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적인 국가와 영적인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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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성 박사(웨슬리언교회지도자협의회 대표회장)

양기성 박사

국가와 교회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상호 협력 관계인가, 아니면, 독립적 대립관계인가? 신앙 생활이나 목회를 오랫동안 했으면서도 그 관계성의 소중함을 잊어버리고 살았거나, 아니면 무시하고 살아가는 것 같다. 교회나 국가 개념은 굳이 말 안 해도 잘 알 것이다. 그러나, 교회 존재는 무엇이며, 국가 존재는 무엇인가 하는 것을, 또는 그 관계성을 잘 알 때, 교회의 성도로서, 또한 한 국민으로서 본분을 지키며 살아 가는 것이라 말 할 수 있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잘 가르쳐준 인물은 어거스틴이다. 어거스틴은 교회와 국가관계를 그의 “신국” 일명, “신의 도성”(Two Kingdoms)이라는 책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두 왕국이란, 하나님의 나라(Heavenly Kingdom)와 지상의 나라(Earthly Kingdom)를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로서 영적인 정신의 세계를 말하며, 하나님이 그 능력으로 지배하고 다스린다. 하나님의 선하심, 정의로우심, 거룩하심으로 다스리는 나라를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와는 반대로 지상의 나라(Earthly Kingdom)가 있다. 인간이 치리하고 다스리는 국가를 말하는데, 그 인간의 나라는 인간이 주인이며, 인간의 육신적 개념으로 다스려지는 나라다. 투쟁, 부정, 부패, 분쟁 같이 타락한 인간의 모습들이 나타 나는 것이 지상의 나라다.

이러한 육신을 상징하는 지상의 나라가 세워진 이유는 하나님이 그 자신의 선, 진리, 정의를 지상에 세우시기 위해 하나님이 국가와 그 제도를 허락하셨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전하여 그 뜻이 이루어 지도록 하기 위해 지상의 나라를 세우신 것이다. 즉,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자신의 뜻을 이루도록 위임한 기구가 국가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의 국가는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라 할 수 있다.

위임받은 기구로서의 국가나 정부는 하나님의 뜻을 잘 실현하는 정치모토, 국가정책, 국가이념을 세우고 실현해야 한다. 여기서 통치자의 할 일을 알 수 있다: 1) 국민의 생명을 보호한다, 2) 생활안전 및 재산보호에 최선을 다하고, 그것을 보장하는 정치를 해야 하며, 3) 사회질서를 확립하여 국민들이 불편함이나 불안감 없이 생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 평화유지에 힘쓴다. 5)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믿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다. 국가의 존재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도록 하기 위해, 또 사회질서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국가는 신성한 조직이며, 따라서 통치자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사실, 이는 매우 고전적 국가관 개념이라 말 할 수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지금 시대에도 부합하는 내용인 만큼 크리스챤들은 하나님이 국가를 세우신 이유를 알고 국가나 정부를 이해해야 한다.

더욱이, 하나님이 지상 나라에 자신의 귄위를 위임했는데, 그 위임 받은 구체적 조직체는 교회다. 교회는 진실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워가는 실제적 위임받은 기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진실과 화해, 그리고 평화를 전달하는 사명을 국가정부와 함께 실행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국가와 교회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적 사명을 가지고 그것을 실행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나아가, 국가에 대한 국민의 도리를 사도 바울은 말한다. 그 국민의 도리를 사도 바울은 그의 책 로마서 13장 1절, 그리고 디도서 3장 1절에서 말하고 있다. 내용인 즉, 그것이 악한 국가인지 선한 국가인지 분별하여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는 국가권력에 순종하고 복종하라 한다. 바울이 말하는 국가권력이란 선한, 하나님의 뜻을 잘 이행하는국가를 전제하고 하는 말이기 때문에 그런 국가에는 순종하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상의 나라는 하나님 자신이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 허락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3권 분립이 지켜지는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국민의 자유성과 권리를 보장하고, 선하게, 의롭게 정치하는 정부에 순종하라 한 것을 잘 이해해야 한다.

3권 분립을 기반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정부에 대한 순종은 당연한 것이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주고 있기 때문이며, 국민은 그런 안전성을 국가로부터 받기 때문에 국가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세금도 정직하게 잘 납부해야 하고, 국방의 의무가 있는 나라는 그 의무도 잘 감당해야 한다. 국가가 자신과 가정, 모든 것을 지켜주기 때문에 그만큼 상대적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 봉사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악한 정부나 부정한 정치권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통치자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인간 주장대로 악한 정치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순종해야 하는가 하는 말이다. 바울은 국가에 순종하라 했는데, 악한 정부나 정치권력에도 순종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답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는 정치권력에는 순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주권을 무시하는 정부나 정권찬탈을 목적으로 하는 부정한 정치세력에는 국가에 순종하라는 바울의 교훈은 적용되지 아니 한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자들에게 순종하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행동과 같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사도 바울은 정권에 순종만 하고 악한 정권에 항거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 사도 바울 시대는 로마가 유대를 식민통치하던 시기였다. 제국주의 정권이 기세를 높이던 때였다. 그러한 때 맞서 불순종하면 로마에 의해 잔인한 폭력이 자행 될 것이고, 그에 맞서 싸우면 폭력을 써서는 안 되는 예수 그리스도 정신을 훼손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러면 크리스챤들은 무서운 박해를 받을 것이고, 그 결과 순교자들이 대거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국가 권력에 순종하라는 말은 했지만, 악한 정치세력에 대해서는 항거하라는 말 같은 것은 드러내놓고 하지 않은 것이다. 그 내면에는 그저 묵묵히 참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믿어야 한다.

사실, 잘못하는 정부나 부정적인 정치세력에 대해 침묵하거나, 묵인하거나, 방관해서는 안 된다. 바르트나, 틸리히, 본 회퍼는 나치주의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항거하였다. 1939년 구 소련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미국의 윤리신학자 라인홀드 니버는 소련 공산당의 폴란드 침공을 비난하였다. 교회는 저항이나 시정 촉구는 하되, 평화적으로 하고, 그리고 나아가 폭력이나 기타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훼손하는 그런 행동이 아닌 것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그나마 교회들, 또는 신학자들은 악한 국가나 부정한 정치인에 대해 예언자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악한 국가나 사악한 정치세력에 대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는 것이 교회 존재의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교회나 목회자, 신학자들은 침묵하거나 방관한다. 악한 국가나 부정적인 정치세력에 대한 교회의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확한 상황판단을 하지 못한다. 둘째, 상황파악이 됐어도 용기가 없어 못한다. 결국, 무엇을 말하나? 하나님으로부터 부패하고 타락한 지상의 나라를 선, 진실, 의로운 나라로 만들 것을 명하시기 위해 교회를 세웠는데, 그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교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무능하면 만약 국가가 잘못해도 말을 못한다.

그러므로, 국가나 사악한 정치세력들이 불의한 방법으로 정치한다 해도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위임받은 핵심 조직체로서 그 뜻을 저버리거나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그래야 교회는 국가가 악한 인간에 의해 잘못 통치하는 것에 대해 시정을 촉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위임받은 국가라 해도 국가는 부패하여 종말을 고하게 되기도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지상 대행기관인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영원하듯, 영원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복음 6: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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