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30여만명의 엄청난 사상자를 낸 동남아 쓰나미, 지금도 방사능 피해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 천재지변으로 인한 재난에 대해 '인간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할까', '이런 재난도 하나님의 섭리인가?' 이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25일 장로회신학대학교(총장 김명용)가 '현대의 고난문제-대재앙, 비탄, 죽음'이란 주제로 개최한 제3회 한·일 신학자 학술회의에서 이 같은 논의가 진행됐다.
이날 오전 9시 장신대 세계교회협력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진행된 행사에서 '현대의 대재난에 대한 고찰-기술문명적 재난의 신학적 의미에 대하여'란 주제로 발제한 현요한 교수(장신대 조직신학 교수)는 1755년 리스본 대지진 이후 제기된 신의 섭리에 대한 질문이 어떻게 '섭리 신앙' 대신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대응을 촉진시켰는지 분석해 발표했다.
그는 당시 리스본에 엄청난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입힌 대지진은 니콜라스 시라디의 'The Last Day'라는 책을 인용하며 당시 사람들로 하여금 신의 섭리에 대해 심각한 질문을 가지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도대체 이런 끔찍한 재난이 왜 일어나는가?','이것이 신의 섭리인가?' 라는 질문들이었다.
현 교수는 "시라디는 그 지진은 분명히 하나의 거대하고 끔찍한 자연재해였지만 그것은 단순한 자연재해로 끝난 일이 아니었다고 설파했다"며 "그는 그것이 리스본과 함께 18세기 유럽 시민사회의 모든 병폐들을 일거에 쓰러뜨린 하나의 '필요악(必要惡)'으로 보았다"고 전했다.
시라디는 그의 책에서 "그 지진을 통해서 식민지 착취에 의존한 포르투갈의 허약한 경제 기반, 가톨릭 교권과 왕권의 투쟁, 종교재판과 고문, 화형이 횡행했던 무시무시한 사회, 엄격한 계급제와 가난한 하층민들의 고통 등 포르투갈의 고질적 병폐들이 백일하에 드러났으며, 또한 일거에 무너져 내리게 되었다고 진단했다"고 현 교수는 말했다.
현 교수는 "당시 포르투갈의 총리로 임명된 카르발류 이 멜루는 군대를 동원해 치안을 확립하고 폐허에 깔린 사람을 구조했으며 식량 배급을 실시해 식량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심을 없앴다"며 "또한 군대와 건강한 사람들의 힘을 동원해 잔해를 치우고 시체를 수습하고 리스본을 재건하는데 나섰다"고 전했다.
그는 또한 "카르발류는 신의 심판과 회개의 기도만을 강조하면서 복구 작업을 방해했던 예수회 신부들을 추방하였으며 그들에게서 몰수한 토지와 학교 수도원 등의 자산을 매각해 개혁자금으로 충당했다"고 전했다. 그럼으로 교육제도를 근대화하고 대중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해 상업학교를 세웠으며 전국에 800개가 넘는 국립 초중등학교를 세우는 계획을 세워 부분적으로 실행하기도 했다.
덧붙여 현 교수는 "사실 카르발류 총리가 원했던 것은 그 사제들이 리스본 시민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도시 복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설교를 하는 것으로, 그들을 배척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실제 카르발류는 악명 높은 종교재판소의 검열권을 박탈했으며 새로 왕립출판사를 세워 보다 관대한 입장의 책들을 보급하였고, 국립 코임브라 대학을 계몽주의적 학문의 요람으로 바꾸었다. 카르발류는 새로운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계급적·종교적 편견, 유대인 차별, 노예제도까지 폐지하는 등 그가 바라던 이상적인 포르투갈 건설을 위해 온갖 종류의 개혁작업을 진행했다.
현 교수는 "그때 비로소 과학적 방식으로 재난을 분석하기 위해 각종 지진학 관련 연구가 시작되었고, 현대 지진학 이론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확립되었다고 한다"며 "또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근대적인 도시계획이 이루어졌다"고 전했다.
현 교수는 "카르발류의 개혁은 포르투갈뿐 아니라 전 유럽에 영양을 미쳤다"며 "당시 볼테르는 1759년 이 사건을 계기로 소설 '캉디드 또는 낙관주의'를 출판해 유럽 사회의 사회적, 종교적 통념을 신랄하게 풍자했다"고 밝혔다.
이 소설은 전 유럽의 대중들에게 무서운 속도로 전파돼 읽혀 계몽사상과 과학적 사고방식을 사회 전 계층으로 전파시켰다고 현 교수는 전하며 "이 지진이 포르투갈과 유럽 사회의 세계관과 사상, 철학과 종교를 뒤흔들어 변화시켰다"고 전했다.
당시 유럽은 중세를 지나 근대가 시작되어 자연철학과 계몽사상가들이 태동되고 있었지만 중세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고 포르투갈은 특히 그 면에서 매우 뒤쳐진 상태였다.
현 교수는 "시라디는 그러한 대재난과 관련하여 우리가 신의 섭리에 대한 신앙으로부터 '인간의 이성적인 자유의지에 의한 책임적인 행동'으로 나아갈 것을 제안한다"며 "중요한 것은 신의 섭리나 신의 분노 같은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적 대응이라는 것이다고 보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