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의 말씀 : 창 7:1-12
2. 시작 기도
아버지여! 사람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갑니다.
자기의 죄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심판 날이 다가오고 있음도 알지 못합니다.
닥쳐올 재앙의 날에 무심한 채 세상의 영웅이 되고자 허욕에 사로잡혀 있나이다.
매일 말씀 앞에 나아가 징계를 받으며 방주를 짓는 삶은 고단하며 지쳐갑니다.
오, 주여! 나의 연약함을 돌아보소서! 불쌍히 여기소서.
택함을 받아 은혜 입은 자, 복종의 삶으로 의를 지키게 하소서.
나를 강권하사 말씀에 복종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3. 본문 주해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창조질서를 거스른 채 생육하고 번성한다.
남자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주신 여자가 아닌, 안목의 정욕을 따라 아내를 맞이한다.
그들은 그의 자식들을 땅의 용사, 곧 네피림으로 만들고자 전력을 다한다.
이들의 숙명은 그 자식들을 보란듯하고 성공하고 풍요로운 '3A'의 인생으로 만드는데 있다.
하나님은 그런 그들에게서 떠나가시고 그들의 날을 120년으로 한정시킨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했으나 120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심판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
그에게 방주를 짓게 하시고 구원의 길을 마련하셨다.
공의 심판 안에 구원이 내포되어 있다.
노아가 말씀대로 방주 짓기를 다하자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다.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느니라"(1절).
노아는 당대에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복종하여 자기의 의로움을 지켰다.
하나님께 은혜 입은 자는 그이 말씀에 절대 복종함으로써 의를 세운다.
언약은 말씀에 복종함으로써 유지되며 이 때 복종하는 자는 의롭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노아로 하여금 정결한 짐승 암수 일곱씩, 부정한 짐승 암수 둘씩 데려오라고 하신다(2절).
공중의 새들 암수 일곱씩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신다(3절).
6장에서는 암수 한쌍씩 데려오라고 되어 있으나 7장에서는 정결한 짐승 일곱쌍을 데려오라고 한다.
6장의 한쌍씩은 생명보존을 강조하며, 7장의 일곱쌍은 제의를 강조한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온후 정결한 짐승중에서 취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
현대적 주석에서 반영하는 문서설에서는 6장은 P문서, 7장은 J문서로 불린다.
굳이 문서설이 아니더라도 6장과 7장은 서로 다른 관점이다.
심판의 유예기간 120여년이 다 지나고 칠일이 남았다.
이제 칠일후면 하나님이 사십 주야로 비를 내려 그가 지으신 모든 것을 멸절하신다(4절).
노아는 그의 가족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갔다(7절).
그가 데려온 짐승들도 방주로 들어갔다(8-9절).
마침내 칠일이 지나고 홍수가 땅에 임하였다(10절).
노아가 600세 되던 2월 17일, 그 때는 무두셀라가 죽던 해이다.
그 날에 큰 깊음의 샘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이 열려 사십 주야 동안 비가 땅에 쏟아졌다(11-12절).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실 때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을 나누셨다(창 1:6).
그런데 하늘의 창문이 열려 궁창 위의 물이 땅에 쏟아졌다.
하나님은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주권으로 스스로 창조질서를 무너뜨리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인 노아를 통하여 자신이 파괴하신 세상을 다시 회복시키신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악이 가득한 세상을 심판하시고 구원하신다.
아들에 의한 심판과 구원은 이미 경험되는 사건이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
아들을 믿어 영생을 얻은 자는 하나님 안에서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이다.
영생의 본질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와의 사귐에 있다.
하나님과의 사귐 가운데에서 심판으로부터의 구원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 같은 선험적 구원은 장차 오실 아들을 통해 완성된다.
장차 오실 그리스도는 자신이 오시는 날을 노아의 홍수심판으로 비유하신다.
노아 시대의 홍수심판은 장차 만민을 심판하시기 위한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이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눅 17:26-27).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그러할 것이다(눅 17:30).
먹고 마시고 장가가도 시집가는 것은 인간이 자기 목숨을 보전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삶이다.
누가 그것을 탓할 것인가!
그러나 이렇게 자기 목숨을 보전하는 자는 그 날에 자기 목숨을 잃어버릴 것이다(눅 17:33).
인자를 위해, 주와 복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자는 그 날에 자기 목숨을 얻을 것이다.
노아는 심판이 유예된 120년간, 그리고 마지막 7일간 의를 전파하였다(벧후 2:5).
그러나 사람들은 홍수가 임하는 그 날까지 자기 목숨만을 위해 살았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그 날까지 말이다.
