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전례없이 뒤숭숭하다.
재벌 총수들의 잇단 구속으로 인한 경영 공백, 경쟁력 저하와 무리한 사업 추진에 따른 유동성 위기, 글로벌 업황 악화로 인한 실적 부진의 3대 악재가 동시에 재계를 덮치고 있다.
오너십을 중심으로 뭉쳐 글로벌 시장에서 스피드 경영을 펼쳐오던 기업들(SK그룹, 한화그룹)은 '오너 부재'로 직격탄을 맞았다.
2일 재계에 따르면 현재 구속처분을 받은 재벌 총수 일가는 재계서열 3위인 SK그룹의 최태원 회장(53)·최재원 부회장(50) 형제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61), 이재현 CJ그룹 회장(53), 태광그룹 이선애 전 상무(85)와 아들인 이호진 전 회장(51), 구자원 LIG그룹 회장(77)과 아들인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 등 8명에 이른다.
여기에 조만간 이 대열에 합류할지도 모를 기업인들도 적지 않게 거론되고 있다. '기업 총수 수난 시대'다.
더욱이 웅진그룹 STX그룹 팬택 등 재계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던 기업들과 재계의 터줏대감이었던 동양그룹이 침몰하면서 유동성 위기에 대한 시장의 우려도 심각하다.
아직 유동성 위기가 표면화하지 않은 재계 30위권 몇몇 그룹에 대해서는 더 심각한 유동성 위기가 올 것이라는 루머가 계속 흘러나온다. 글로벌 불황의 직격탄을은 데다 중국 인도 등 후발 국가들의 맹추격을 받고 있는 철강 조선 기계 건설 분야 대기업들이 활력을 되찾을지 아무도 자신할 수 없다.
재계 6~8위이자 한국 제조업의 대표 주자인 포스코, 현대중공업, GS의 예만 봐도 알 수 있다. 포스코는 영업이익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고, 현대중공업도 상반기 영업이 익이 전년보다 56.1% 줄었다.
잇단 그룹 오너의 구속과 강력한 세무조사에 덧붙여 경제불황에 따른 유동성 위기가 그룹의 몰락을 가져오는 상황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오자 재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대기업과 총수들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려는 각종 규제 입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다. 일감몰아주기 과세와 증여 상속세 강화 등 공정거래법과 세법을 통한 규제도 확대되고 있다.
정부차원에서 'MB맨 손보기' 세무조사의 강도가 더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분식회계 의혹을 받으며 출금과 함께 검찰 수사를 코앞에 두고 있는 분위기다. 롯데그룹도 지난 7월부터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롯데그룹의 경우 세금 추징액 규모가 역대 최대 규모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재계는 잘못한 부분에 대해 처벌하고 바로 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제민주화 바람으로 '공정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과정에서 '보여주기식' 지나친 형량을 선고하거나 '기업털기식' 세무조사가 진행되면서 대기업과 그룹 오너들을 마치 사회악의 한 축인양 몰아붙여 이로 인한 상처가 너무 깊게 패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10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엄격한 법적용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재판 또는 선고 과정에서 기업인들을 인신모독하는 것은 해당 기업 임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이는 결국 경영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