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9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69)가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판사 정형식)는 16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 전 총리에게 1심을 깨고 징역 2년에 추징금 8억8302만원을 선고했다.
다만 1심 판결과 엇갈린 점, 현직 국회의원인 점 등을 고려해 법정구속하진 않았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의 직접증거인 한만호의 검찰진술이 원심에서 번복됐더라도 다른 증거들에 의해 신빙성이 인정된다"며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동생이 한씨의 1억원짜리 수표를 전세자금으로 사용한 점, 또 한씨에게 2억원을 반환한 점, 한씨가 피고인에게 3억원 반환을 요구한 점 등을 볼 때 공소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대통령 당내 경선을 앞둔 피고인은 한씨로부터 3회에 걸쳐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며 "금품수수 경위와 액수 등을 볼 때 죄질이 무겁고,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 등을 고려하면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한 전 총리와 함께 기소된 전 비서 김문숙씨에게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한씨로부터 수천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한 전 총리는 2007년 3월 한씨로부터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비용을 지원하겠다'는 제안을 받고 세차례에 걸쳐 미화 32만7500달러와 현금 4억8000만원, 1억원짜리 자기앞수표 1장 등 모두 9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2010년 불구속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2011년 10월 "한씨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어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한씨는 검찰조사에서는 돈을 줬다고 진술했다가 1심 법정에서 진술을 전면 번복한 바 있다.
이후 항소심 재판은 약 2년만인 올 4월부터 진행됐다. 한 전 총리 측은 "한씨가 허위진술할 가능성이 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해왔다. 검찰은 지난 7월 결심공판에서 한씨에게 징역 4년에 추징금 한화 5억8000만원·미화 32만7500달러를 구형했다.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가 16일 오후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한 전 대표가 검찰 조사 당시 진술한 것이 오히려 진실에 가깝고, 1심 법정에서의 진술번복이 거짓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한 전 대표가 한 전 총리에게 3억원의 반환을 요구하면서 협박하는 듯한 정황과 이 사건 폭로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사업상 이익을 얻으려 한 정황은 역으로 보면 한 전 대표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주지 않았더라면 있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한 전 총리의 동생이 한 전 대표가 발행한 1억원권 수표를 사용한 점도 간접적인 증거로 인정했다. 1심은 이 돈이 한 전 총리 동생이 한 전 대표 비서를 통해 빌린 것이라는 한 전 총리 측 주장을 받아들인 바 있다.
재판부는 추가기소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 전 대표가 거짓진술을 했다고 본 1심 판단도 배척했다. 1심은 "한 전 대표가 회사 자금으로 9억원을 조성해 사용한 것이 분명한 사실일 경우 검찰이 원하는 답변(한 전 의원에게 제공)을 하지 않으면 횡령으로 추가기소될 소지가 있다고 판단, 허위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한 전 대표가 9억원 이야기를 검찰에 진술하기 전까지 그가 회사 자금을 횡령했는지 여부, 횡령 액수 등에 대해 검찰이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했고 아무런 자료도 갖고 있지 않았다"며 "추가기소의 두려움으로 한 전 대표가 검찰에서 거짓진술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 전 총리는 선고 직후 "재판부가 검찰 주장을 100% 받아들였다"면서 "나는 돈을 받은 적이 없고, 당당하고 떳떳하게 상고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한명숙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김현·이미경 민주당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항소심 재판부가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검찰 주장과 증거를 모두 끼워맞췄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이번 판결은 법리와 사실관계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판결"이라고 주장하며 즉각 상고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편 한 전 총리는 곽영욱(73)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서 인사청탁 등의 대가로 5만달러(당시 5000여만원)를 받은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는 지난 3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