언제 주님이 다시 오실지 알 수 없다.
오늘도 많은 사람은 그 날을 망실한 채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며 자기 목숨을 위해 사는 일에 몰두한다.
교회 안에서조차도 자기 목숨을 보전하는 것이 상례가 되었다.
근자에 주와 복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자는 생뚱맞은 자이다.
성스러운 목양까지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로 치부된다.
인자가 오시는 그 날까지 그러하리라!
4. 나의 묵상
나는 50여 평생을 내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살아왔다.
좀 더 잘 먹고 좀 더 잘 마시고 좀 더 좋은 집에서 편안하게 살기 위해 달음질했다.
내가 장가가고 자식들 결혼시키고 손자보고... 그렇게 수를 누리다가 죽는 것...
자기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사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어린 시절의 치욕을 보상받기 위해 성공하고 명성을 얻고 싶었다.
문제는 그런 삶조차도 매우 치열하다는 것이다.
교회를 다니고 목사가 되어서도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
거룩한 가면을 쓰고 내 인생을 얻기 위해 몰두하였다.
사역이라는 거룩한 이름을 붙여 사람들이 자기 인생을 사는 일을 거들었다.
내적 치유, 가정 사역등 상당한 성과가 있었고 부수적인 명성을 얻었다.
심판 날을 망실하며 다분히 땅의 일을 구하며 살며 사역하였다.
자기 목숨을 얻고자 살던 내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다.
홍수심판이 임하여 자기 인생을 위해 쌓았던 모든 것이 휩쓸려갔다.
그런데 하나님은 방주를 예비하셨다.
내가 죽고 장사된 곳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장사된 곳이었다.
요나를 예비한 물고기처럼 심판받아 죽기에만 합당한 나를 위해 아들을 예비하셨다.
아들 안에서 생명을 얻고 영생을 사는 자 되었다.
다시는 나를 위해 살 수 없는 자, 죽었다고 다시 사신 그를 위해 사는 자가 되었다.
매일 기로에서 묻는다.
자기 목숨을 위해 살 것인가? 주와 복음을 위해 살 것인가?
한 주간 심판 멸시와 조롱이 내게 임했다.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 무심해진 나는 티끌과 재를 무릅쓴다.
때로 망한 자로, 때로 어리석은 자로, 때로 후안무치한 자로...
이 새벽.. 스스로에게 묻는다. 성령의 물음이리라!
무엇을 위해... 잃어버렸는가? 무엇을 위해... 다시 시작하는가?
나를 위한 인생은 멸절되었다. 내 이름도, 명성도, 성과도...
오직 주와 복음을 위해 남은 인생을 투혼한다.
노아가 그리했던 것처럼 사람들의 몰이해속에서도 방주를 짓는다.
매일 말씀 앞에 나아가 내 죄를 보고 징계를 합당하게 받아들인다.
누구를 위해 매일 방주를 짓는가! 결국 내 인생을 얻기 위해서이다.
죽기에만 합당한 자에게 은혜 베푸신 주를 위해서이다.
기웃거리지 말고 따라가지 말고 주께서 정하신 대언자의 길을 간다.
5. 묵상 기도
아버지...
평생을 자기 목숨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일을 사명을 알고 헌신했습니다.
자기 목숨을 얻기 위한 인생에 심판의 칼이 임했습니다.
그 때까지 깨닫지도 못한 자였습니다.
말씀 앞에 나아가니 모든 것이 드러났습니다.
나의 인생은 잃어버리고 진멸되어야 마땅합니다.
아버지여...
노아처럼 은혜를 입었습니다. 아들을 통해 생명을 얻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짓듯 매일 말씀으로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오나 어느새 은혜를 망실합니다.
다시 자기 목숨을 얻기 위해 사는 자로 전락합니다.
오, 주여! 나를 붙드소서. 크나큰 손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기억하게 하소서.
어찌 다시 내 인생을 살겠나이까!
아버지여...
나를 강권하소서. 당신의 사랑으로 강권하소서.
주와 복음을 위하여 도살장으로 끌려가도 족하옵니다.
주와 복음을 위하여 털 깎는 자 앞에서도 잠잠합니다.
나의 인생은 끝났습니다. 내 이름도, 명성도, 성과도 지나갔습니다.
날마다 영생을 살며 방주를 짓게 하소서.
내 주님 언제 오실지 모르나 오늘 오셔도 영접하게 하소서.
마라타나! 주여, 속히 오소서! 속히 오소서! 내게 오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