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 이야기] 초기 한국 천주교회 호교문(護敎文) - 상재상서

전 미주장신대 총장 김인수 목사
김인수 전 미주장신대 총장

초기 한국 천주교는 조정으로부터 사학(邪學)으로 인식되어 수많은 무고한 인명이 살상됐다. 이 모습을 본 정하상(丁夏祥)은 진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탄압을 계속하는 조정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천주교회를 변호하는 글을 썼다. 이 글은 천주교의 원리를 설명하며 올바른 이해를 구하는 한국인이 쓴 최초의 호교문(護敎文)으로 필자의 애절한 심정이 잘 표현돼 있다.

이 글은 정하상이 당시 천주교 박멸의 선봉장 역을 하고 있던 실권자 우의정 이지연(李止淵)에게 올린 서신 형식으로 된 글이다.

상재상서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천주교회는 결코 사교가 아니며 국가에 해가 되는 위험한 사상이 아니다. 오히려 조선이 보유한 사상과 배치되지 않는, 백성이 믿어 좋은 종교다. 천주교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박해를 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글머리에 다음과 같이 항변하고 있다.

"엎드려 아뢰옵건대 맹자가 처음으로 양자(楊子)와 흑자(黑字)를 사설(邪說)이라 하여 배척한 것은 그 사상이 유교학계를 함부로 해칠까 두려워하였기 때문이요, 한유(韓兪)가 석가와 노자를 쳐서 물리친 것은 그 사상이 일반 인민을 미혹하여 혼란하게 할까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옛 시대의 지성인이 법률을 세워서 금지하는 규칙을 마련할 때에 반드시 그 의의와 이치가 어떠한지, 또 해됨이 무엇인지를 연구하였습니다. 그런 다음에 마땅히 금할 것은 금하였고, 금하지 아니할 것은 금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만일 그것이 과연 옳은 이치에 맞으면 나무꾼의 말이라도, 성인은 반드시 채용하였으니 그것은 사람 나름으로 그 말을 버리지 아니하였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천주의 신성한 종교를 금하는 것은 그 뜻이 어디 있는 것입니까. 먼저 그 의의와 이치가 어떠한지를 묻지 아니하고 지극히 원통하고 지극히 통분한 억설로 돌려서 사형으로 처치하니...... 그 기원과 전통을 조사하여 본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 이 도리를 배우게 되면 장차 유교 학계에 해가 되겠습니까. 또는 일반 인민을 혼란하게 하겠습니까.

이 종교는 국가의 원수로부터 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응용하며 언제나 실행할 종교이오니 해가 된다든가 혼란이 된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어 그는 천주(天主)의 실재(實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근거로 논증 한다. 첫째는 만유(萬有)의 조성자(造成者)가 있다. 어떤 집이 있는데, 지은 사람이 없고 저절로 오뚝 일어섰다고 말하면 미친 사람의 말이라 할 것이다. 천지는 커다란 건축물인데, 조성자가 없고 저절로 생겼다면 이치에 맞지 않는다.

둘째는 양심이다. 선(善)을 상(賞) 주고 악(惡)을 벌(罰)하는 큰 어른이 계심이 마음 속에 있어서 어려운 때를 만나면 하느님을 부르며 기도(祈禱)한다. 셋째는 성경이다. 요(堯)?순(舜)?우(禹)?탕(湯)?문(文)?무(武)?주(周)?공(孔)도 역시 경서와 사기가 있어 전래된 것 같이, 천주교 역시 경전 즉 구약과 신약이 있어 오늘날 가가호호에서 입으로 외우며 거문고로 노래한다.

하느님의 존재는 중국의 경사(經史) 가운데, 역경(易經)에 "하느님께 바치나이다"고 말했고, 시경(詩經)에는 "하느님께 아뢰나이다"고 말했으며, 서경(書經)에 "하느님께 금사(禁祀))하나이다"고 했고, 공자는 "하늘에게 죄를 얻으면 기도를 바칠 곳이 없느니라"고 말했다고 논증한다.

이어 십계명을 소개하면서 이 계명들을 지키면 집안을 정돈할 수 있고, 한 나라에서 실행하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가 있을 것이고, 온 세계에 시행하면 세계가 평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하상은 천주교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억울하게 죽어가는 백성도 다 임금의 자손이라며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아! 저 성교를 믿는 사람들만이 홀로 우리 임금님의 자식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슬프도다, 이 인간들이 어찌하여 그다지 극도에 이르러 조금도 서로 아끼지를 않는고.

옥(獄) 안에서는 지쳐서 죽어 자빠지고, 문 밖에서는 목을 베어 죽임이 연달아 끊이지 아니하여 피눈물이 도랑을 이루고, 통곡하는 소리가 하늘까지 부풀어 올라, 아비는 자식을 부르고, 형은 아우를 부름이 막다른 데로 쫓긴 사람이 몸을 돌이킬 데가 업는 것과 같습니다. 맑고 밝은 세상에 그것이 무슨 꼴입니까...... 엎드려 비옵건대 바로 이때에 밝게 비치어 굽어 보시와 도리가 참된지, 거짓인지, 그릇된지, 올바른지 자세히 판단하신 다음에, 위로는 정부로부터 아래로는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일변(一變)하여 도의로 돌아와서 금령(禁令)을 늦추어 강포 하는 법을 철회하고 옥에 갇힌 사람들을 석방하여 전체 국민과 더불어 제 고향에 안정하여 제 직업을 즐기면서 한가지로 평화를 누리게 하시기를 천 번 만 번 바라고 바랍니다. ......차라리 양반에게 죄를 얻을지언정 천주교에게 죄를 얻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글은 3,400자 정도로, 황사영의 백서에 비하면(백서는 1만 3천자 정도) 짧은 글이다. 연세대 명예교수 민경배는 이 글에 대해 "그 문장의 미려(美麗)함이라든가 그 논리의 명쾌 정확으로 해서, 과연 조선 최초의 신학적 저작으로 손색이 없다. 그것은 이 책자가 1887년에 이르러 홍콩의 고약망(高若望) 주교에 의해 출판 간행돼 중국 선교에서나 신학 교육에 널리 사용된 것만 봐도 객관적으로 입증된다"고 높이 평가했다.

상재상서는 기독교의 진리를 해설하고 잘못 인식된 점을 변증하며, 국왕의 적자로서 긍휼을 호소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따라서 황사영의 백서가 전교의 자유를 위해 외국의 물리적 힘에 호소하고 있었다면, 정하상의 상재상서는 자국 안에서 진리를 일깨움으로 조정이 스스로 박해를 거두어 주기를 바라는 동족으로서의 애끓는 정을 담고 있다.이처럼 한국 천주교 초기 역사에 두 교우들에 의해 기록된 문서는 전교 자유 획득에 대한 다른 시각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황사영과는 매부의 관계에 있었던 정하상의 상재상서는 황사영의 백서와 더불어 조선인의 손으로 쓰인 초기 조선 천주교의 중요한 자료로서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정하상은 1839년 기해(己亥)교난 시, 배교자의 밀고로 숨어 있던 장소에서 끌려 나와 목 베임을 당하고 순교해 거룩한 피를 이 교회 역사 위에 뿌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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