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드물게 지금까지 개최된 WCC의 9번의 총회 중 4번을 참석했으니 참 축복받은 평신도중의 한사람이라고 늘 감사하면서 살고 있다. 그 중에서 3번의 총회 즉 1983년의 제6차 캐나다의 뱅쿠버 총회, 1991년 제7차 호주의 캔베라 총회 그리고 1998년의 제8차 아프리카의 짐바붸의 하라레 총회에는 WCC 아시아 국장 때 총회를 직접 준비한 실무자로 참석을 했고, 제9차 총회인 2006년의 남미 브라질의 포르토 알레그레의 총회에는 우리나라 인권대사로서 한국인 UN 사무총장 당선을 위한 북한대표들과 협의와 남북한 교회 합동예배참석을 위함이었다. 아마 제10차의 금년 10월 부산총회에는 WCC의 자문위원으로 참석을 하게 되어 한반도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한 발제를 할 예정이니 총 10번의 총회에 5번을 참석하게 되는 셈이다. 나에게 내려진 이 축복을 우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이 글을 쓴다.
65년의 역사와 전 세계 약 6억의 신앙인을 회원으로 하고 있고, 세계 140개국의 거의 모든 개신교, 정교회를 회원교회로 갖고 있는 WCC가 매 7년 내지 8년마다 개최하는 총회는 그 규모면에서나 다루는 이슈 그리고 5대양 6대륙의 전통과 문화에 기초한 신앙고백의 경험들로써 매년 열리고 있는 세계의 대규모 국제기구들인 UN, ILO, WHO 그리고 적십자사 총회가 따라갈 수 없는 규모이고 대형의 총회여서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대규모 총회이다. 그럼 하나 하나의 총회를 나의 체험을 중심으로 소개해 보겠다.
제6차 캐나다의 뱅쿠버 총회는 성공회 주교면서 당시 남아공 교회협의회 총무(SACC)인 데스문드 투투의 연설이 압권이었다. 백인들의 인종차별 정책은 우리 모두의 비극이고 WCC가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에 깊게 관여한 공을 높이 평가한다면서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이 진실은 이 지구상에 인종차별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함이지 백인에 대한 복수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과 화해를 하기 위함이라는 투투의 연설은 야외광장이었지만 석양의 태양과 함께 모든 사람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것으로 투투 주교는 1년 후 1984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후에 진실과 화해 위원회 위원장으로 봉사하였다.
또 이 총회는 당시의 강대국들의 원자탄 핵실험을 반대하는 세계교회의 목소리를 전 지구에 천명한 총회였다. 남태평양에서의 즉 지금도 프랑스의 식민지인 타이티와 뉴카리도니아를 중심으로 감행된 당시의 핵실험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인 생태계를 파괴하였고 모든 수자원을 파괴했으며 심지어 임산부들이 기형아를 출산한다고 고발한 총회였다. 특히 이 지역에서의 프랑스의 핵실험을 예로 들면서 남태평양에서 온 한 젊은 어머니의 총회 단상에서의 연설과 절규는 세계의 하늘을 그 분노로써 울부짖게 하였고 결국 UN의 IAEA의 핵확산 금지조약(NPT)에 세계 모든 국가들이 합의하게 되고 1996년 UN 총회는 이를 근거로 강대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들이 핵실험을 완전 금지하는 조약에 서명하면서 이 조약을 선포하게 된다.
제7차 호주 캔베라 총회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 WCC 중앙위원회가 한국전쟁을 공산권의 부정한 전쟁임을 선언한 결의에 대해 당시 아시아 의장이었던 중국의 T.C. Chao 주교가 반대하면서 의장직을 사임하며 WCC를 떠났다. 이 중국교회가 40여년 만에 WCC에 다시 복귀하는 큰 사건이 있었고 이를 전세계교회가 환영하게 되며 작년에 소천 한 팅 주교(丁光訓)의 연설이 인상적이었다. 중국교회의 일치운동 그리고 문화혁명 때 중국교회 지도자들의 고난과 박해의 증언은 총회 전체 분위기를 숙연하게 하였다. 그리고 또 호주 원주민의 인권을 회복시키는 문제가 총회를 장식했다. 이와 함께 그동안 WCC가 주선했던 1984년 도산소 모임이후 글리온 1차 2차 3차의 남북교회 모임의 성공적 성과에 힘입어 북한교회 대표가 지금은 소천하신 강영섭 목사님을 단장으로 하여 이 총회에 최초로 참석하여 남북교회의 협력과 화해를 전 세계에 선포한 뜻 깊은 총회였다.
