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말씀묵상] 말씀도, 하나님도 수단화한다

본문: 삿 17:1-13

1. 오늘의 말씀 : 삿 17:1-13

2. 시작 기도

아버지여! 눈이 높고 마음이 자고하여 감당하지 못할 일에 힘쓰는 자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의 나 된 것이 주의 은혜이온대 어느새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가 되어 상승과 성공을 꿈꾸는 자 되었나이다.
낮고 천한 십자가를 떠나면 주의 능력도 소멸할 것이온대 에덴에 역사했던 죄의 세력은 주를 위해 살고자 하는 종을 속이고 있나이다.
나를 위한 삶은 이미 지나갔으나 그것을 부여잡으려는 부질없는 망상이 나를 괴롭히나이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주모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종의 눈이 여호와 나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그 얼굴 빛을 내게 비추사 내 영혼을 소생시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사사시대 이스라엘의 중심지는 에브라임 산지이었다.
이스라엘은 에브라임 지파의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하여 가나안을 정복하였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성소인 실로가 에브라임 산지에 있었다.
그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1절).
미가의 이름은 긴 형태로 '미가-야후'이며 그 뜻은 '야훼와 같은 이가 누구냐?'를 의미한다.

어느 날 미가가 자기 어머니에게 나와 말했다.
"어머니께서는 은 천백 세겔을 잃어버리시고 그에 대해 저주하셨습니다. 그 때 제가 듣기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이 돈을 내 아들을 위해 개인적으로 야훼께 성별하여, 상, 곧 금속형상을 만들 작정이다. 그 돈이 저에게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훔쳤었고, 이제 그것을 어머니께 되돌려 드리려고 합니다"(2절, 원문직역).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내 아들아, 주의 축복을 받으라"라고 대답하였다.
미가는 은 천백 개를 어머니에게 되돌려 주었다(3절).
그녀는 200세겔을 떼어 은장색에게 주었고 그는 그것들로 상, 곧 금속 형상을 만들어 그것을 미가의 집에 두었다(4절).
3절과 4절에 나오는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다'라는 표현은 중복되어 있는데 이는 두 번 째 신상은 첫 번 째 신상에 대한 설명으로써 '중언법'이다.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4절).

미가는 제사장의 옷인 에봇과 가정 수호신인 드라빔을 만들어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다(5절).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보기에 좋은 대로 행하였다(6절).

레위의 한 청년이 베들레헴에서 유다백성과 함께 살다가 거처를 찾아 미가의 집에 이르렀다(7-8절).
이 레위 청년은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이다(18:30).
곧 그는 모세의 직계자손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절대적인 위엄이 있었다.

미가는 그가 거처할 곳을 제안하며 자기의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어달라고 청한다(9-10절).
그리고 해마다 은 10세겔과 먹을 것, 입을 것을 제공할 것을 약속하였다.
레위 청년은 그 제안을 좋게 여겨 받아들이고 미가의 아들중 하나처럼 되었다(11절).
미가가 이 레위인을 성별하매 그가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있었다(12절).
이에 미가는 레위인이 그의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13절).

사사기 17~21장은 결론 부분으로 두 가지 이야기가 그 중심이다.
하나는 단 지파가 북단에 있는 최종 귀착지(라이스)로 이동한 것이다(17~18장).
다른 하나는 베냐민과 열두 지파간의 내전이다(19-21장).
두 이야기는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모두 에브라임 사람이 아니면서 에브라임에 살고 있는 레위인들을 다루며, 그들이 지역주민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이스라엘이 개인적으로, 지파별로, 민족적으로 극심한 타락의 현실에 봉착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저버리고 도덕적 영적타락의 절정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언약 백성 이스라엘은 말씀에 순종하는 쉐마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했다.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에는 특출한 지도자를 필요로 했으나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는 오직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 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아니하니 자기가 보기에 좋은 대로 행하였다.
곧 그들에게 왕이 없음은 그들이 말씀을 떠나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 행하였기 때문이다(6절, 21:25).
말씀이 없고 하나님이 부재한 이스라엘은 결국 '자기를 위해'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는 결말을 가져왔다.

미가의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은 1100개(세겔)나 되는 엄청난 돈으로 신상을 만든다.
은 1100세겔은 레위인의 일 년 사례가 은 10세겔이니 무려 110년의 연봉에 해당된다(연봉 1억원이면 110억원).
그 많은 돈을 가지고 오직 자기 아들이 여호와께로부터 복을 받기 위해 신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 신상은 하나님의 성소가 실로에 있을 때 단 성소를 만드는 신상이 된다(18:31).
이후에 단 성소는 벧엘 성소와 함께 이스라엘 북왕국의 국가적 성소로 발전한다.

