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제자훈련 세미나에 참석하신 목사님 한 분이 제게 물으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마음에 계심을 어떻게 느끼십니까?"
저는"주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주 예수님께서 제 마음에 계신 것을 압니다."하고 대답해 드렸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제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서'주님이 제 안에 계시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실까요? 시편 55편을 통하여 우리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은 분명히 하나님의 구체적인 인도하심을 받았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일까요? 시편 55편에서 알 수 있습니다.
시편 55편은 내용이 복잡합니다. 은혜로운 구절도 보이지만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 같아서 전체 내용 파악이 잘 안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본문이 복잡하다는 것은 이 시편을 쓴 다윗의 마음이 복잡하였다는 말입니다. 이 복잡한 다윗의 마음에 주님의 음성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알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도 듣게 됩니다.
시편 55편의 배경은 친한 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한 다윗의 고통입니다.
13-14절 그런데 나를 비난하는 자가 바로 너라니! 나를 미워하는 자가 바로, 내 동료, 내 친구, 내 가까운 벗이라니! 우리는 함께 두터운 우정을 나누며, 사람들과 어울려 하나님의 집을 드나들곤 하였다.
배신은 언제나 고통스럽지만 죽이고 죽는 살벌한 상황에서는 정말 두려운 일입니다.
12절 나를 비난하는 자가 차라리, 내 원수였다면, 내가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가 차라리, 자기가 나보다 잘났다고 자랑하는 내 원수였다면, 나는 그들을 피하여서 숨기라도 하였을 것이다.
원수나 적은 피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친구는 도와줄 것이라 믿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가 나에게 칼을 들이밀면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다윗도 사람인지라, 이러한 일을 당하니 두려움에 떨며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1절 내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우리도 급하고 두려운 일을 만나면 이렇게 소리지르며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순간이 올 때 명심해야 합니다. 급하고 두려울 때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보다 우리 문제를 잘 아십니다. '네가 그렇게 어려운지 몰랐다!' 하시지 않습니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잠잠히 내 말을 들어라.' 하십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어려운 일이 닥치면 어떻게 합니까? "진정해, 내 말 잘 들어, 무서워 말고 내가 시키는대로 해야 해."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두려운 것은 어려운 환경 때문이 아닙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일본의 한 유학생을 상담하였습니다. 박사 학위 눈앞에 두고 목회자로 부르시는 주님께 순종해야 하는지 물어왔습니다. 마음에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주님의 인도하심이 분명한지만 철저히 분별하라! 그렇다면 오직 감사만 하며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주님의 음성을 듣기 힘들어 합니다. 그것은 주님이 말씀하지 않으셔서가 아니라 주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위험한 신비주의에 빠지는 것이고, 그저 성경 열심히 읽고 주의 종 목사님께서 가르치는 대로 신앙 생활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만 들었기에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노력 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순종할 수 없습니다. 뭐라고 하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주님의 인도하심에 어떻게 순종할 수 있습니까?
시편 55편에 보면 다윗의 내면에 여러 음성이 번갈아 들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절 ...나는 분노에 떨고 있습니다.
4절 내 마음은 진통하듯 뒤틀려 찢기고, 죽음의 공포가 나를 엄습합니다.
5절 두려움과 떨림이 나에게 밀려오고, 몸서리치는 전율이 나를 덮습니다.
이것은 무슨 음성인 것 같습니까? 주님의 음성이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은 두려운 마음이 아니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딤후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다윗은 갑자기 환상을 이야기 합니다.
6-8절 나는 말하기를 "나에게 비둘기처럼 날개가 있다면, 그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서 나의 보금자리를 만들 수 있으련만. 내가 멀리멀리 날아가서, 광야에서 머무를 수도 있으련만. 광풍과 폭풍을 피할 은신처로 서둘러서 날아갈 수도 있으련만"
우리도 현실이 너무 고통스럽고 두려우면 아무도 안 만나려하고 환상에 사로잡히기도 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주님의 음성일까요? 아닙니다. 그런데 다윗은 전혀 분위기가 다른 고백을 합니다.
