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간호사 '나노열'의 한국사랑...

미주·중남미
편집부 기자

 "그땐 샤워할데가 없었어요. 여름이면 하숙집 엄마가 바가지로 물을 떠서 등목을 시켜줬어요."

  ©뉴시스

그의 눈은 향수로 가득했다. 40여년전의 정경을 마치 어제일처럼 돌이키며 쉼없는 설명을 한다. 나노열 씨는 뉴욕의 엘머스트 병원에서 간호사(RN)로 근무하고 있다. 예순일곱의 나이에도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할아버지 나이팅게일이다.

40년 전의 나노열

본명은 닐 랜드레빌(Neil Landreville). 나노열(羅魯烈)은 발음이 비슷한 한국이름으로 작명한 것이다. 나노열 씨가 한국에 처음 간 것은 1970년.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전북 김제 등지에서 6년간 의료봉사를 했다. 그의 동료중에는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대사도 있었다.

서양사람을 주변에서 보기 힘들었던 시골, 동네사람들은 그를 '할로 할로'하고 부르기도 했단다. 벽안의 잘생긴 미국 청년이 능숙하게 한국말을 구사하며 당시엔 위험한 질병이었던 결핵퇴치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고맙고도 신기했을 것이다.

그 역시 순박하고 푸근한 한국의 정서에 흠뻑 빠져들었다. 하숙집 큰아들과 동갑이었던 그는 주인아줌마를 '엄마'라고 불렀다. '하숙집 엄마'도 그를 친아들처럼 격의없이 대하며 살가운 정을 나누었다.

벌써 강산이 네 번은 바뀔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한국사랑은 갈수록 짙어만 간다. 한국이 그리울때 마다 벼루에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머릿속에 아련히 남아있는 기억의 단상을 수묵화로 그렸다.

80년부터 틈틈이 그린 70년대의 정경들은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도리없이 아련한 그리움을 안겨준다. 지금은 사라진 풍경들이 넉넉한 질감의 수묵화로 되살아난 덕분이다.

직업화가도 아니고 한국에서 지낼 때 동네 할아버지에게 잠깐 배운 '난초 그리기' 실력이 전부였지만 그의 작품들이 깊은 감동을 전해주는 것은 44년의 한국사랑이 온전히 화선지 위에 피어났기 때문이다.

나노열 씨의 수묵화 11점은 지난 16일부터 퀸즈 잭슨하이츠의 에스프레소77 갤러리카페에서 전시되고 있다. 다음달 15일까지 한달간 열리는 전시회 제목은 '70년대 한국: 한 평화봉사단 자원봉사자의 기억(Korea in the 70s: a peace corps volunteer remembers)'이다.

수확을 앞둔 농촌의 평화로운 정경, 짐을 사람키보다 높이 싣고 달리는 짐자전거, 연탄수레를 끌고 가는 모습, 지붕위에 고추를 말리는 풍경, 더운 여름날 하숙집 아줌마가 그에게 등목을 시켜주는 장면, 그리고 원두막, 장독대, 마산할매집, 봉남집, 마이홈다방, 태양여관…. 보기만 해도 흐뭇한 미소가 피어난다.

그림 속에 '호남집'이라고 쓰인 간판을 보고 술집이냐고 묻자 "대포집"이라고 답하는 그의 모습에서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도 없는 '지평선'이라는 단어도 그의 작품에서 만날 수 있었다. "김제평야와 만경평야엔 지평선이 유명하잖아요."

작품중에는 신촌과 연세대 일대의 풍경도 있다. 80년대 한국서 1년간 다시 생활할 기회가 주어져 또 한번의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그가 기거하던 옥탑방과 '형제갈비'의 옥호도 추억을 자극한다.

어른거리는 포장마차 불빛과 도로 휴지통에서 채 끄지 않은 담뱃불로 연기가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장면 등 기억에만 의존한 것으로 믿어지지 않을만큼 정밀한 묘사는 감탄사가 절로 난다.

모든 작품엔 '나노열인(羅魯烈印)'이라는 멋진 낙관(落款)과 함께 막도장 한글 이름의 '나노열'과 '한제'라는 한자어 도장이 번갈아 찍혀 있었다. 알고보니 '한제'는 그의 호였다. 추울 한(寒) 자에 김제의 제(堤)를 따서 호를 지었단다.

얼마전 그는 뜻밖의 초대를 받았다. 뉴욕에 있는 김제향우회 인사들이 전시회 소식을 접한 후 '명예 향우회원'으로 야유회에 초대한 것이다. 40여년전 고향의 정경들을 미국인이 어지간한 한국인들도 사용하기 힘든 붓과 먹으로 정교하게 표현했다는 사실은 그들을 놀라운 감동으로 이끌었다. 덕분에 그도 모처럼 '고향' 사람들과 함께 회포를 풀 수 있었다.

독특한 표현기법의 나노열 씨 작품들은 머지않아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을 전망이다. 지난해 세종로에 개관한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 상설전시하는 문제를 협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회는 또다른 봉사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작품들을 담은 20달러짜리 포스트카드 세트를 판매해 수익금은 아프리카 케냐의 어린이들을 위해 전달할 예정이다. 이미 케냐에 네 번이나 의료 봉사를 다녀왔다는 그는 "내년 초 다시 케냐로 떠납니다. 1년간 봉사활동을 하기로 했거든요"하고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것은 그를 두고 이른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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