미가의 집은 신상이 만들어지자 신당으로 변한다.
미가는 제사장의 옷인 에봇을 만들고 거기에 가정 수호신으로 드라빔을 만든다.
드라빔은 이방인의 우상이며 그것을 하나님의 거룩한 에봇과 함께 만들어 자기 집에 둔다.
그리고 레위지파에 속하지 않은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운다.
미가의 행동은 자기가 복을 받기 위해 제사장 규례를 마음대로 이용하는 패역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미가는 모든 시대 겉으로는 하나님을 숭배하나 결국 자기 인생을 얻고자 하는 자의 표본이 된다.
그런 사람들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수단으로 하여 자기 인생을 얻고자 한다.
이들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고 마는 말씀을 도둑질하는 자들이다(렘 23:30).

그 즈음 레위인이 자기 집에 오자 그에게 연봉을 정하고 자기의 제사장으로 삼는다.
미가는 말씀을 왜곡하여 이용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종까지도 자기 목적으로 이용한다.
문제는 레위청년이 율법을 깨트리고 사리사욕에 눈먼 그의 제안을 만족스럽게 받아들였다는 데에 있다.
미가는 물론 레위인까지 타락한 극명한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가는 이제 모세의 직계가 자기 제사장이 되었으니 자기 집이 복 받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기독교 역사에서 빈번했던 성직매매는 오늘날도 예외는 아니다.
때로 교회를 사고팔며, 성직자는 더 나은 대우, 더 높은 연봉을 주는 곳으로 거처를 옮긴다.
미가의 패역한 행동처럼 일부 성도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목사를 구한다.

어제, 뜬금없는 전화 한통을 받았다.
잘 알고 지내는 전도사님이신데 문안을 하며 지나가는 말로 내게 말했다.
'목사님이 우리 교회 오셔서 목회 좀 하시면 안되요!'라고 말이다.
듣자 하니 후임 목사를 구하는데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그렇지 않더라도 작은 교회 목사의 꿈은 더 큰 교회목사로 부임하는 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직접적인 세습 아니면 자식들끼리 상호 세습하는 세태가 횡행하는 데 어찌 백없고 힘없는 목사들이 더 큰 교회를 꿈꿀 수 있겠는가?
요즘은 신학교 교수가 되더라도 줄이 있어야 하고 백이 있어야 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미가와 레위인의 교묘한 거래는 타락해가는 오늘날 교회의 농후한 현상이다.

이처럼 드러내놓고 거래하는 경우는 하나님을 수단화시키는 죄가 쉽게 드러난다.
문제는 하나님을 수단화하면서 매우 교묘하게 속이는 행위이다.
대표적으로 하나님의 비전이라는 것이 그러하다.
만일 하나님의 비전을 목적하면서 그것을 통해 자기를 증명하거나 뭇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려 한다면 그것 역시 하나님을 수단화하는 죄악인 것이다.

죄의 세력은 바로 여기까지 역사한다.
'영적으로 한 시대를 책임지려는 자에게 비전은 어느새 욕심이 된다'는 어느 목사님의 말이 가슴 깊이 다가온다.
'내가 깨달은 것이 진리이니 나를 따라오라'라고 하는 사람이나 기관은 이미 하나님의 일을 자기의 욕심으로 한다는 것이다.
'묵묵히 진리 안에서 사는 것'이 사명이고 이후의 일은 오직 하나님의 몫인 것이다.

'이 책은 아무개가 꼭 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은 절대 안 본다. 그것을 각오하고 간다. 평생 허비하는 삶 같으나 그래도 그 길을 간다'

4. 나의 묵상

나는 매우 소박하게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인생의 한계, 나 자신의 지혜와 능력의 한계선상에서 하나님을 찾았다.
기독교 신앙을 마음이 편하고 복을 받고 만사형통한 요술처럼 생각하였다.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통하였다. 많은 기도가 응답되고 기적도 체험하였다.
초월적 현상인 은사를 체험하면서 열심 있는 신앙생활이 되었고 신대원에 진학하고 목사가 되었다.