16-19절 나는 오직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니, 주님께서 나를 건져 주실 것이다. 저녁에도 아침에도 한낮에도, 내가 탄식하면서 신음할 것이니, 내가 울부짖는 소리를 주님께서 들으실 것이다. 나를 대적하는 자들이 참으로 많아도, 주님께서는, 나에게 덤벼드는 자들에게서, 내 생명 안전하게 지켜 주실 것이다. 아주 먼 옛날부터, 보좌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부르짖음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이다. (셀라) 마음을 고치지도 아니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아니하는 그들을 치실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다윗의 고백이 정말 일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그것은 근원이 다른 생각들이 다윗에 마음에 계속 부딪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주님이 주시는 음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주님의 음성 같습니까? 그렇습니다. 성경을 많이 알지 못한 이들도, 초신자들도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마음은 또 요동칩니다.
20절 나의 옛 친구가 손을 뻗쳐서, 가장 가까운 친구를 치는구나. 그들과 맺은 언약을 깨뜨리고 욕되게 하는구나. 21 그의 입은 엉긴 젖보다 더 부드러우나, 그의 마음은 다툼으로 가득 차 있구나. 그의 말은 기름보다 더 매끄러우나, 사실은 뽑아 든 비수로구나.
바로 앞과 얼마나 다릅니까? 주님의 음성을 들어도 자꾸 악한 자, 배신자가 생각납니다. 주야로 묵상이 됩니다. 우리도 이처럼 문제에 사람에 생각을 빼앗겨 버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마귀가 주는 음성이나 육신의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은 더 현실적이고, 더 합리적이고 더 옳은 것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다윗에게 다시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22절 너희의 짐을 주님께 맡겨라. 주님이 너희를 붙들어 주실 것이니, 주님은 의로운 사람이 망하도록, 영영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
이번에는 다윗이 주님의 음성에 분명히 반응합니다. 그것을 결론삼아 버립니다!
23절 하나님, 주님께서는 반드시 그들을 멸망의 구덩이로 내려가게 하실 것입니다. 피 흘리기를 좋아하고, 속이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자기 목숨의 절반도 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주님만 의지하렵니다.
시편 55편은 이렇게 끝납니다. 다윗의 마음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렸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붙잡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살았습니다.
요셉은 형제들로부터 죽임을 당할 뻔도 하고 애급에 종으로 팔려 갔습니다.
요셉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절망하지 않았을까? 여러분이 인신매매꾼에게 팔려 섬으로 가서 죽도록 일만 해야 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살고 싶겠습니까? 어떻게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보디발의 두터운 신망을 받아 가정 총무의 자리까지 올라갑니다. 요셉은 왜 그 때 탈출하지 않았을까? 얼마든지 기회를 만들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았을 때, 그는 어떻게 주인 아내의 요구를 뿌리치고 무모하게 도망쳐 나올 수 있었을까요?
어째서 억울하다 소리치지 않고 묵묵히 교도소로 갔을까요? 교도소의 제일 선임 재소자라는 직책이 주어졌을 때, 안주하지 않았을까요? 애급의 총리가 되었을 때, 왜 형들에게 복수하지 않았을까요?
요셉이 이런 순간마다 어떤 마음의 갈등을 겪었는지 성경의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틀림없이 그도 수없는 갈등을 겪었을 것입니다. 죽고만 싶고 도망가고 싶고 유혹을 받을 때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고 억울하다 소리치고 싶고 미쳐 버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범죄하지 않았고 불평과 원망으로 시간 낭비하지도 않았습니다. 요셉이 만약 그러한 내적 음성에 한번이라도 따라갔었다면 우리는 성경에서 요셉을 찾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묵묵히 하나님이 계획하신 길을 걸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삶의 결말을 알았을까요? 아니었습니다. 그는 충동에 따라, 감정에 따라, 흥분하거나 낙심하거나 탈출을 시도하거나 타락하지 않고, 오직 매 순간 함께 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았고 매 순간 '기쁨으로 일해라, 경거망동하지 말라, 내가 보고 있다. 잠잠하라. 다른 사람을 정성을 다하여 도우라.' 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을 뿐입니다.
요셉이 이렇게 주님께서 하라는 대로 하니까, 하나님께서 요셉을 인도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노예였고 죄수였을 때 이미 요셉을 형통한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노예여도 죄수여도 상관없습니다.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의 욕망이나 판단을 따르지 않고, 오직 주님의 음성을 잘 듣고 순종하는 자가 형통한 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시편을 통하여 다윗의 마음에 일어났던 내적 싸움에 대하여 상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마음을 차지하려는 마귀의 공격을 엄청나게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철저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갑니다. 그래서 위대한 삶을 산 것입니다.
