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편 묵상 나눔의 아침입니다. 오늘도 새 힘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이렇게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함께 나눌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의 앞에 부르짖었사오니 나의 기도로 주의 앞에 달하게 하시며 주의 귀를 나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소서" (시 88:1-2)
시인의 "부르짖었사오니"라는 고백에서 영혼으로 기도하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시인의 영혼이 고통 속에서 드리는 간절한 기도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주야로" 라는 표현을 통해 이 기도는 하루중에도 잠시 잠간 동안만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지속되고 있음을 분명히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시인의 영혼이 당하고 있는 고난과 불행의 그 깊이를 더욱 잘 이해하게 합니다. 이 시인의 기도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하신 기도를 떠올리하게 하는 것은 아무 연관이 없는 것 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 15:34).
시인은 자신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달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자신이 처한 고난과 불행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을 주님에게 두고 있음은 놀라운 은혜임이 분명합니다. "주의 앞에"라는 시인의 표현에 대해 존 칼빈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눈앞에 모셔 놓고 그에게 우리의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흔치 않은 미덕이라는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시편 88편은 시편 중에서도 매우 어두운 시라고 말해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시인의 고난과 불행에 대한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끝나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시인의 위급함이 부르짖어 지지만 어둠 속에 그 소리가 뭍혀 버리고 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합니다. 흔히 절망의 외침은 새로운 소망으로 연결되어야 했는데, 이 시편은 절망의 외침이 절망 그대로 끝이나고 맙니다. 그런데 이러한 고난 속에서도 "주의 귀를 나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소서"라는 믿음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은혜임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당신의 귀를 기울이실 것을 믿지 않는 다면 어떻게 이러한 기도를 드릴수 있었겠읍니까? 오늘도 심한 고난과 불행으로 좌절하고 있는 성도님들의 모든 기도가 주님의 귀에 들려지기를 바라며 기도드립니다.
(존 칼빈 주석/ 시 88:1-2) "우리는 그에게서 자신의 환난의 쓰라림 때문에 조금씩 터져 나오는 뜨거운 하소연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감정이 너무 과열되어 겸손히 하나님께 용서를 빌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불평하고 비방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이 간략한 서론으로 자신을 적절하게 억제시킨다. 그는 하나님을 가리켜 '내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부름으로써 자신에게 재갈을 물려 슬픔이 과도하게 나아가지 못하도록 억제시키고, 절망과 맞서 그 문을 닫아 버리고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용기와 준비를 갖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