목회를 해보니 대부분 성도들은 나와 같이 자기 인생을 얻고자 하였다.
그것이 하나님을 수단화시키는 죄악인줄로 알지 못했다.
주께서는 자기 인생을 얻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잃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강단에서는 하나님에 대해 말하나 강단 아래에서는 세상을 논하였다.
인생주의가 교회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자기 자랑, 자식 자랑, 세상 자랑이 그치지 않는다.
그 주도권을 잡은 자가 믿음이 좋은 자로 치부되었다.
하나님을 부르나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는 무지한 군상들이 교회마다 넘쳐난다.
그들에게 목사는 미가의 집에 들인 레위인에 다름 아니다.
10세겔의 연봉을 쥐어주고 자기들이 복 받는 일에는 그 110배를 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미가의 제사장 노릇을 하였다.
자기 인생을 얻고자 하는 일을 감히 사역이라고 칭하며 가정 행복을 외쳤다.
가정행복만들기에 앞장섰고 그 대가로 상당한 연봉과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챙겼다.
매년 미국 집회를 다니며 가정의 소원을 이루어주고 복을 빌어주며 많은 선물들을 받아왔다.

세상은 끝없이 행복을 논한다.
최근 철학자 탁석산 교수가 '행복 스트레스'란 책을 펴냈다.
신의 은총을 거부한 계몽주의 영향을 받아 인간은 자신의 노력으로 행복을 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개인주의가 팽배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개인의 행복을 위해 매진하게 되었고 이것을 위해 많은 멘토들을 둔다는 것이다.
미가가 자기의 행복을 위해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삼았듯이 말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필두로 수많은 멘토들이 나타나고, 종교지도자들 특히 스님들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기독교 서적도 찰나적인 행복을 주는 책이 범람하고 진리로 이끄는 책은 냉대 받는다.
솔로몬은 작금의 인생이 행복의 조건으로 구하는 모든 것들을 가졌다.
그런데 그는 그것들이 주는 행복을 가리켜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고 말하였다.

탁석산 교수 역시 사람들이 구하는 행복은 추상적인 것이며 결국 신기루와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 신기루같은 행복을 얻고자 많은 사람들이 멘토를 두고 그들을 수단화한다는 것이다.
행복이 신기루임을 안 솔로몬은 인생의 목적은 행복의 추구가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참된 삶'이라고 결론을 내렸다(전 12:13).

말씀 앞에 나를 성찰하니 무모한 일에 힘쓰는 죄인일 뿐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인자와 긍휼은 무궁하시며 아침마다 새롭다.
복음과 생명의 진리를 전하면서 어느새 내 욕망이 잡초처럼 자라났음을 본다.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그 욕망을 감추고 교회와 성도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자 한다.
이 시대 교회를 책임져야 한다는 거룩한 비전은 어느새 욕심으로 변한다.
순수한 어린아이가 아니라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가 되고자 한다.

하나님의 일을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이 순수성을 빼앗아간다.
처음 광야에 나와서 말씀을 얻어먹으며 하루만을 살아냈던 그 순수함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내심 상승과 성공을 꿈꾸며 좁고 협착한 길, 고난으로 가는 길을 벗고자 하는 생각이 살며시 스며든다.
하나님의 비전을 명분으로 하나님을 수단화하려는 참담한 나를 바라본다.

종이 상전의 눈을 바라보듯 내 눈은 주의 십자가를 목도한다.
참 진리를 전하셨으나 그것을 주장하지 아니하시고 무력하게 십자가에 달리신 주를 바라본다.
거기에 내가 달려 있음을 본다. 무력하게 달려있음을 본다.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 그 자리에 있음을 알기에 기쁘게 십자가에 달린다.

5. 묵상 기도

아버지여...
오랫동안 미가의 레위인처럼 살았습니다.
자기 인생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을 따라 행하였습니다.
세상 행복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레위인 노릇을 해주었습니다.
그 대가로 보상을 받고 먹을 것, 입을 것을 챙겼습니다.
고침 받은 나아만 장군에게 달려가 은과 옷을 구한 게하시 같은 자였나이다.
무엇보다 내 인생을 얻고자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은 자였습니다.

아버지...
내게 임한 심판을 기뻐하나이다. 이는 당신의 공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의 세력은 이미 심판받은 자를 속이고 있나이다.
더욱 교묘하게 속이며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으라고 합니다.
당신이 주신 것을 내 것이라 생각하고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깨달은 진리가 교회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음으로 인해 애태웁니다.
나 한 사람 온전히 사는 것도 벅찬데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주여, 속이는 자로부터 나를 건져주소서.

아버지여...
비참한 자 되어 아들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신 일을 자기주장 의지로 하려는 자를 멸하소서.
생명의 말씀으로 오시고 그 말씀을 전하였으나 십자가에 달린 아들을 보옵니다.
나 또한 거기에 달려 있게 하옵소서. 거기 안식이 있나이다.
젖 뗀 아이가 어미 품에 있음 같이 고요하고 평온하나이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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