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적 언어로 인류의 근원을 서사시라는 형식에 담아낸 밀턴(1608~1674)의 《실낙원》은 세계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중세와 르네상스 영문학 교수이자 기독교 변증가인 C. S. 루이스는 웨일스의 한 대학에 초청받아 밀턴의 《실낙원》에 관한 강연을 했는데, 그것을 정리한 책이 《실낙원 서문》이다.
루이스는 이 책에서 먼저 서사시에 대한 배경 지식을 현대의 문학적, 역사적, 신학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게 소개한다. 그리고 밀턴의 세계관이 《실낙원》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탁월하게 설명하며, 몇 가지 테마로 《실낙원》의 맥을 짚고 내용을 살핀다.
저자는 책 속에서 “독자가 《실낙원》에 대해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밀턴이 그것을 어떤 작품으로 의도했는가?’이다. 나는 이 책에서 《실낙원》의 아버지에 해당하는 서사 형식에 집중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보며 그렇게 할 생각이다. 서사시에 대한 그의 문장은 서사시의 간략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말한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그가 느낀 것을 느끼고, 그가 마침내 선택한 것이 실제로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최종 선택에 의거한 행동의 실체가 무엇인지 깨달으려면, 우리도 서사시에 주목해야 한다. 서사시라는 문학의 역사는 우리가 《실낙원》을 읽는 데 있어 적어도 시인 밀턴의 전기만큼은 도움이 될 것이다”고 했다.
이어 “밀턴이 《실낙원》에서 가장 잘 그려 낸 캐릭터는 사탄이다. 그 이유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밀턴이 그려 낸 주요 캐릭터 중 가장 그리기 쉬운 캐릭터가 바로 사탄이기 때문이다. 100명의 시인에게 같은 이야기를 써보라고 하면 그중 90편 정도는 사탄의 캐릭터가 가장 잘 그려져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이야기에서는 ‘착한’ 캐릭터가 가장 시원찮다. 아주 간단한 이야기라도 만들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다. 우리 안에는 악한 격정들이 끊임없이 발버둥치고 있고, 실생활에서 우리는 그것들이 밖으로 튀어나가지 못하게 끈으로 묶어 놓고 있다. 자신보다 악한 캐릭터를 만들어 내려 할 때는 그 악한 격정들을 상상 속에서 풀어 놓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는 진화론을 배우고 자랐기에 초기의 인간들이 원시인이라고 생각했고, 최초의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고 생각했다. 제가 아담과 하와에게서 기대했던 것은 원시적이고 세련되지 않으며 유치한 아름다움이었다. 저는 그들이 신세계에 대한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을 어눌하게 표현하는 모습을 보게 되기를, 그들이 재잘대는 소리를 듣게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제가 위에서 내려다보고 다독거릴 수 있는 아담과 하와를 원했는데, 밀턴은 제게 그런 것을 허용할 뜻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고 저는 그것이 기분 나빴던 것이다”고 했다.
끝으로 저자는 “밀턴이 다룬 이야기는 위대한 이야기의 조건을 다른 어떤 작품보다 잘 충족시키는 것 같다. 결말에서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실낙원》은 다른 어떤 작품보다 성공했기 때문이다. 《실낙원》에 담긴 진리와 열정은 비판의 여지가 없다. 그 둘은 본질적으로 비판받은 적이 없다가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반역과 교만이 시대정신으로 존중받게 되고서야 비로소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면에서 밀턴에 대한 부정적인 비평은 문학적 현상이라기보다는, 혁명적 정치와 도덕률 폐기론적 윤리와 인간에 의한 인간 숭배가 문학에 드리운 그림자다. 비평가들은 《실낙원》이 무엇을 다루는지 알아보지 못했다. 그 중심 테마에 대한 증오나 무지로 인해 터무니없는 이유로 《실낙원》을 칭찬하거나 비판했다. 실제로는 규율과 조화와 겸손과 피조물다운 의존이라는 형식에 거부감을 느꼈으면서도 밀턴의 예술적 역량이나 그의 신학을 문제 삼는 식으로 화풀이를 했다”고 했다.