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크로반(필리핀)=로이터/뉴시스】느슨해져 덜렁거리는 십자가 조각의 교회 첨탑이 부서진 주택과 망가진 차량과 쓰러진 전선과 뽑힌 나무들을 무심하게 내려다 보고 있다. 망연자실한 생존자들은 피해액을 헤아리고 있다.
흰 반바지에 웃통을 드러낸 한 사람이 쪼구리고 앉아 울고 있다. 다른 한 사람은 동강이 난 유개 트럭에서 평소대로 그릇을 씻는 시늉을 하고 있다. 이들 옆에는 시신들이 널부러져 있다.
필리핀에 세계 최강의 태풍이 몰아친 이틀 후인 10일 1만 명이 단 하나의 도시, 타크로반에서 죽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남자, 여자 그리고 어린이들은 무너진 목조 가옥들의 위험한 널판 쪼가리를 피해 걸어가면서 사라진 가족들과 물건들을 찾아 다닌다.
22만 명이 거주하는 이 도시에서 손상을 피한 주택은 단 한 채도 없어 보인다. 이 도시는 수도 마닐라로부터 남동쪽 580km에 위치한 레이테주의 주도이다.
생존자들은 줄을 서서 쌀과 물 배급을 기다리고 있다. 몇 사람은 시신이 썩는 역한 냄새를 피하기 위해 넝마로 얼굴을 가리고 멍하니 앉아 있다.
임신 8개월의 한 여성은 눈물을 흘리면서 강풍에 식구 11명이 사라져 버린 이야기를 해준다.
공항에는 혹시 군용기로 빠져나갈 수 있을까 해서 시에서 3시간을 걸어 온 진흙 투성이의 사람들이 서 있다. 시에서 나오고 들어가는 도로는 붕괴 잔해와 무너진 나무들로 통행이 불가능하다. 군용기는 한 차례 비행에 110명을 태운다. 노약자가 우선이다.
의대생인 한 여성 주민은 살던 동네를 알아볼 수 없었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우리의 집들은 해골 같아졌고 우리는 식량과 식수가 동났다. 식량을 찾아 온갖 곳을 뒤졌다." "배급 트럭마저 약탈당했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사람들은 식량을 찾아 좀비처럼 걸어 다닌다."
타크로반 시는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가 1944년 10월20일 17만4000명을 성공적으로 상륙시켜 태평양전쟁에서 연합군이 대승을 거둔 곳 근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