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공동체 돌봄 사역자, 대안적 경청 아닌 공감적 경청을”

최창국 교수
최창국 교수 ©유튜브 영상 캡처

최창국 교수(백석대 실천신학)가 최근 복음과 도시 홈페이지에 ‘트라우마 증언과 교회 공동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최 교수는 “한국 사회는 역사적 트라우마의 재현으로 인해 심한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며 “교회 공동체는 역사적 트라우마 앞에서 트라우마 증언과 경청의 중요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교회 공동체는 트라우마 고통을 단지 해결해야 할 문제로만 보기보다는 트라우마 증언은 그 자체가 삶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며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 공동체는 공동체와 개인의 역사적 트라우마의 이야기와 증언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담학적 관점에서, 트라우마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극복되거나 단지 싸워 이겨내야 할 문제이기보다는 끊임없이 떠오르는 트라우마 기억을 이야기할 때 완화되는 독특한 특성이 있다”며 “교회 공동체가 트라우마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신앙의 실천만을 앞세워 단지 기도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하거나 믿음으로 극복하라고 말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트라우마 기억을 경청하며 함께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교회 공동체는 트라우마 기억을 이야기할 때, 트라우마가 재현되고 증폭될 수도 있지만, 트라우마 기억이 완화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며 “인간의 기억이 한번 만들어지면 계속 본래대로 유지되기보다는 기억된 후에 다시 접근할 때마다, 즉 기억할 때마다 새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이어 “따라서 그 기억을 말할 때 기억을 업데이트할 분자적 기회가 제공된다. 다시 말하면, 트라우마 기억을 이야기하거나 증언할 때 과거의 기억을 변화시킬 잠재력을 형성한다”며 “교회 공동체는 트라우마 기억을 자주 이야기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트라우마 기억을 상기하는 행동은 기억을 업데이트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트라우마 증언을 통한 기억의 업데이트는 역량과 반응성을 형성한다”고 했다.

또한 “트라우마 치유에서 해체 반응 기법이 있다. 이 기법은 고통의 경험에서 온 감정적 과도함을 없애기 위해 그 경험을 증언하게 하여 다시 경험하게 하는 방법”이라며 “물론 트라우마 경험자가 자신의 기억을 노출할 때 트라우마가 더 증폭될 수도 있고, 트라우마 기억의 유형에 따라 다르게 작용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트라우마 경험을 이야기할 때 원래의 트라우마 상황에서는 압도되어 자기 보호의 실패로 이어졌던 트라우마 기억을 긍정적으로 업데이트시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며 “트라우마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 대한 교회 공동체의 사명은 이들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우거나 잊도록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와 증언을 경청하는 데 있다”고 했다.

특히 “교회 공동체가 트라우마 중에 있는 사람의 증언과 이야기를 경청할 때, 말하는 사람이 슬퍼하고 울고 분노하고 의심할 수 있는 여지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며 “교회 공동체는 사람의 고통을 단지 영적으로 해석하거나 상대의 경험을 신학적으로만 다루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최 교수는 “교회 공동체는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이나 위로를 주려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교회 공동체는 판단하지 않고 들을 수 있어야 하고, 피하지 않고 들을 수 있어야 한다”며 “심한 상실과 트라우마 중에 있는 사람이 자유롭게 고통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교회 공동체는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자체가 자비의 행동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교회 공동체의 돌봄 사역자는 심한 상실과 트라우마를 입는 사람의 증언을 들을 때 자신의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능력 사이에는 거대한 틈이 존재한다”며 “또한 듣는 사람은 이야기와 증언하는 사람에게 일어난 일과 고통을 단지 상상하는 것이다. 이때 듣는 사람은 대안적 경청을 주의해야 한다. 대안적 경청은 듣는 사람이 심한 상실과 트라우마 중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마음에 그와 관련된 다른 이야기가 떠오르는 이야기를 함께 듣는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그 이야기와 유사한 다른 이야기를 모은 후에 자기 나름대로 대안을 말하려는 유혹에 노출된다”며 “하지만 대안적 경청은 심한 상실과 트라우마 고통을 증언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에게 독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유사한 고통의 경험이라도 같은 것은 아니다. 돌봄 사역자는 고통을 말하는 사람과 자신이 같은 신앙과 문화 배경을 공유하고 있더라도 말하는 사람의 고통을 알 수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일란성 쌍둥이도 서로 같지 않다”고 했다.

그는 “교회 공동체의 돌봄 사역자는 대안적 경청이 아니라 공감적 경청을 해야 한다”며 “공감적 경청은 대화 상대자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는 자세로부터 시작한다. 나아가 상호 공감적 경청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아울러 “상호 공감적 경청은 서로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경청하며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경청 형태”라며 “또한 돌봄 사역자는 심한 상실과 트라우마 중에 있는 사람의 침묵에도 경청할 수 있는 마음을 위해 하나님께 듣는 마음을 구해야 한다. 이런 사람이 침묵할 때도 말보다는 침묵과 함께 들어주는 마음과 인격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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