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을 맞아 중고차사이트 카즈가 국산차의 한글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현재 시판중인 90여대의 국산차 중 한글이름을 가진 차량은 단 한대도 없었다.
자동차 이름에 가장 많이 활용된 언어는 영어로, 국산차의 약 30% 정도가 이에 해당됐다. 일부는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 라틴어 계열에서 이름을 따오기도 했다. 현대자동차의 '아반떼'는 스페인어로 '전진'이라는 뜻이다. '에쿠스'는 '개선장군의 말'이라는 뜻의 라틴어다.
외국 지명도 자주 활용되고 있는데, 주로 미국이나 이탈리아의 휴양지의 이름을 빌려온다. 특히 쉐보레는 말리부, 올란도, 캡티바 등 대부분의 차량에 지역명을 붙여 '휴양'의 인상을 강화시켰다.
이외에 엑센트, 포르테 등 음악 용어를 활용한 경우도 있다.
이처럼 국산차의 한글 활용도는 0% 수준. 과거에는 대우자동차의 맵시나(1983), 누비라(1997), 삼성상용차의 야무진(1998), 쌍용자동차의 무쏘(2003)처럼 우리말을 활용한 경우가 있었지만 지금은 자취를 감췄다.
이에 대해 중고차사이트 카즈 관계자는 "자동차 업계가 자동차에 한글 이름을 붙이지 않는 이유는 수출 및 마케팅 비용과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카즈 매물관리부 최경욱 팀장은 "자동차 수출이 활성화되면서 뜻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는데, 특히 이름과 관련한 해프닝이 많았다. 1970년대 GM의 경우 영어로 신성(新星)을 뜻하는 단어인 '노바(Nova)'를 활용해 '쉐비 노바(Chevy Nova)'를 출시했지만, 중남미에선 외면을 받았다. '노바'라는 단어가 스페인어로 '가지 않는다(Don't go)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같은 이름도 국가에 따라 뜻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자동차 회사들은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하거나, 내수용과 수출용 이름을 따로 지어둔다.
실제로 기아자동차는 프라이드를 수출하면서 이름을 리오(Rio)라고 바꾸었고, 모닝(Morning)의 수출용 이름은 피칸토(Picanto)로 지었다. 현대자동차도 아반떼 수출용 이름을 엘란트라(Elantra)로, 그랜저 수출용 이름은 아제라(Azera)로 바꾸었다.
그렇다면 내수용은 한글 이름을 붙이고, 수출용은 별도로 이름 붙여도 될 텐데 굳이 외국어를 고집하는 이유가 뭘까.
카즈 관계자는 "모든 상품이 그렇겠지만, 자동차 이름은 그냥 지어지는 게 아니다. 자동차 이름은 각 분야 전문가들의 연구, 분석을 통해 탄생하는 것이다. 기아자동차의 K7 역시 한국과학기술원 정재승 교수팀에게 의뢰해 1년 넘게 단어 연상, 시선 추적 등 뇌 반응을 분석한 끝에 얻어낸 이름"이라면서, "자동차 네이밍 작업에도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데, 내수용 따로 수출용 따로 이름을 붙이면 브랜드 마케팅 측면에서도 일관성이 없어 비용 부담이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일까. 요즘 자동차 업계에는 '알파뉴메릭' 방식을 차용하고 있다.
'알파뉴메릭'이란, 알파벳과 숫자를 조합한 언어체계로 영어권 네티즌들 사이에서 유행하며 주목 받았다. BMW, 메르세데스 벤츠, 아우디, 푸조, 렉서스 등이 알파뉴메릭 방식을 채택해 자동차 이름을 짓고 있다. 국내에서는 르노삼성자동차가 최초로 알파뉴메릭 방식을 도입해 SM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자동차 이름에 알파뉴메릭을 적용시키면, 통합 브랜드 구축을 통해 회사와 제품 이미지 관리가 한결 수월해진다. 또 수출시 제품명이 겹쳐 발생하는 분쟁도 피할 수 있다.
아우디 역시 1994년 신형 대형 세단을 출시하면서 A시리즈로 차 이름을 통일해 고급브랜드 이미지를 굳혔다. 국산차의 경우 기아자동차의 K시리즈가 대표적인데, 기아(KIA), 한국(Korea), 강함(그리스어 Kratos)의 머리글자 K에 3,5,7,9의 숫자를 더해 차급을 표현했다.
알파뉴메릭 방식이 유행하면서 한글 이름을 단 국산차를 만나는 일은 더욱 요원해졌다.
카즈 관계자는 "자동차 업계의 흐름이 알파뉴메릭 방식을 차용한 브랜드 네이밍으로 몰리고 있다. 아쉽지만 앞으로도 한글 이름을 가진 국산차가 출시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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