일본 코스타 본 교회, 조영진 목사님께서 너무나 어려운 교회를 담임하셨을 때, 견디다 못해 "주여 제가 죽겠습니다."하고 항복하였답니다. 그리고 기도하였답니다."그러나 하나님, 저도 죽겠지만, 저처럼 죽은 사람 한 사람만 더 주세요."그러나 기도할수록 더 답답하였답니다. 잘못된 기도는 우리를 더 힘들게 만듭니다. 어느 날 기도 중에 주님은 말씀하시더랍니다.'조 목사, 너만 죽으면 돼.'
한번은 역사가 오래된 교회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갔었는데, 젊은 목사님께서 목회를 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흥회 중에 귀한 간증을 들었습니다. 둘째 아이를 임신한 것을 사모님이 모르고 약을 드셨는데, 의사가 기형아일 가능성이 너무 높으니 유산을 권유하더랍니다.'기형아가 나면 어떻게 기르나? 목회는 어떻게 하나?'크게 고민이 되었답니다. 그런데 기도할수록 아이를 낙태하고는 목회를 못하겠다는 마음이 들더랍니다. 사모님도 동일한 마음이 기도 중에 생김을 알고는 결단하였답니다."우리 아이가 기형아라도 좋습니다. 어떤 아이라도 사랑하며 기르겠습니다."태중의 아이를 무조건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나니 그 때부터 목사님과 사모님 마음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편안해지더랍니다. 아이를 출산했는데, 아이가 정상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지도 않았답니다. 그러나 정상아였답니다. 저는 그 간증을 듣고 이 목사님이 왜 교회를 부흥시키시는 목회를 하시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정말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힘든 것일까요?
2세기 폴리캅(Polycarp)은 자신이 순교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하나님으로부터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4세기 어거스틴은 자신이 성경을 펼쳐, 가장 먼저 보이는 구절을 읽으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그 때 읽은 말씀이 로마서 13:13-14절이었고, 그는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19세기 허드슨 테일러는 하나님이 자신이 선교사로 중국에 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찰스 스펄젼은 하나님이 복음을 전해야 사람들과 전해야 할 복음의 본문까지 알려 주셨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죠지 뮬러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고아원을 운영하라고 말씀하셨다고 자주 말했습니다.
20세기의 프랜시스 쉐퍼 (Francis Schaeffer)는 아버지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신학교에 가라고 말씀하셨다고 믿었습니다.
루이스 스페리 쉐퍼 (Lewis Sperry Chafer)는 하나님이 댈러스 신학교를 세우라고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다고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사람은 분명하게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난 7월 휴가를 보낼 때입니다. 그 날 통영에 있었는데 아침에 바다에 나가 걸으며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다가, 어린 아이같은 소원이 생겼습니다."하나님, 오늘 제가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해 주옵소서."
저는 이미 주님께서 제 마음에 함께 하심을 압니다. 그리고 제게 제 삶과 사역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는 것도 압니다. 너무나 풍성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색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듣고 싶었습니다. 휴가 중에 있는 모든 가족들이 다 인정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루 종일, 가족들과 함께 통영의 여기저기를 둘러 보면서 구경도 하고 식사도 하며 하루를 보냈지만, 특별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은 없었습니다. 저녁이 되니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마음 한켠에는 많은 성도들이 선교여행도 떠나는데 저는 휴가를 보내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인가 하는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밤에 가족들과 말씀기도를 하다가, 사도행전 14장 17절 말씀을 읽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행 14:17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종일 저와 가족은 '음식과 기쁨으로' 만족스런 하루를 보내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통영 여기저기를 다녔던 것입니다. 이것을 가족과 나누었습니다. 다들 기뻐하였습니다. 잠자리에 누워 한 동안 가슴이 떨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좀 더 분명히 듣고 싶다면 주님이 주시는 생각을 기록해 보십시오.
주님의 음성은 생각으로 주시지만 기록해 보면 분명해 집니다. 그래서 일기를 쓰는 것입니다.
다윗의 수많은 시는 다 영성일기입니다.
시편 55편은 다윗의 마음의 모든 생각을 다 글로 써 본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지시하심이 무엇인지 선명히 드러났습니다. 우리도 보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이처럼 영성일기를 통하여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음성이 살 길입니다.
22절 너희의 짐을 주님께 맡겨라. 주님이 너희를 붙들어 주실 것이니, 주님은, 의로운 사람이 망하도록, 영영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