제8차 아프리카의 짐바붸의 수도 하라레에서 열린 총회는 갓 대통령에 당선된 넬슨 만델라의 참석과 그와 함께 온 남아공의 120명 남녀 합창단의 총회 축하 프로그램이 절정이었고 나는 이를 영 잊을 수 가 없다. 1970년대 후반에 시작된 WCC의 인종차별 금지 프로그램인 PCR (Program for Combat Racism)은 남아공의 인종차별을 겨냥했다. WCC가 회원교회를 통해 자국 정부의 남아공과의 은행거래를 중단하고부터는 WCC에 대한 모함이 끊이질 않았다. 용공이니 좌파니 지하운동에 무기를 대주는 국제기구니 하는 터무니없는 모략이 넬슨 만델라의 연설과 세계인의 환영 속에서 하루아침에 씻어 내려가는 총회였다.
제9차 브라질의 총회는 룰라 대통령의 연설이 역시 큰 환영을 받았고, 그의 대통령으로서의 지도력과 미래의 비전에 큰 감명을 받은 총회였으며, 남북한 교회의 한반도와 동북 아시아의 평화와 화해 그리고 평화적 통일을 기원하는 연합예배는 전 세계교회에 큰 인상을 남긴 총회였다.
제10차 부산총회에서는 중요한 의제로 한반도 동북아시아의 평화문제가 크게 다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이를 잘 준비해야한다. 남북한 교회가 이를 협력하여 성사시켜야 한다. 그래서 북한교회의 참석이 꼭 이루어져야한다. 북한교회는 지난 21년간 캔베라, 하라레, 포르토 알레그레 총회에 계속 참석했다. 부산총회는 같은 나라의 형제교회로써 꼭 참석하여 우리의 신앙고백인 평화 화해 협력 창조질서의 보존을 공동으로 고백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동북 아시아 평화공동체를 위한 선포가 한반도 평화와 함께 전 세계에 신앙고백으로써 선포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WCC의 초창기부터 선교방향을 이끌어가는 교회로 평가되고 있다. 이는 70년대 그리고 80년대의 예언자적 선교 방향과 맞물려있다. 특히 우리의 교회 지도자들의 특출한 신앙고백과 행동으로 에큐메니칼 운동을 이끌어 왔다. 세계의 유수한 대중매체 그리고 참가자 중 그 많은 세계적 지도자들이 한꺼번에 한국을 방문하는 부산총회이다. 세계의 이목이 부산에 쏠릴 100년 후에나 다시 열릴 수 있을까라고 여겨지는 이 하나님의 대축제에 우리교회의 저력과 성숙함을 우리는 보여야할 것이다.
18년간의 나의 WCC 제네바 생활은 장로교의 테두리만 맴돌았던 나의 좁은 신앙영역을 넓혀주는 풍성한 은혜와 축복된 삶이었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교회가 그들의 무궁무진한 신앙의 전통과 고백을 계속 쏟아내기에 차마 따라 갈수 없는 나의 신앙을 매일 채찍질하며 회개하는 나날이었다. 그래도 나는 아직 WCC 회원교회 전부를 터득하지 못하고 있는게 솔직한 나의 신앙고백이다.
스위스의 750만의 인구는 한결 같이 제네바에 위치한 WCC를 자랑하면서 영의 양식을 주는 원천이요 국민모두의 영적생활의 어머니로 여긴다. 초등학생들이 5개의 세계를 움직이는 스위스에 위치한 국제기구를 UN, 적십자사, WCC, 국제노동기구, 세계보건기구라고 뽐내는 순진한 어린애들까지 자랑으로 여기는 WCC이다. 부산총회의 성공을 하나님께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