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고소득층 노인 30%를 제외한 정부의 기초연금 최종안을 놓고 연일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발표한 최종안에는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만 매달 10만~20만원의 기초연금을 주는 것으로 수정됐다. 대선 공약에서는 모든 노인에게 매달 2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선공약과 비교하면 대상과 지급액이 축소된 것이다.
박 대통령과 여권은 '죄송'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급한 불을 끄려고 했지만 야권은 정기국회에서 예산전쟁을 예고하는 등 전면전을 선포했다.
박 대통령과 여권은 대선공약이 원안대로 지켜지지 못한 것에 대한 해명보다는 사과표시를 통해 국민의 이해를 구하며 탈출구를 찾는 모양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기초연금을 둘러싼 공약 후퇴 논란과 관련해 "그동안 저를 믿고 신뢰해주신 어르신들 모두에게 지급하지 못하는 결과가 생겨서 죄송한 마음"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새누리당 지도부도 기초연금 등 복지 공약 후퇴 논란과 관련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는 등 박 대통령을 후방지원 했다. 또 기초연금 수정안이 힘든 결정이지만 어려운 재정 형편을 감안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나름의 해명도 내놨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공약에 대해 책임이 있는 여당으로서 국민들, 어르신들께 기대하신대로 다 드릴 수 없게 된 점에 대해 대단히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김기현 정책위의장도 "이유가 어떠하든 당초 공약을 100% 이행하지 못하게 된 점에 대해서는 공약이행의 공동책임을 지고 있는 여당으로서 국민여러분께 대단히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반면 야권은 박 대통령을 향해 신뢰를 저버린 거짓말로 또다시 국민들을 속였다며 예산전쟁을 예고하며 전면전을 선포했다.
민주당은 국회에서 규탄대회는 여는 한편 박 대통령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는 등 강도높은 대여압박에 나섰다. 이른바 '부자 감세'를 철회하면 기초연금 재원을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다며 정기국회에서 정부안을 수정해 원안을 복원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김한길 대표는 이날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공약파기 거짓말정권 규탄대회'를 열고 "박근혜 대통령의 생애주기별 복지공약들, 어린이집부터 경로당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약이 거짓 공약이었다는 사실이 하나하나 확인되고 있다"며 "아이들도 속았고 노인도 속았고 온 국민이 속았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무엇보다 어르신들을 우롱한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은 불효정권"이라며 "대한민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중 노인빈곤율 1일, 노인자살률 1위의 부끄러운 나라다. 어르신들이 불효정권에게 매서운 회초리를 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24시 비상국회 운영본부회의에서 "재정상황은 공약을 호언장담하던 작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변한 건 오직 대통령의 생각과 의지일 뿐"이라며 "국무회의가 아니라 직접적인 대국민사과 담화가 있어야 한다. 재벌대기업 법인세 정상화 부자감세 철회로 기초연금 공약이행을 다시한번 거듭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정의당도 가세했다. 박 대통령이 거짓공약으로 표만 받고 도망쳐 버리는 먹튀 행각을 벌였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천호선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상무위원회를 열고 "박근혜 정권 스스로에 대한 신뢰뿐만 아니라 정치자체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며 "박근혜 정부의 민생공약이 누더기가 되고 있는 것은 국가정보원 댓글사건에 대한 박 대통령의 태도와 동전의 양면"이라고 주장했다.
천 대표는 "박근혜 정부는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만큼 복지를 포기하고 민생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취임 7개월이 지난 지금 박근혜 정부를 민주적 정당성을 상실한 정부,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믿을 수 없는 먹튀정부로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심상정 원내대표 역시 "'원칙과 신뢰'를 마치 금과옥조로 여기는 것처럼 이미지를 쌓아왔던 박 대통령이 당선 이후 불과 반년만에 약속을 깨뜨렸다. 이미 국민들은 '우리가 알던 박근혜가 아니다'라며 배신감을 드러내고 있다"면서 "정부의 이번 기초연금 수정안은 공약 사기일 뿐만 아니라 현행 기초노령연금보다도 더 후퇴한 내용으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까지 초래하는 심각한 역주행"이라고 날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