이었다. 만일 그렇게 되면 듣는 자들은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 자신에게로 돌이키고 만다. 이로써 성령의 역사는 중단되고 창세전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지혜를 폐기되고 만다.
사실 복음 선포에 있어 장애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복음전도자 자신이 될 수 있다. 이는 전도자 자신이 조금이라도 드러나면 성령의 조명은 중단되고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것을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의 약함을 수단으로 하나님의 비밀인 복음을 전한 것이다.
또한 바울이 복음을 설득력 있는 말로 하지 아니한 것은 그 영역은 성령이 하시기 때문이다. 다만 전도자는 십자가에서 일어난 일, 궁극적으로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단순히 선포하기만 하면 된다. 곧 전도자는 마치 플래카드를 내어걸듯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선명하게 알리는 것이 본분이다.
♦묵상 기도
아버지여...
한 때 복음전도자를 자처했으나 속고 속이는 자였습니다.
약하고 두렵고 떨기는커녕 자신감으로 가득했습니다.
말의 지혜로 사람들을 설득하여 복음전도자로 인기몰이를 했습니다.
내 자신이 복음의 장애물인 것도 알지 못한 채 열심을 내는 자였습니다.
오, 아버지...
제게 임한 공의의 심판은 참으로 은혜이옵니다.
복음을 전하며 내 영광을 구하는 패역한 자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나를 주장하고 증명하는 수단으로 복음을 이용한 가증한 자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을 내 것으로 가로채며 복음에 대한 반응을 끌어내는 속이는 자였습니다.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나를 멸시하며 죽기를 구한 자, 어찌하여 다시 살리셨나이까?
아버지...
오늘도 심히 두렵습니다.
영생의 복음을 전하는 자, 저 자신이 장애물이 될 수 있음이 두렵습니다.
복음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려는 유혹에서 건져주소서.
이는 성령이 하시는 일이며, 종은 꾸밈없이 단순히 아들의 일을 전하겠나이다.
보란듯하지 않아도 주신 자리에서 주신 영혼들을 위해 충성되이 섬기게 하소서.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며 전하는 것은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을 사모하기 때문이옵니다.
주여 나로 겸비하여 당신 안에서 행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