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7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데뷔무대에서 던진 메시지를 통해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경계와 자유무역의 창달을 강조했다.
또 당초 관심을 끌고 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잇달아 마련한 참석국 정상들과의 양자회담을 통해 TPP에 대비한 토대를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다자무역체제 강화를 위한 APEC의 역할'이란 주제로 21개국 정상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APEC 정상회의 첫번째 세션에 참석,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이어 세계 경제성장의 엔진인 아태지역 다자정상 외교에 데뷔했다.
◇WTO중심 다자무역체제 강조
APEC은 배타적인 지역주의를 지양하고 역내 무역투자 자유화와 경제기술협력 증진을 통한 개방적인 경제공동체 실현을 목표로 삼고 있다. 박 대통령 역시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의 경제구조를 감안할 때 자유무역의 증진이 경제회복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은 지난 9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도 다자통상체제 강화를 위한 G20의 정치적 의지 표명이 필요하다는 점과 '보호무역조치 동결선언'을 2016년까지 연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이를 정상선언문에 반영시켰다.
박 대통령은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도 세계경제의 활력 제고를 위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한 다자무역체제의 강화가 필수적이란 점을 강조했다.
특히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가시적 성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오는 12월 발리에서 개최될 WTO 각료회의에서 APEC 정상들이 리더십을 발휘토록 촉구했다.
다양한 분야에서의 무역 자유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DDA는 2001년 협상이 시작됐지만 미국 등 선진국 및 개도국간 입장대립으로 12년째 표류중이다. 12월 WTO 각료회의에서 무역원활화, 농산물, 개발 등 합의가능한 3개 분야에서 우선적으로 진전을 도모키로 한 상태지만 여전히 선진국과 개도국간 입장 차이가 커 합의 여부를 예단키 어렵다.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은 "지금처럼 DDA 협상의 교착상태가 지속되면 WTO가 세계무역 자유화를 계속 보장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될 수 있고 다자무역체제에 대한 신뢰도 손상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상들은 올해 말 이곳 발리에서 개최되는 WTO 각료회의가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APEC 정상차원에서 WTO 무역협상의 진전을 촉구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APEC 국가들의 수출입과 경제성장에 지장이 없도록 보호무역주의 동결 공약의 추가적 연기와 기존 보호무역주의 조치의 철회도 제안했다.
우리나라는 2008년 워싱턴 G20 정상회의에서 보호무역조치의 동결 약속을 주도한 바 있으며 APEC 차원에서도 2008년 리마 정상회의에서 이같은 약속을 도출한 뒤 매년 정치적 의지를 재확인해 오고 있다.
하지만 최근 세계경제의 침체가 지속됨에 따라 세계 각국의 무역구제 조치는 강화되는 추세다. WTO 사무국 통계에 따르면 대표적인 무역구제조치인 반덤핑 조사 건수는 2011년 166건에서 지난해 208건으로 25% 증가했다.
이는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을 지속해 온 우리나라에 적지 않은 위협이 되고 있다. 실제 한국에 대한 신규 수입규제 조사도 2012년 26건으로 전년대비 50% 이상 증가했으며 반덤핑 제소는 올해 9월까지 21건에 이른다.
◇보호무역 조치 확산 방지 강조...TPP언급은 없어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은 "어느 나라든 경제가 어려워지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려는 유혹을 받게 되지만 우리가 과거 역사로부터 얻은 귀중한 교훈은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면 경제회복은 더 늦어진다는 것"이라면서 보호무역 조치의 확산 방지를 위한 APEC 차원의 공동노력을 강조했다.
【발리(인도네시아)=뉴시스】김영욱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 소피텔에서 2013 APEC에 참석한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과 한-멕시코 양자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2013.10.07. photo@newsis.com 2013-10-07
TPP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역내 지역통합 논의의 활성화를 통한 아태자유무역지대(FTAAP)의 조속한 실현도 박 대통령이 강조한 부분 중 하나다.
FTAAP는 자유무역협정(FTA)을 APEC 역내 국가 전반으로 확대시킨 개념으로 2004년 처음 제안된 이후 우리나라 주도로 경제적 효과에 대한 연구가 실시돼 APEC 회원국의 실질 GDP 증가효과가 2716억달러에 달한다는 결과가 도출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TPP, RCEP 등을 지류에, FTAAP를 큰 강에 비유하면서 "(지역통합을 위한) 여러 논의가 높은 수준의 FTAAP를 달성하기 위한 주춧돌이 되도록 해야 한다"면서 "회원국들 간에 공정한 환경을 조성하고 FTA에 대한 이해도를 제고해 나가는 것은 FTAAP로 향해 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박 대통령은 미국이 주도하는 TPP 참여와 관련한 특별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TPP 참가를 계속해서 검토해 왔으며 이번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를 공식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TPP는 2005년 뉴질랜드·싱가포르·칠레·브루나이 등 4개국이 체결한 FTA를 계기로 미국이 참여를 선언하면서 논의가 급진전됐으며 말레이시아, 베트남, 페루, 호주, 멕시코, 캐나다, 일본 등 12개국이 협상에 참여하고 있다.
대신에 박 대통령은 추후 TPP에 참여하게 될 상황을 고려해 이번 회의 참석을 계기로 참가국들과의 별도 접촉을 확대하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이 이번 APEC 정상회의와 브루나이에서 열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3(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8개국 정상들과 양자회담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 8개국 가운데 중국·미얀마를 제외한 6개국은 모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가국들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우리나라가 아직 TPP에 직접 참여의사를 밝힌 상태는 아니지만 추후 TPP에 참여하는 상황을 가정할 때 사전에 참가국들과 개별적으로 FTA 체결 등을 통한 관계를 진전시키는 것이 TPP 가입시 추가될 수 있는 제반비용을 덜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고 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TPP에 대한 직접 참여의사는 밝히지 않았지만 향후 TPP에 참여하게 될 경우를 고려해 이를 위한 토대를 사전에 만들어나간다는 입장이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TPP에 참여하고 있는 나라들과 우리가 FTA에 관해 개별적으로 관계를 좀 더 심화해 나갈 수 있다고 하면 결국 TPP에 가입한다고 했을 때 물리적인 어려움 등이 훨씬 덜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에는 기업인자문위원회(ABAC)와의 대화에서 아태지역 재계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며 세일즈 외교에 나섰다.
박 대통령은 '원칙적 허용, 예외적 금지'로 바꾸는 네거티브 규제방식과 관련해 "국내외 기업 차별 없이 적용 중"이라면서 역내 기업인들에게 우리 정부의 투자·서비스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을 소개하고 지속적인 규제 개혁 의지를 표명했다.
또 전날 열린 APEC 최고경영자회의(CEO Summit)에서는 기조연설자로 나서 혁신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창조경제를 설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